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위안화 안전판 확대, 미국은 페트로 달러 사수, 통화스와프 전선으로 옮겨붙은 美·中 헤게모니 게임
중국은 위안화 안전판 확대, 미국은 페트로 달러 사수, 통화스와프 전선으로 옮겨붙은 美·中 헤게모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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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식 유동성 공급 체계 겨냥한 중국 중동 달러 방어선 재정비 착수한 미국 통화스와프 전선으로 번진 미·중 패권 충돌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유동성 공급 체계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상설 통화스와프와 국제 결제망을 기반으로 글로벌 유동성 공급국 지위를 공개적으로 노리기 시작했고, 미국은 이에 맞서 중동 동맹국들과의 달러 스와프 확대 검토에 착수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는 양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정학 충돌 국면마다 유동성을 공급해 온 미국의 지위에 중국이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미·중 경쟁의 무게중심도 반도체·관세 전쟁에서 유동성 공급 체계 경쟁으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전 인민은행 부총재 “연준의 글로벌 구제금융 독점 끝내야” 통화스와프 ‘생명선’ 효과 입증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 전 부상무이사이자 중국인민은행(PBOC) 부총재를 지낸 주민(朱民)은 최근 청두에서 개최된 ‘칭화 PBCSF(PBC School of Finance) 글로벌 금융 포럼’에서 “중국이 각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지렛대 삼아 글로벌 금융 위기 시 자금을 지원하는 ‘최후의 대부국(Lender of Last Resort)’ 자리를 꿰차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화 무역 결제 확대를 넘어 위기에 처한 국가에 비상 유동성을 공급하는 글로벌 금융의 중심축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공론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 전 부총재의 문제의식은 위안화 결제 확대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여기엔 위기 시 실제 달러 대체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만이 국제 금융 질서에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재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사실상 최후의 대부국 기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장악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연준은 주요 중앙은행들과의 상설 통화스와프 체제를 통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며 글로벌 금융 안전판 역할을 수행했다.
주 전 부총재는 중국이 확대해 온 통화스와프 체계를 연준식 유동성 공급 모델의 대안 축으로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그동안 전 세계 국가들과 체결해 온 통화스와프 협정이 향후 국제 금융 비상사태에서 중국이 최후의 대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제 중국도 최후의 대부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때가 됐다”며 “최근 수년간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은 국가들이 자국 금융 위기 때 위안화를 신속하게 인출해 국제 결제망 마비 문제를 해결한 성공 사례들이 이를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화스와프는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현지 통화 유동성 공급 도구지만, 부채 위기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에 재정 구제금융을 제공함으로써 IMF 등 다자간 금융기관의 구제 활동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은 이러한 금융 영토 확장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32개국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여기에는 글로벌 사우스(신흥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포함돼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해 11월 원·위안 통화스와프 계약을 5년 연장했다. 규모는 4,000억 위안(약 89조원)으로, 양국은 이를 무역·투자 촉진과 금융시장 안정, 상호 진출 금융기관의 유동성 지원 장치로 규정했다.
