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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트럼프 관세는 ‘미국 국가 안보’와 어떤 상관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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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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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국가 안보’ 내세워 중국 포함 3개국에 관세 결정
미국 내 법적 절차 통한 번복은 ‘불가능’
WTO 제소해도 미국 응하지 않으면 ‘무용지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최근 국가 안보를 구실로 캐나다, 멕시코, 중국 수입품에 관세 부과를 결정하며 국내외의 법적 논쟁이 촉발됐다. 트럼프 측의 설명은 불법 이민과 펜타닐을 포함한 마약 밀수가 미국에 보기 드문 위협을 안긴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는 추가 협상을 위해 집행이 한 달 미뤄졌지만 중국 수입품에 대해서는 이미 10%의 관세가 매겨졌다.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만 선언하면 언제든 편리하게 관세가 집행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해당 조치의 법적 근거는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의 실효성에 대한 질문도 뜨겁다.

사진=CEPR

트럼프, 중국·캐나다·멕시코에 관세 부과

논쟁의 중심에는 1977년에 제정된 ‘국제 비상 경제 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이하 IEEPA)이 있는데, 이 법은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시 국제 상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인정한다. 트럼프는 전면적 관세를 정당화하기 위해 해당 법안과 76년 제정된 ‘국가 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ies Act, NEA)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무엇이 비상사태를 구성하는지 규정하지 않아 상당한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전통적으로 IEEPA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연방대법원도 유사 상황에서 폭넓은 행정적 재량권을 인정한 바 있다. 국회 역시 이미 선포된 국가 비상사태를 철회할 수 없기 때문에 트럼프 관세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가 비상사태와 관세 부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러한 IEEPA의 모호성으로 인해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국제 무역을 규제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에 관세가 포함되는가?’와 ‘그러한 관세가 마약 및 불법 이민으로 인한 비상사태와 관련 있는가?’다. 전직 대통령 누구도 관세 부과를 위해 IEEPA를 인용한 일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관세 도입을 위해 1971년 사용한 적대국 무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이하 TWEA)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도 법원은 관세 조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권한이 대통령에 있다며 닉슨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따라서 IEEPA가 TWEA를 대체했다 쳐도 해당 판례가 법적 해석에 영향을 미쳐 트럼프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확률이 높다.

하지만 메이플 시럽이나 아보카도 같은 물건에 매겨지는 관세와 불법 마약 단속 간 관계는 기껏해야 미약한 수준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법원이 특정 정책과 목적 사이의 관련성을 물은 적도 있지만 지난 판례를 볼 때 트럼프의 관세 조치와 그가 주장하는 목적 간 관계를 따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관세 시행을 위해 인용한 미국 법 (국가 비상사태 선언이 가장 간편)
주: 1974년 무역법 제301조(Trade Act of 1974, Section 301): 태양 전지판, 세탁기, 철강, 알루미늄 등에 적용, 대상 국가 중국, 미국 무역 대표부가 무역 상대국이 부당한 행위로 미국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할 시 발동 가능, 4년 기한이지만 예외 적용 가능 / 1962년 무역 확장법 제232조(Trade Expansion Act of 1962, Section 232): 철강 및 알루미늄에 적용, 대상 국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중국, EU, 인도, 멕시코, 캐나다 등이 대상 국가, 미국 상무부가 수입품이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제기한다고 판단 시 발동 가능, 기한 없음 / 국제 비상 경제 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모든 수입품에 적용, 캐나다, 멕시코, 중국이 대상 국가,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언 시 발동 가능, 4년 기한이지만 대통령이 연장 가능/출처=CEPR

WTO ‘미국 패소 결정’해도 달라질 것 없어

미국 밖에서는 해당 관세의 적법성이 국제 무역 협정하에서 심의되고 있다. WTO는 이미 트럼프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부과한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합의체는 ‘관세 조치가 국제 관계상의 비상사태로 볼 때 적법하다’는 미국 측의 주장을 반박하며 패소를 결정했다.

