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어 유럽 시장도 잃을 판” 중국산 저가 공습에 빗장 거는 EU, 中 보조금 경제 ‘부메랑’으로
“미국 이어 유럽 시장도 잃을 판” 중국산 저가 공습에 빗장 거는 EU, 中 보조금 경제 ‘부메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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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잉생산’ 저가 물품들, 미국 관세에 막혀 유럽으로 유럽 산업 기반 초토화, EU 집행위 ‘유럽판 301조’ 만지작 中 수출 확장 전략, 거세지는 통상장벽과 정면 충돌

중국의 국가 보조금 정책이 글로벌 통상질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이 먼저 고율 관세와 수출통제로 대응한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무역방어 체계 전면 강화에 착수했다. 중국은 자유무역 수호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유럽은 과잉생산과 시장 왜곡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조금으로 키운 생산능력이 글로벌 시장을 흔들면서 그 후폭풍이 중국의 수출시장 축소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EU ‘中 겨냥’ 무역 대응 강화 촉구, 중국 즉각 반발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만약 유럽 측이 일방적으로 새로운 무역 수단을 내놓고 차별대우 조치를 취한다면 중국 측은 단호히 반격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 스스로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유럽 측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준수하며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견지하고 보호주의와 일방주의에 단호히 반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중국의 반발은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천명한 대중국 경제안보 규제 예고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EU 집행위는 성명을 내고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과 협력과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현재의 대중 무역·투자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와 안보 이익이 점점 밀접하게 얽히고 있는 만큼 두 영역 모두에서 강력하고 일관된 대응이 요구된다"며 중국과 무역 불균형 문제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EU 정상회의에서 추가로 논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의 상품 무역 적자는 3,600억 유로(약 635조3,800억원) 고지를 돌파했다. 이는 2024년의 3,120억 유로(약 550조6,000억원)에서 불과 1년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치로, EU가 무역 장벽을 쌓아 올리는 근거가 됐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리투아니아 등 5개국은 최근 EU 집행위와 회원국들에 공동 비공식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들 국가는 의견서에서 특정 국가명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국가가 구조적 산업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있다”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
5개국은 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과 무역 조사 착수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WTO 제소 확대와 조사 인력 확충, 무역 구제 판단 기준에 ‘경제 안보’ 개념을 포함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아울러 외국 기업이 EU 조사를 우회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강화하고, 개별 외국 기업에 직접 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EU 집행위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미국의 ‘무역법 301조’와 유사한 방식의 산업 보호 체계로 평가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달 18일과 19일 양일간 개최되는 유럽이사회 정상회의 무대에서 EU 정상들을 대상으로 중국의 과잉생산 압박을 제어할 구체적인 경제 안보 권고안을 전격 발표할 방침이다. 이 ‘유럽형 301조’가 도입되면 EU는 중국의 비공식적인 위안화 저평가 왜곡 조작은 물론, 유럽 자산시장의 취약 부문인 △전기 자동차 △화학 제품 △청정에너지(태양광·풍력) 생태계를 타깃으로 삼아 유연하고 정밀한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된다.
‘과잉 공급’ 밀어내는 중국, ‘제조 기반’ 지키려는 유럽
EU의 이 같은 강경 대응은 단순한 통상 갈등의 산물이 아니다. 유럽 내부에서는 중국의 국가 주도 산업정책이 WTO 체제가 전제한 공정경쟁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수년 전부터 확산돼 왔다. WTO 역시 과도한 관세와 함께 시장 왜곡형 보조금을 주요 규제 대상으로 설정했다. 보조금으로 인해 상대국 산업이 피해를 입을 경우 상계관세와 무역구제 조치를 허용한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규모 산업 보조금과 공급 확대 전략은 기존 통상 규범의 조정 능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유은행이 결합한 지원 체계 아래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철강 산업의 생산능력이 급격히 확대됐고, 남는 물량은 해외 시장으로 유입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관세 전쟁을 시작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행정부는 WTO 분쟁해결 절차만으로는 중국의 공급 확대 전략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율 관세와 수출통제, 공급망 재편 정책을 본격화했다.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태양광 제품에 이어 최근에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까지 규제 범위가 확대됐다.
EU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이 지속되면서 유럽 제조업의 수익성과 투자 여력이 동시에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화학, 청정에너지 산업은 유럽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전략 분야다. EU가 최근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를 경제안보 의제로 격상시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자유무역과 공정경쟁 수호를 주장하고 있지만 EU의 판단은 다르다. EU는 국가 보조금과 정책금융, 환율 경쟁력이 결합된 중국식 산업 모델이 시장 가격 형성을 왜곡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와 반(反)보조금 조사 확대도 이 같은 인식 변화의 결과다.

中 기업 앞다퉈 모로코에 공장, EU ‘관세회피 수출기지’ 우려
중국 기업들의 모로코 투자 확대 역시 유럽을 자극하는 변수다.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 기업들이 잇따라 모로코 생산거점 구축에 나서면서 EU 내부에서는 ‘관세회피형 우회수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로코는 유럽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와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동시에 확보한 국가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유럽 관세장벽 부담을 줄이면서 시장 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으로 평가된다. 이에 수년간 중국 배터리와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투자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흐름이다.
모로코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직접투자(FDI) 프로젝트 발표는 2023∼2025년 60억 달러(약 9조원)로, 대부분이 공장 신설이다. 항구도시 탕헤르에서는 500만㎡ 면적의 농업지대가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로 바뀌었고 여기에 센추리 타이어 공장, BTR 배터리 공장, APG 브레이크 공장 등 10여 개 중국 기업이 공장을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다. 탕헤르와 카사블랑카 중간에 있는 케니트라에는 중국 배터리 업체 고션이 13억 달러(약 1조9,600억원)짜리 대형 시설을 짓는 중이다. 2023∼2025년 중국이 지원한 북아프리카 투자 프로젝트는 모로코 19건, 이집트 9건, 알제리 6건으로, 아랍에미리트(UAE, 3건)나 사우디아라비아(2건), 카타르(1건)보다 훨씬 많았다.
이에 유럽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모로코 투자가 국가 보조금을 받아 저렴하게 생산된 제품들을 유럽에 대거 유입시켜 유럽 산업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EU는 중국의 전기차 산업 보조금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에 최대 45%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원산지 규정을 지켜 모로코산 제품이 되면 무관세로 EU에 수출될 수 있다.
더 큰 우려는 중국 자본과 기술, 핵심부품이 모로코 생산라인을 거쳐 유럽으로 재유입될 경우 기존 상계관세의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EU 집행위는 최근 우회수출 차단 규정과 공급망 추적 시스템 강화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 공동 의견서에도 우회수출 방지 규정 강화와 기존 무역방어 제도의 집행력 확대 필요성이 포함됐다. 중국 기업들의 해외 생산거점 확대가 오히려 유럽의 통상규제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후유증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기차 산업은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급성장했지만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수요 증가 속도를 추월했다. 공급 과잉은 가격전쟁으로 이어졌고 업계 전반의 수익성을 훼손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수십 개 업체가 생존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중국 당국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자동차 업계의 과도한 가격 인하 경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낙후 생산설비 정리와 공급 질서 정상화를 강조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이 성장 단계에서 구조조정 단계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중국의 차기 산업정책에서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차기 5개년 계획에서 전기차 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 방향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급 확대 중심 정책이 남긴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산업 효율성과 수익성 회복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도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무역방어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중국이 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할수록 글로벌 시장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