미·우크라 갈등은 러시아에 호재? 트럼프는 누구 편도 아닌 ‘돈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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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지원 부담 누적에 美 종전 압박 강화 동결자산·에너지 거래까지 협상에 포함 종전 협상 통해 재정·물가 부담 동시 완화 모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공개 충돌하자 러시아 강경파들이 반색을 드러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불화가 러시아에 유리한 협상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미국의 종전 구상에는 서방의 전쟁 지원 부담을 줄이고 동결자산과 에너지 거래에서 경제적 실익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에 무기 구매 대금을 맡기고 러시아와의 거래로 경유 공급을 확대하는 행보 역시 재정 지출 억제와 물가 안정이라는 자국의 이익에 무게를 둔 선택으로 해석된다.
제재 완화 놓고 트럼프·젤렌스키 정면충돌
20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강경파들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충돌을 반기고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 악화가 러시아의 전쟁 수행과 종전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두 정상의 갈등은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경유 공급에 합의하고 관련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미국과 세계 시장에 러시아산 경유를 공급해 연료 가격을 낮추겠다는 구상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곧바로 러시아의 경유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끝내야 할 전쟁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만큼, 제재 완화가 공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판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문제 삼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러시아산 경유 공급을 늘려도 정유시설이 공격받으면 생산에 차질이 생겨 연료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이를 근거로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을 압박한 데 이어, 10일에는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할 때가 됐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교체까지 요구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의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만 공격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맞섰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거나 미국이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추가로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두 정상의 갈등이 격화하자 러시아 강경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호응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한 공세에 가세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서 한때 ‘올해의 인물’이자 ‘새로운 처칠’로 불렸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과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낙인찍혔다고 조롱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먹여 살린 손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의 대미 경제협상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한 데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를 상징하는 곰과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영국의 사자 및 유럽연합(EU)과 대치하는 그림을 공유하면서, 그림 아래에 ‘상황이 달라졌다(Things are different now)’는 문구를 담기도 했다.
우크라 전비 급증에 서방 지원 부담 가중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발언은 러시아에 힘을 실어주는 듯 보이지만, 기저에는 미국의 전쟁 비용을 줄이고 경제적 실익을 챙기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 비용은 자국 재정과 서방 지원을 모두 동원해도 감당하기 벅찬 수준으로 불어났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달 말 제시한 올해 총전비는 1,550억 달러(약 207조8,090억원)로, 국내 예산 지출에 서방이 제공한 방공미사일·탄약·항공기 등 현물 지원까지 포함한 규모다. 올해 자체 예산 수입 목표인 700억 달러(약 93조8,490억원)를 국방에 투입하고도 미국과 유럽의 군사·재정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당시 정부가 추산한 부족 자금은 270억 달러(약 36조1,99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0억 달러(약 9조3,850억원)는 지출 연기와 예산 재배분 등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00억 달러(약 26조8,140억원)는 지원국들과 조달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부족분을 메워야 내년 초 사용할 무기를 발주할 수 있어, 추가 지원 확보가 전선 유지와 직결된 상황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럽 각국은 우크라이나의 부족한 전비를 메울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6일 EU 정상들에게 내년 전쟁 비용으로 1,550억 유로(약 231조1,200억원)가 필요하다며 최소 700억 유로(약 104조3,80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같은 규모의 자금 부족분을 확인하면서, 이를 충당할 방안이 EU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EU 정상들은 집행위원회에 11월 말까지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도록 주문했다. 여기에 미국이 무기 지원 비용을 동맹국에 분담시키면서 유럽은 재정 지원과 무기 구매에 함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산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의 추가 지출을 억제하면서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무기를 공급하고, 구매 비용은 유럽 동맹국들이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표1.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 및 서방 지원