이 판례는 트럼프 관세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WTO가 같은 논리를 적용해 이달 내려진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조치는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WTO 판결에 대해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며 집행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사례가 여러 번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exico–Canada Agreement, 이하 USMCA)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협정의 안보 예외 조항은 WTO보다도 광범위해 미국이 국가 안보를 해석할 수 있는 재량권은 충분하다. 따라서 USMCA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USMCA조차 없는 중국은 이미 WTO에 제소한 상황이지만 승소한다 해도 미국이 집행에 응하지 않는 이상 상징적인 승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 국가의 행정 권력이 국제 무역 “판 흔드는 사례”

미국 내에서 법적 절차를 거쳐 관세 조치가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IEEPA 등 미국 법의 모호한 규정과 법원의 행정권에 대한 존중이 맞물려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도전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WTO의 기능은 미국의 비협조로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고 USMCA 역시 국가 안보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승리한다고 해도 상징적 의미 외에 실질적인 결과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협상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는 방법일 것이다. 어차피 트럼프가 관세를 통해 의도하는 것은 상대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다자간 기구보다 양자 간 협상을 선호해 온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 무역 규범을 준수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트럼프 관세의 적법성 논쟁은 미 국내법과 국제 무역 규정 간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당 조치는 미국법상으로 적법하고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지만 미국 밖에서는 확립된 규범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범이나마 미국의 절차적 무효 주장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트럼프 관세는 자국에서 견제받지 않는 행정 권력이 글로벌 무역의 양상까지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원문의 저자는 아치우스 아닐(Achyuth Anil) 포용적 무역 정책 센터(Centre for Inclusive Trade Policy)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Chaos theory: Assessing the legal validity of Trump’s tariff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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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대러시아 관계 강화에도 나아지지 않는 ‘북한 인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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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러시아와 관계 강화로 국제 사회 위상 높여
식품 가격, 환율 인상으로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
러시아 무역 혜택은 모두 “김정은 수중으로”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로 국제 사회에서 지위를 한층 굳건히 했으나 국내 현실은 갈수록 참혹해지고 있다. 정권이 러시아와의 무역 및 대외 관계 다변화를 축하하는 사이 식료품 가격 인상과 환율 폭등, 통제 강화 등으로 일반 국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이러한 국내외 현실의 대비는 북한 정권의 야심과 인민들의 삶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생겼음을 말해 준다.

사진=동아시아포럼

북한, 파병 대가로 대러시아 관계 강화

북러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병력과 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지원이 양국 관계를 공고화한 가운데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연료 공급과 국제 통화 결재 등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랜 경제적 후원자인 중국 의존을 벗어나 동맹국 관계를 다양화하려는 북한의 오랜 바람도 이뤄졌다.

작년 중국과의 무역은 전년 대비 5% 줄었으나 여전히 북한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2023년 팬데믹 이전의 82%를 회복해 점진적으로 정상화되는 모습이다. 그 사이 북한과 러시아는 무역 규모 확대를 공언하고 있지만 아직 국경 지대에서 뚜렷한 무역 흐름의 증가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북한의 대러시아 관계 강화는 두 가지 목적에 부합한다. 핵심 물자 조달과 오랜 숙원인 대외 관계 다각화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신중한 태도로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데, 북한의 안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된다.

식료품 가격 및 환율 인상으로 민간 경제 ‘피폐’

하지만 이러한 대외 관계에서의 성과와 달리 북한의 국내 현실은 훨씬 참혹한 이야기를 전한다. 작년 식료품 가격과 대외 환율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올라 심각한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식량과 연료가 도착했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혜택이 민간 경제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경제 침체의 근본 원인은 중앙화된 통제 방식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1990년대 경제 붕괴 및 기근으로 잃었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국영 기업과 국제 무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암시장에서의 외환 거래를 단속해 환율을 통제하고 인위적인 환율을 도입한 것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지금까지 방관해 온 식료품 민간 거래에 대한 법적 조치도 억압과 물자 부족에 대한 공포를 심화하고 있다.