이 계약은 양국 금융협력보다는 통화권 경쟁의 성격이 짙게 반영된 조치로 해석된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안보 동맹이자 대규모 대미 투자국이지만, 미국의 상설 달러 스와프 네트워크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한국과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 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하자 미국과 한시적인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킨 적은 있으나, 상설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적은 없다. 미국의 상설 달러 유동성 스와프 라인은 캐나다(BoC)·영국(BoE)·일본(BoJ)·유럽중앙은행(ECB)·스위스 중앙은행(SNB)으로 제한돼 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은 물론 서방 선진 경제국과도 장기 위안화 스와프를 유지하며 금융 안전판의 제도적 접점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미국도 통화스와프 라인 확대 적극 추진
이 같은 중국의 스와프 외교 확대는 미국의 달러 유동성 운영 기조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지난 4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란 전쟁 이후 많은 동맹국들이 전쟁의 여파를 수습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 왔다며 중동 및 아시아 국가들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통화스와프를 요청한 많은 나라들은 재정 상황이 튼튼하고, 외환보유액도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는 주요 국가보다 많다”고 짚었다. 이어 “시장이 안정적인 시기에도 추가적인 금융안전 장치를 모색하는 동맹국들의 선제 대응과 위험 관리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미 재무부는 외국 통화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연준과 별도의 스와프 라인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미국에 통화스와프를 요청한 국가 중 한 곳은 아랍에미리트(UAE)로, UAE 당국자는 지난달 말 미국과의 무역·투자 관계를 심화하기 위해 스와프 라인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UAE가 미국에 통화스와프를 요청해 온 것과 관련해 “도울 수 있으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처럼 통화스와프에 적극성을 보이는 데는, 이란 전쟁이 촉발한 국제유가 급등과 걸프 지역 동맹국들의 경제적 타격이 되레 중국의 역할과 위안화의 위상만 높여주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은행 결제 시스템으로 활용되는 SWIFT(세계은행 간 금융통신협회)의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달러의 국제 거래 결제 비중은 전월의 49.2%에서 51.1%로 상승하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달러 패권이 더 강화됐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다. 미국 주도의 SWIFT 수치만 보면 달러의 국제결제 비중이 분명 늘어나긴 했지만, 중국이 SWIFT의 대항마로 내세운 CIPS(국경 간 지급·청산 유한책임 공사) 수치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중국 상하이증권보에 의하면 최근 CIPS를 통해 처리된 일일 거래액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1조2,200억 위안(약 27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인 2월 일평균 거래액이 6,197억 위안(약 137조8,300억원)이던 것이 3월에는 9,205억 위안(약 204조7,000억원)으로 급증하더니 4월을 넘어서는 1조 위안(약 222조4,000억원)을 돌파했다.
CIPS의 거래액이 급증한 것은 주요 산유국과의 원유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SWIFT를 통한 위안화 결제 비중은 5%를 밑돌면서 달러화에 견줘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지만, CIPS까지 고려하면 전 세계 위안화 결제액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는 셈이다. 작년 6월 기준, CIPS 참여 기관은 121개국 1,690개에 달한다. 특히 지난 2018년 본격적인 제재를 받아 달러 결제가 사실상 금지된 이란은 이후 중국에 원유를 수출하면서 거의 전액을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전쟁을 계기로 위안화 결제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21년 1% 수준이던 원유 결제의 위안화 비중은 2025년 7%로 높아졌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때 통행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인데, 위안화와 가상자산을 통한 징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달러 안전판 흔들리자 파고든 위안화 네트워크
이렇듯 미국이 걸프 동맹국들과의 통화스와프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실익 때문만은 아니다.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청한 UAE가 이란의 공격에 따른 경제적 타격으로 달러화가 부족해질 경우 원유 거래 시 위안화 등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하겠다고 미국 측을 압박한 것에 비춰볼 때 미국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50년 넘게 유지돼 온 '페트로 달러'의 위상이 이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실제로 걸프 동맹국들과 통화스와프 체결 방식을 통해 동맹의 지위를 강화하는 조치에 나설 경우, 1974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비밀 협정에 준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의 금본위제 폐지로 촉발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상실 우려 확대와 1973년 제1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키신저 전 장관은 사우디를 극비로 방문해 비밀 협정을 맺었다. 모든 원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는 대신에 미국은 사우디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가 원유를 팔아 확보한 달러를 다시 미 국채 등 달러 자산에 재투자하도록 했다. 미·사우디 간 비밀 협정은 걸프 산유국으로 확대됐고, 이는 50여년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핵심적인 기반이 됐다. 무엇보다 중동산 원유가 전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을 이루는 핵심이란 점에서 달러를 통한 결제는 달러 수요를 확산하고, 페트로 달러의 미국 내 환류를 통해 안정적인 미 국채 발행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미국엔 매우 강력한 동력이었다.
최근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걸프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달러의 지배력과 기축통화 지위를 지속하고 대체 결제 시스템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라고 언급한 것도, 최근 위안화 국제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 대한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달러 패권의 핵심 축이 원유 결제와 글로벌 유동성 공급 체계라는 점에서, 미·중 경쟁의 무게중심도 반도체·관세 전쟁을 거쳐 통화스와프와 국제 결제망 지배력 경쟁으로 빠르게 확대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