| 구분 | 항목 | 규모·주요 내용 |
|---|---|---|
| 올해 전쟁 비용 | 총전비 | 1,550억 달러 국내 예산 지출·서방 무기 현물 지원 포함 |
| 자체 예산 수입 목표 | 700억 달러 국방 투입에도 미국·유럽 지원 필요 | |
| 부족 자금 | 270억 달러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정부 추산 | |
| 부족분 조달 계획 | 70억 달러: 지출 연기·예산 재배분 등 200억 달러: 지원국과 조달 방안 협의 | |
| 내년 전쟁 비용 | 필요 전비 | 1,550억 유로 지난 16일 젤렌스키 대통령 제시 |
| EU 추가 지원 요청 | 최소 700억 유로 EU 집행위원장도 같은 규모 부족분 확인 | |
| 재원 마련 일정 | EU 정상들, 집행위원회에 11월 말까지 조달 방안 제시 주문 | |
| 미국 무기 지원 방식 | 나토 동맹국 구매·전달 |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 발표 동맹국이 미국산 무기 구매 후 우크라이나 전달 유럽 재정 지원·무기 구매 부담 병존 |
우크라 국가 기능 유지까지 떠받친 美 재정
추가 지원금을 마련하려면 유럽도 빚을 더 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EU는 지난해 말 합의한 900억 유로(약 134조2,000억원)의 우크라이나 대출 재원을 공동예산을 담보로 시장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새로 발생한 부족분에도 공동 차입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크리스텐 미할 에스토니아 총리도 지난 16일 추가 대출이 유력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차입 여건은 기존 지원안을 마련할 때보다 나빠졌다. EU의 10년물 채권 금리는 올해 1월 2.8%에서 9월 3.44%로 올라, 같은 금액을 빌려도 부담해야 할 이자가 늘었다. 러시아 동결자산을 활용해 부담을 덜자는 방안도 자산 대부분을 보관하는 벨기에가 법적·재정적 위험을 우려하며 반대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가려는 유럽 각국은 추가 차입에 따른 이자 부담과 동결자산 활용에 수반되는 손실 위험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의 정부 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상당한 재정을 투입해 왔다. 미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관리한 직접 예산지원금 302억 달러(약 40조4,890억원)는 대부분 세계은행을 거쳐 2024년 말까지 우크라이나에 지급됐다. 우크라이나가 자체 재원을 국방에 집중하는 동안 기본적인 국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 자금이다. 지원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정부가 자금 사용처를 점검하고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실제 GAO 점검에서는 지원금 지출 내역이 보고서마다 달라지고,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도 부정확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엔 영토 양보, 러시아엔 동결자산 해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일이 유럽 전체의 안보와 직결된다고 강조하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만, 전쟁 장기화로 재정 부담이 불어난 지원국들도 추가 지출을 결정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돈바스에서 철수하면 주요 방어 거점을 러시아에 넘겨줘 향후 재침공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서방의 지원을 받아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 유럽의 안보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미국 협상단은 우크라이나의 철수 결정으로 합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재러드 쿠슈너는 지난달 11일 푸틴 대통령이 요구한 선까지 우크라이나가 철수하면 나머지 합의는 준비돼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도 덧붙여, 영토 양보를 거부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협상 교착의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양보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유인책을 함께 협상에 올려 종전 합의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 이달 초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국·우크라이나·유럽 당국자 회의에서 미국 협상단은 러시아 동결자산 일부를 해제해 미국이 감독하는 금융기구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가 관심을 두는 동결자산 문제를 평화협정에 포함해 협상 진전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미 당국자도 동결 해제 절차와 자금 사용처를 포괄적인 평화협정의 일부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안이 성사되면 미국은 종전 조건에 맞춰 자금이 풀리는 과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의 협상 참여를 독려하면서 대규모 자금의 관리 권한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대러 제재 조정에 미국 수출 실익도 고려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챙기려는 실익은 에너지 거래에서도 확인된다. 러시아산 경유의 수출을 허용한 데 이어, 이를 실어 나를 선박에 대한 제재 완화까지 검토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이란과 연계된 제재 대상 유조선을 일반 상업 운영사에 매각하고 해당 선박의 운항 제한을 푸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은 유조선 부족이 운송비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선박 공급을 늘려 운임을 낮추면 미국산 원유의 수출 여건을 개선하고 소비자가 부담하는 연료 가격도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조정하는 과정에 미국의 에너지 수출과 국내 물가라는 이해관계가 함께 반영된 셈이다.
연료 가격을 낮추려는 움직임에는 고물가가 금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유는 화물 운송과 농업·건설 현장에서 폭넓게 쓰이는 만큼 가격 상승이 지속되면 상품 운송비와 생산비에 부담을 준다. 비용 증가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경우 물가 안정이 늦어지고 금리 인하 여지도 좁아질 수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에너지 가격은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0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유가 하락과 예상보다 부진한 주택지표가 맞물리면서 전날보다 0.019%포인트 내린 5.116%를 기록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연료비 안정은 가계·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유권자의 생활비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