경제난에 더해지는 공포는 북한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해외 미디어에 대한 통제와 검열 강화로 모든 문화적 영향력을 뿌리 뽑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그간 김정은 정권의 전형적 특징으로 여겨져 왔으나 작년에 극단적인 수위까지 치솟아 북한 전역에는 개방성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경제난, 빈부 격차’ 개선 가능성 “안 보여”

북한 주민들의 궁핍은 군산복합체와 민간 경제가 완전히 분리된 경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 제공 물자 생산을 책임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공장과 업체들이 모든 자원을 김정은의 ‘사적 경제’(court economy)에 상납해 일반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거래도 대부분 물물 교환 방식을 띠고 있어 민간 경제를 해외 무역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북한 경제의 미래는 암울하다. 김정은 본인도 심각한 경제 상황과 대도시-지방 간 엄청난 불평등을 인정했지만 정책 실행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향후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화된 공장을 건설한다며 작년에 선언한 ‘20x10 지역 개발 정책’(Regional Development 20×10 Policy)은 추가 자원과 구조 개혁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 실질적인 경제적 조치 없이 이념적 선동에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모순은 더욱 선명해졌다. 높아진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에 비해 국내 경기와 국민들의 삶은 피폐함 자체다. 국민 복지를 팽개치고 군사적, 전략적 목표에만 골몰한 정권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이미 수십 년간 역경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불투명하고 곤궁으로 가득한 미래를 말이다.

원문의 저자는 벤저민 카체프 실버스타인(Benjamin Katzeff Silberstein)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강사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North Korean international gains belie its domestic struggle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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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기업들 탄소 중립 선언, “이윤 목적이라 더 믿을 만”

[딥테크] 기업들 탄소 중립 선언, “이윤 목적이라 더 믿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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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부문 탄소 중립 선언, 기후 행동 ‘구원 투수’
대기업, 기관 투자자가 “리더십 발휘”
미래 탄소세 절감 위한 이윤 목적? “그래서 더 신뢰”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2016년 이후 전 세계 기업들의 탄소 중립화(Net Zero, 탄소 순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 선언이 급속히 증가했다. 일부는 이러한 공약을 그린워싱(greenwashing, 친환경을 가장한 마케팅 행위)으로 폄하하지만 이들이 탈탄소화로 가는 여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정책이 제한돼 있는 상황이나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익성에 기초한 민간 부분의 주도가 공공 부문의 기후 대응 노력에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CEPR

기업들 탄소 중립 선언 “봇물”

2015년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에서 2050년까지 글로벌 온실가스 순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후, 2016~2023년 기간 1,200개를 넘는 기업들이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각국 정부들이 지속되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설득력 있는 장기적 기후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현실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기후 정책의 어려움은 두 가지 시장 실패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데서 비롯된다. 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 오염과 친환경 기술의 파급 효과(technology spillover, 기술 혁신의 대가가 개발 기업보다 전체 사회에 더 많이 배분됨)로 인한 투자 부족이 그것이다. 따라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배출을 줄이기 위한 탄소세 시행과 친환경 혁신을 위한 보조금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두 가지 정책 사이의 불균형이 탈탄소화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은 친환경 혁신에 대한 지원보다 탄소세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2022년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에 따라 제대로 된 탄소 가격 정책 없이 보조금만 우선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과 기관 투자자들이 의외의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다. 일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익 추구 기업들도 미래 탄소세 절감 등의 경제적 동기 부여만 있다면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대기업 및 기관 투자자, “구원 투수로”

기업들의 탄소 절감 공약은 기존의 손익 계산을 벗어나, 친환경 기술에 대한 과투자와 혁신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함으로써 본인들의 탈탄소화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다른 기업들 비용을 낮추는 기술적 파급 효과까지 유발해 결국 산업 전반에 걸친 친환경 기술 도입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들은 시장 선도 기업으로 기능한다. 자료상으로도 2016~2023년 기간 대기업들이 소규모 기업들의 탄소 중립화 선언 동참을 지속적으로 유도한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자산 가치 100억 달러(약 14조4천억원)를 넘는 기업들(대기업으로 정의)이 먼저 서약하고 중소기업들이 따라오도록 이끄는 식이다. 산업 내 추세가 아닌 기술적 파급 효과가 탈탄소화 투자를 견인한다는 이론과도 들어맞는다.

