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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불타는데 나랏빚은 산더미” 생활고에 터진 민심, 유럽 긴축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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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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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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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 이후 에너지 비용·국방비 부담 증가
유럽 각국서 생활고 항의 시위와 지원 요구 확산
재정 여력 부족 속 민생 대응 부담 가중

프랑스가 교육 환경과 생활비 문제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휩싸였다. 학교에서 시작된 불만에 노동계의 분노까지 더해졌고, 방화와 약탈이 주요 도시를 뒤덮었다. 그러나 나랏빚이 국내총생산(GDP)의 119%에 이른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할 재원조차 마련하기 벅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비용과 군사비 부담이 커진 유럽 곳곳에서도 민생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면서, 각국 정부는 성난 민심을 감수하고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프랑스 전역 110곳서 시위, 주요 도시 방화·약탈

18일(이하 현지시간) 폴리티코 유럽판 등에 따르면 전날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주요 도시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전국 110개 행진에 참여한 인원은 당국 추산 55만 명, 주최 측 추산 80만 명에 달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노동조합원, ‘노란 조끼’ 운동 참여자 등 다양한 계층이 집회에 동참했다. 파리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부르며 행진에 나섰다.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복면을 쓴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을 향해 폭죽과 보도블록 등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동원했다. 샹젤리제 거리와 대통령궁, 의회, 정부 청사 주변 지하철역도 다수 폐쇄되면서 도심 이동에 차질이 빚어졌다.

시위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의 방화와 약탈이 잇따르면서 상점과 공공시설 피해도 속출했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주변에는 충돌로 뜯겨 나간 보도블록과 깨진 상점 유리창 잔해가 널려 있었다. 슈퍼마켓과 휴대전화 판매점, 약국, 자동차 판매장까지 약탈 대상이 됐다. 중부 도시 리모주에서는 19세기에 지어진 시청에 불이 나 지붕이 무너졌고, 리옹에서는 복면을 쓴 이들이 관광안내소 간판을 뜯어내고 시설을 부순 뒤 불을 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시청 로비에 난입하고 상점과 경찰서를 훼손했다. 유통업체 카르푸의 알렉상드르 봉파르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매장 50곳이 피해를 봤으며, 이 가운데 20곳은 약탈당해 피해액이 수천만 유로에 이른다고 밝혔다.

교실에서 시작된 분노에 노동계도 가세

전국을 뒤흔든 이번 시위의 발단은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었다. 지난달 파리 외곽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시위에서는 교사 부족과 낡은 학교 시설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생드니의 폴엘뤼아르 고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임시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고 교내에 쥐와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며 학습 환경 개선을 호소했다.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입 지원 플랫폼 ‘파르쿠르쉬프’를 향한 반발도 거셌다. 대학별 선발 기준과 평가 과정이 불투명해 진학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복잡한 지원 절차가 입시 불안을 키운다는 것이다. 학생단체들은 이 플랫폼을 통한 선발 방식 폐지와 대학 정원 확대를 요구했다.

학생들의 시위에 노동자와 시민들이 합류한 데는 생활비 상승으로 팍팍해진 가계 사정이 작용했다. 최근 수개월간 휘발유와 에너지, 식료품 가격이 잇따라 오르면서 가계 부담이 커졌고, 집회에서는 물가 인하와 소득 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동총동맹(CGT)도 임금·연금 인상과 공공서비스 보호를 내걸고 동참했다. 학교 인력과 시설 확충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생활 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노동계가 공동 집회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지난달 틱톡에 등장한 기름값 급등 항의 집회 제안에 학생들의 참여 독려가 이어졌으며, 소셜미디어 분석업체 비지브레인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이후 프랑스에서 17일 집회를 언급한 게시물은 46만 건에 달했다.

프랑스 나랏빚 3조6,000억 유로 육박

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교육·복지 지출을 늘리기에는 프랑스 정부의 재정 여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공공부채는 3조5,955억 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2분기에만 부채가 596억 유로 늘면서 GDP 대비 비율도 전 분기 117.5%에서 1.5%포인트 상승했다. 재무부는 이 비율이 올해 말 119.3%, 내년에는 121.7%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학교 시설 정비와 생활비 지원에 추가 재원을 투입할 경우 이미 불어난 부채에 부담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재정 부담이 누적된 데는 정부 수입을 웃도는 지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의 공공지출은 GDP의 57.5%였고, 재정적자는 GDP 대비 5.1%를 기록했다. 기존 사업과 공공서비스를 유지하는 데도 차입이 필요한 만큼 새로운 지원을 확대할 여유가 넉넉하지 않다는 의미다. IMF는 앞서 2023~2024년 재정이 예상보다 악화한 요인으로 내수 부진에 따른 세수 부족과 사회보장·지방정부 부문의 지출 초과를 지목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의료비와 국방비 증가도 향후 재정을 압박할 요인으로 꼽혔다.

