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대중국 의존의 대가, EU 공급망 리스크 현실화
[딥파이낸셜] 대중국 의존의 대가, EU 공급망 리스크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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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공급망 의존 심화 속 EU 경제안보 리스크 확대 대만대표부 갈등·희토류 통제로 드러난 공급망 압박 선택적 디리스킹으로 전략 산업 자립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대중국 무역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EU의 대중국 상품 수출액은 1,995억 유로(약 347조4,000억원)에 그친 반면, 수입액은 5,595억 유로(약 974조2,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따른 무역적자는 3,600억 유로(약 626조9,000억원)로, 중국은 EU의 최대 상품 수입국 지위를 확고히 굳혔다. 우려되는 것은 적자 규모보다 산업 구조다. 전략 산업 전반의 공급망이 중국산 부품과 원자재에 집중되면서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나 수출 통제가 곧바로 유럽 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안보 리스크로 부상한 대중국 의존
오랫동안 유럽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경제적 효율성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기조를 유지했다. 중국은 낮은 생산비를 바탕으로 세계 제조업의 핵심 공급기지로 성장했고, 유럽은 이를 활용해 기업의 원가를 절감하고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녹색 전환에 필요한 설비와 부품을 확보해 왔다. 이에 따라 값싼 중국산 제품은 유럽 산업 경쟁력과 소비시장 확대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됐다.
그러나 공급망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격 경쟁력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공급망을 누가 통제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희토류 등 전략 산업의 핵심 공급망이 중국에 집중되면서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가 산업 전반의 충격으로 확산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비교우위에 기반한 국제 분업 역시 이러한 환경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국가가 생산 능력과 공급망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경제적 상호 의존은 협력의 기반인 동시에 압박 수단으로 변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식 고율 관세와 공급망 차단 전략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수반한다. 수입 물가 상승과 기업의 조달 부담 확대는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선택 역시 위험 부담을 키운다. 공급망 재편을 미루는 선택은 오늘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미래의 위험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유럽의 과제는 중국과의 교역 규모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 산업의 자립성과 공급망 복원력을 높여 의존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는 데 있다.

'조용한 강압'이 흔드는 유럽 경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수십 년에 걸친 산업정책과 국가 주도의 투자,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최근 유럽의 경계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이러한 영향력이 경제 영역을 넘어 외교·안보 분야와 결합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투아니아 사태다. 대부분 국가들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대만의 해외 공관 명칭에 '대만' 대신 '타이베이'를 사용한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2021년 유럽 최초로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대만대표부)에 '대만' 명칭 사용을 허용했다. 이후 중국은 리투아니아산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관련 부품을 사용하는 유럽 기업들까지 압박하면서 EU 공급망 전반에 불확실성을 확산시켰다.
주목할 부분은 공급이 실제로 중단되는 시점보다 그 이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파급효과다. 원자재 공급 지연 가능성만으로도 기업들은 투자와 생산 계획을 조정하고, 정부 역시 공급망 충격을 우려해 정책 결정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공급망 지배력을 활용해 상대국의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조용한 강압(silent coercion)'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러한 현상은 전략 산업에서도 뚜렷하게 관측된다. 반도체와 방위산업 장비에 필수적인 중희토류와 영구자석 공급망은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 수준이다. 중국이 지난해 관련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자 글로벌 기업들은 핵심 소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 생산 계획에도 차질 우려가 제기됐다. 녹색 전환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폴리실리콘부터 웨이퍼, 셀, 모듈에 이르는 태양광 패널 생산 전 과정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저렴한 중국산 제품은 유럽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뒷받침했지만, 동시에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의 상당 부분을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선택적 디리스킹 향한 유럽의 과제
EU는 이미 핵심원자재법(CRMA)과 넷제로산업법(NZIA), 경제강압대응수단(ACI) 등을 도입하며 공급망 재편에 착수했다. 그러나 광산 개발과 정제 시설 확충, 소재·부품 생산기지 구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공급망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려운 만큼 제도 도입만으로는 누적된 산업 기반의 취약성을 해소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유럽이 추구하는 방향은 공급망 단절이 아닌 '선택적 디리스킹(De-risking)'이다. 우선 핵심 공급망에 대한 가시성을 높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원자재와 부품 조달 구조를 일차 협력업체에 그치지 않고 하위 공급망까지 추적해 잠재적 위험을 조기에 식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배터리와 반도체, 희토류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공급처 다변화를 유도하는 정책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공공 조달 역시 중요한 수단으로 꼽힌다. 정부의 구매력을 활용해 유럽 역내 생산 기반과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지원하고, 핵심 광물 비축 제도를 확대해 공급 차질 발생 시 대응 능력을 높여야 한다. 여기에 재활용 기술과 대체 소재 개발, 자원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혁신이 병행될 경우 공급망 안정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일 국가 의존도가 높은 품목과 공급망 구조를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잠재적 위험을 투자자와 이해관계자가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동의 자유를 위한 공급망 재설계
이제 유럽이 직면한 과제는 경제 안보에 수반되는 비용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공급망 다변화와 전략 산업 육성은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과 기업 부담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안정적인 공급망과 정책 선택권, 대외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이기도 하다.
EU가 추진해야 할 과제는 에너지와 국방, 보건, 정보통신, 수자원, 첨단 제조업 등 핵심 분야의 공급망 취약성을 정밀 점검하고 위험 요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비용 효율성은 시장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공급망 안정성과 정책 자율성은 한 번 훼손되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유럽은 값싼 공급망이 언제든 전략적 취약성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했다.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시간은 더 이상 없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 China Dependency Is No Longer Cheap Trad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