기업 규모 외에 ‘친환경 공동 소유’(green common ownership, 기후 목표에 동참하는 기관 투자자들이 소유한 기업들의 연합)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등의 기관 투자자들은 피투자 회사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혁신 효과를 확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규모별 탄소 중립 선언 기업 수(누적)
주: 연도(X축), 누적 기업 수(Y축), 대기업(청색), 중규모(주황), 소규모(녹색), 최소 규모(검정)/출처=CEPR

기업들 공약, ‘친환경 보조금 약한’ 유럽에 더 큰 도움

이러한 기업들의 기후 공약은 정부 정책이 제한적인 영역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탄소세가 시행됐지만 친환경 보조금이 제한적인 지역의 경우 미래 탄소세를 절감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친환경 투자의 강력한 동기로 연결된다. 반대로 충분한 보조금이 지급되지만 탄소세가 없는 지역은 이미 친환경 기술 혁신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다.

흥미롭게도 민간 부분의 공약은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정부는 기후 정책 실행과 관련해 시간 불일치(time-inconsistency) 문제를 겪는데, 이는 기업들의 친환경 투자가 늘어날수록 미래 탄소세율을 내리려는 경향을 말한다. 당연히 정부 정책의 일관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간 기업들이 더 많은 친환경 전환 책임을 떠맡을수록 정부는 덜 엄격한 탄소세 목표를 내세우면서도 기후 목표를 달성해 나갈 수 있다. 정부 정책의 신뢰가 강화되는 셈이다.

결국 민간의 참여가 정부 정책의 한계를 메꾸어 준다는 것인데 특히 탄소세가 강력히 시행되고 있지만 친환경 기술 보조금이 약한 유럽의 경우 기업들의 공약은 크나큰 힘을 발휘한다. 반면 미국은 강력한 보조금으로 인해 민간 부분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탄소세에 대한 정치권의 지원도 부족해 기업들의 탄소 중립 선언 동기는 별로 없다.

수익성 기반 행동이라 “더 믿음직”

지금까지의 논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가장 먼저 전환 리스크(transition risk, 지속 가능 경제로의 전환으로 인한 사업상의 리스크, 미래 탄소세 포함)가 기업들의 탄소 중립 선언의 가장 큰 동기부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더 많은 기업이 탄소 중립을 선언할수록 덜 엄격한 정책을 가지고도 기후 목표 달성이 가능해진다.

또한 규제 당국은 반독점 규제와 기업 간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친환경 공동 소유’가 반독점 이슈를 점화할 가능성도 있지만 기술적 파급효과를 촉진해 탈탄소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민간 부문의 참여가 정책의 한계를 메울 수 있지만 완전한 대체재는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 효과성은 오직 미래 탄소 가격(carbon pricing) 정책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기업들의 기후 공약은 순수한 이타적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재무 전망에 기반한 합리적 수익 극대화 전략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전환 리스크를 낮추고 기술적 파급 효과를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바이럴 아차리아(Viral Acharya)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스턴 경영대학원(Stern School of Business)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Corporate climate commitments: A profit-driven strategy, not just empty promise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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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동맹’ 러시아와 돌연 거리두기 선언한 중국, ‘시베리아의 힘’ 2단계 프로젝트 연기

‘에너지 동맹’ 러시아와 돌연 거리두기 선언한 중국, ‘시베리아의 힘’ 2단계 프로젝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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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부 일대 LNG 공급 추진
2019년 12월부터 단계적 개통
또 다른 수입처 미국엔 15% 관세

중국이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수급 불안정성 해소 목적으로 추진해 온 러시아와의 공동 프로젝트 ‘시베리아의 힘-2’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건설을 보류하면서다. 주변국인 몽골의 반대, 러시아와의 가격 협상 난항 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 같은 중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러시아 의존도↓, 호주 등으로 공급망 다변화

14일(이하 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와 추진 중인 시베리아의 힘-2 파이프라인 건설을 보류하기로 최근 가닥을 잡았다.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지난해 공급 계약을 맺은 호주와 투르크메니스탄, 카타르 등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에너지 수입 다변화 전략을 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14년 중국과 러시아 양국 간 합의로 가동된 시베리아의 힘 프로젝트는 러시아 시베리아 동부 가스전에서 시작해 중·러 접경지역인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를 거쳐 상하이시까지 총 5,111km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국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인구 밀도가 높아 겨울철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동북부 일대와 양쯔강 삼각주에 천연가스 공급량을 늘릴 것으로 기대했다.