표1. 프랑스 재정 현황과 지출 확대 제약 요인

구분주요 지표·요인내용
공공부채올해 6월 말3조5,955억 유로, GDP 대비 119%
2분기 증가 폭596억 유로 증가
GDP 대비 비율 117.5%→119%, 1.5%포인트 상승
GDP 대비 비율 전망올해 말 119.3%→내년 121.7%
재정 수지·지출지난해 공공지출·재정적자공공지출 GDP 대비 57.5%
재정적자 GDP 대비 5.1%
2023~2024년 재정 악화 요인내수 부진에 따른 세수 부족
사회보장·지방정부 부문 지출 초과
향후 지출 압박 요인고령화에 따른 연금·의료비 증가
국방비 증가
이자 부담공공부채 이자 지출올해 790억 유로→내년 910억 유로 전망
120억 유로 증가
국채 금리 상승최근 10년 만기 국채 금리 5% 육박
고금리 차환 시 교육·복지 재원 제약
자료: 프랑스 통계청(INSEE), 프랑스 정부·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국채 금리 5% 육박, 프랑스 재정 압박

불어난 빚에서 발생하는 이자도 예산을 잠식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공부채 이자 지출은 올해 790억 유로에 이르며, 정부는 내년 이 비용이 910억 유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 해 사이 이자로만 120억 유로를 더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에 육박하면서 새로 빌리는 돈의 조달 비용까지 높아졌다. 저금리 시절 발행한 국채의 만기가 돌아와 높은 금리로 차환할수록 교육과 복지 등에 배분할 재원도 제약받게 된다.

국채를 사들이는 투자자들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알렉상드르 스토트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의 저성장과 줄지 않는 재정적자, 선거를 앞둔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IMF 집계상 지난해 말 프랑스 공공부채의 55%는 해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어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받는 구조다. IMF는 앞선 프랑스 경제 점검에서도 정치적 지지 부족으로 추가 개혁이 채택되지 못했다는 점을 짚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재정적자 감축과 구조개혁이 지연될 위험도 경고했다.

전쟁 비용에 민생 부담까지 겹친 유럽

유럽연합(EU) 내 다른 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물가와 긴축에 따른 공공서비스 약화, 주거비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는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밀라노, 토리노, 볼로냐 등 주요 도시에서 저임금과 물가 급등, 교육 환경 악화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려 경찰과 충돌했고, 이탈리아 최대 노조인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은 내달 20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공공부채 부담에 교육 예산을 삭감한 벨기에에서도 브뤼셀과 리에주를 중심으로 고교생 시위가 이어졌다. 올해 2분기 주택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6% 급등한 포르투갈에서는 주거비 부담 증가에 따른 항의 시위가 열렸다. 스페인에서는 87세 노인 강제 퇴거 사건으로 촉발된 주택난 시위가 이어지며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조기 총선에 내몰리는 등 유럽 각국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이 심화하고 있다. 교육비와 집세, 생필품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유럽 각국에서 동시에 분출하는 양상이다.

유럽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한 주요 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유럽으로 들어오는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줄면서 천연가스와 전력 가격이 치솟았다. 가스 가격 상승이 전력 도매가격을 끌어올리는 유럽의 전력시장 구조 탓에 충격은 가정과 산업 현장으로 빠르게 번졌다. 곡물과 식물성 기름의 주요 공급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 차질까지 겹쳐 식료품 가격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졌다. 가계는 난방비와 장바구니 지출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했고, 기업들은 에너지와 원자재 조달 비용 증가를 떠안았다.

나라 살림 감축 불가피

전쟁에 따른 안보 불안은 군비 확충으로 이어져 각국 정부의 재정 부담도 늘렸다. EU 안보연구소에 따르면 회원국들의 국방비는 2022년 2,398억 유로에서 지난해 4,176억 유로로 74% 증가했다. 유럽방위청(EDA)은 올해 국방비가 4,540억 유로에 달하고, GDP 대비 비중도 지난해 2.2%에서 2.4%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공동 차입도 추진됐다. EU의 2026~2027년 우크라이나 지원 대출 900억 유로는 EU 차입으로 조달하는 방식이며, 이 가운데 약 3분의 2가 군사 장비 확보 등 방위 분야에 배정됐다. 국방 지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지원 수요까지 늘면서 예산 배분을 둘러싼 압박이 커지는 상황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경기 부진과 이자 비용, 국방비 증가 등을 반영해 EU 전체 재정적자가 지난해 GDP의 3.1%에서 내년 3.6%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 부담이 불어난 만큼 시위대의 반발에도 긴축을 더 미루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지출 조정을 늦출수록 차입과 이자 부담이 쌓여 공공서비스를 유지할 재원마저 줄어들 수 있어서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지난 13일 하원에서 부채 이자로 나가는 돈만큼 병원과 학교, 미래 투자에 쓸 재원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하며 내년 재정적자를 GDP의 5%로 낮추는 예산안 통과를 촉구했다.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부담을 일부 계층에만 맡길 수 없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판단이다. 다비드 아미엘 공공회계 담당 장관도 부유층 등 특정 집단만으로는 재정 조정에 필요한 부담 대부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하며 부채 감축을 더 늦출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로서는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여론 속에서도 한정된 재원에 맞춰 나라 살림을 줄여야 하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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