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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강대국 틈바구니 놓인 유럽, 중견국 연대론 부상

[딥폴리시] 강대국 틈바구니 놓인 유럽, 중견국 연대론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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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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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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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은 정보는 거칠기 마련입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정리해 사회 현장을 부드럽고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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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露 주도 질서 속 유럽의 중견국 현실 
집단안보와 공동 대응 체계 구축 필요성 부각 
방위·무역·에너지 정책 연계해 전략적 자율성 확대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의 51%를 미국,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차지했다. 반면 서유럽의 전통적 강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의 군사비 비중을 모두 합쳐도 10% 선을 밑돌았다. 오늘날 중견국들이 직면한 지정학적 딜레마는 이 같은 냉엄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유럽이 경제력이나 군사력, 산업 기반, 외교적 영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별 국가의 역량만으로는 초강대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 중견국 간 집단안보 논의가 힘을 얻고 있는 배경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럽의 전략적 위상 변화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중견국으로 분류하는 데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세 나라는 세계 경제를 대표하는 주요 국가이자 강력한 행정 역량과 글로벌 기업, 오랜 외교 전통을 보유한 전통적 강국들이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은 핵보유국이자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그럼에도 미·중 전략 경쟁이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현재의 환경에서는 전통적인 강대국 개념만으로 유럽의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중견국이라는 개념이 오늘날 유럽의 전략적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보여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자료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에 근접한 수준이며 독일과 프랑스, 영국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곧 전략적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군사 역량과 방위산업, 디지털 인프라는 여전히 외부 의존도가 높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휘 체계와 핵 억제 체제는 사실상 미국이 뒷받침하고 있으며, 청정기술과 핵심 광물 공급망은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러시아 역시 군사력과 사이버 공격, 에너지 무기화를 통해 상당한 압박 수단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충분한 자본과 기술력, 제도적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이를 전략 자산으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국제질서의 주요 행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주: 유럽의 국방비 지출은 세계 평균 대비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는 장기간 누적된 안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응 성격이 강하다.

강대국 경쟁 속 집단안보 부상

과거 국제사회는 법과 제도를 중심으로 국가 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운영돼 왔다. 물론 이러한 체제가 언제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강국이 국제질서 유지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던 시기에는 일정한 안정성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미국은 관세와 안보 의존성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고, 중국은 시장 규모와 산업 경쟁력, 해양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군사력과 경제적 압박, 정치적 강압을 주요 수단으로 동원한다. 이런 환경에서 과거 질서의 복원만을 기대하는 접근으로는 변화한 국제정치 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

일부 국가에는 중립 노선이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스위스는 강대국 진영에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유지해 온 대표적 사례다. 다만 중립은 국제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 외부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에는 이러한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들 국가의 안보는 NATO에 기반하고 있으며 경제 역시 해상 교역망과 에너지, 반도체, 데이터, 원자재 공급 체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중립 노선을 택한다고 해서 안보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과 분열에 따른 비용만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협력 체계다. UN 헌장은 침략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집단안보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따라 중소국과 중견국이 공식 기구 안팎에서 협력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는 추세다.

관세 충격이 드러낸 중견국의 취약성

중견국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할 경우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는 지난해 관세 충격 과정에서 분명하게 확인됐다. 미국이 기본 관세를 도입하고 주요 교역국별로 차등 관세를 적용하자 전통적 동맹국들마저 개별적인 압박에 직면했다. 각국이 관세 면제나 예외 적용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 협상에 나서는 순간 협상 주도권은 강대국으로 넘어간다. 결과적으로 중견국의 협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유사한 취약성을 안고 있었음에도 공동 대응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던 만큼 대응이 늦어진 데 따른 비용 역시 개별 국가의 몫으로 돌아갔다.

중견국의 대응이 초강대국을 상대로 한 경제 대결일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강압적 통상 조치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다. 한국과 캐나다, EU, 일본,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협력 의지가 있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은 관세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상설 협의체를 구축할 수 있다. 공동 법률 대응과 보복 조치 공조, 통관 정보 공유, 취약 품목 관리, 대체 공급망 확보 등은 그 자체로 강력한 상호 억제력을 발휘한다. 특정 국가를 겨냥한 압박은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주요 선진국들이 공동 대응에 나설 경우 강압에 따르는 부담 역시 크게 늘어나는 탓이다.

유럽은 이미 공동 무역정책과 경쟁정책, 단일시장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방위 역량 강화를 위한 '레디니스 2030(Readiness 2030)'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 간 연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방은 군사력 강화에, 무역은 시장 확대에 집중하고 에너지와 기술 정책은 각각의 과제를 따로 추진하는 구조다. 그러나 항만 안보와 핵심 광물 공급망, 데이터 보안과 에너지 안보는 긴밀하게 연결된 사안이다. 이에 따라 중견국 집단안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역과 국방, 에너지, 인프라를 별개의 정책 영역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과 안보 정책을 하나의 전략 틀 안에서 연계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주: 관세 압박은 국가별로 대응을 분산시킬수록 위력이 커지며, 그 파급효과는 국제 통상 환경 전반의 불확실성 확대로 이어진다.

실용적 연대와 공동 대응의 조건

물론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된다. 유럽 내부의 정치적 분열과 한·일 간 역사 문제,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 노선, 특정 진영 편입을 경계하는 아세안의 입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모든 현안을 포괄하는 대규모 연합보다, 필요에 따라 협력 범위를 조정하는 실용적 연대가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다. 명확한 원칙과 운영 체계 아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하는 방식이다. 모든 국가가 모든 사안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참여국과 역량만 확보하더라도 강대국의 일방적 압박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접근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는 해양 안보를 넘어 핵심 광물과 에너지, 항만, 기술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확장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역시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균형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분야별 협력 구도에서는 충분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아세안 또한 안보 현안마다 동일한 입장을 취하기는 어렵지만 식량안보와 에너지 안보, 공급망 안정화, 재난 대응 등 실질적인 분야에서는 협력 기반이 비교적 탄탄하다.

서유럽 역시 대서양 동맹과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유럽 안보의 핵심 요소지만 일방적 의존이 심화되는 구조는 장기적인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반대로 분산된 무기체계와 취약한 공급망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주권만 강조하는 방식 역시 실질적인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책 과제 역시 현실적이어야 한다. 방공 체계와 드론, 포탄 등 핵심 전력의 공동 조달을 확대하고 사이버 방어 역량과 해상 수송 능력도 함께 강화할 필요가 있다. 초강대국의 공급 차단이나 시장 접근 제한에 대비한 모의훈련과 비상 대응 체계 구축도 요구된다. 특히 대체 공급망과 대체 조달 수단을 얼마나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지 점검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과 정책 수립에 반영하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영향력을 결정하는 공동 역량

중견국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는 국제회의 참석이나 공동성명 발표를 영향력 그 자체로 해석하는 점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은 형식적인 참여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특정 국가나 연합을 배제할 경우 상대방이 경제적·군사적·외교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형성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협상력이 생긴다.

서유럽과 주요 중견국들이 마주한 선택지는 분명하다. 공동 대응 능력을 구축해 국제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국가들이 정한 규칙과 환경에 적응하는 데 머물 것인지의 문제다. 향후 10년은 공동 방위와 통상 협력, 공급망 안정, 위험 관리 역량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결집하느냐에 따라 중견국의 위상이 좌우될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Middle Power Collective Security: Europe’s Only Real Seat at the Tabl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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