2019년 12월 양국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서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처음 중국에 공급됐고, 지난해 11월에는 동선(東線) 공정의 완공으로 프로젝트 첫 단계를 마무리했다. 여기에 중국 서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로 연결되는 시베리아의 힘-2까지 완공되면 러시아로부터 운송되는 LNG는 연간 380억㎥에 달한다. 이는 중국 내 약 1억3,0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양국이 LNG 가격 협상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동안 몽골까지 반대하고 나서면서 2단계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몽골은 환경 문제와 자국의 경제적 이익 등을 고려해 시베리아의 힘-2 파이프라인 건설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2028년까지의 중장기 계획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제외하기도 했다. 에너지 안보에 주력 중인 중국으로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늘어난 셈이다.

2024년 중국 LNG 수요 4,250억㎥ 육박

중국이 애초 시베리아의 힘 프로젝트를 추진한 배경 또한 공급망 다변화에 있다.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상 경로가 아닌 육상 경로로 안전하게 가스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최적의 루트라는 판단에서다. 중국 국가능원(에너지)국에 의하면 중국의 LNG 수요는 해마다 증가해 작년 4,250억㎥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7%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로서도 중국은 든든한 수요처였다. 유럽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가운데 중국과의 파이프라인이 확대되면서 수출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3년 기준 중국이 수입한 러시아산 LNG는 227억㎥에 달했으며, 지난해에도 1월~9월 237억㎥의 수입물량을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은 유럽을 제치고 러시아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힘-2 건설을 둘러싸고 양국 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서방 가스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의 처지를 이용해 중국이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러시아 현지 수준과 비슷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연 500억㎥의 수송 용량 중 일부만 구매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강경한 입장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러시아 반(半)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향 가스 판매가 급감하며 2023년 6,290억 루블(약 9조8,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가즈프롬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국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의 확대·연장이 필수라는 진단이다. FT가 인용한 러시아 주요 은행의 미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가즈프롬에 대한 기본 전망에서 시베리아의 힘-2가 제외되면서 해당 프로젝트의 완공 시점인 2029년 가즈프롬의 연간 수익은 기존 대비 15%가량 감소했다.

전력 부족 ‘심각’ 수준, 뚜렷한 대안 없어

다만 시장에서는 중국이 만성적 전력 부족에 시달리는 만큼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계속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공장 수출 수요 증가, 오염 저감을 위한 석탄 사용 감소로 전력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공장 가동 시간을 제한하고 일부 도시의 전력을 차단하기도 했지만, 사태를 수습하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중국이 미·중 무역 갈등 본격화 직전까지 미국으로부터 LNG 수입을 꾸준히 늘려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조사에서 2021년 8월 대중 LNG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으며, 미국 전체 LNG 수출의 17%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중국은 1단계 무역 합의에 따라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전임 조 바이든 정부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중국 제재 기조가 현 정부로도 이어지면서 이 같은 약속은 힘을 잃게 됐다. 이달 4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양국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중국은 즉각 미국산 석탄과 LNG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조치를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

다만 미국은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자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전체 에너지 수출량 중 중국의 비중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데다, 대체 시장을 발굴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미국은 2020년대 이후 신규 LNG 터미널 프로젝트를 통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 국가로의 LNG 수출량을 단계적으로 확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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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 영리화 멈추면 인수 없던 일로” 일론 머스크의 ‘견제’와 그 파급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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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단체로서의 설립 취지 유지해야”
인수 무산 후에도 영리 법인 ‘산 넘어 산’
오픈AI 내부 갈등 종식은 선행 과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오픈AI의 영리 법인 전환이 중단되면 인수 제안을 거둬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약 140조원에 오픈AI를 인수하겠다던 그간의 주장에서 한 발짝 물러난 것이다. 업계에서는 머스크의 인수 제안이 무산되더라도 오픈AI의 지배구조 개편 및 추가 투자 유치 계획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고도화된 AI 개발 위해 자금 유치 절실

14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머스크는 전날 변호인단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오픈AI 이사회가 비영리 단체로서의 설립 취지를 유지하고, 기업 전환을 중단할 의사가 있다면 인수 제안을 거둬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비영리 법인은 제3의 독립적인 구매자가 자산에 대해 지불할 금액만큼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픈AI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영리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오픈AI와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를 위해 투자은행까지 고용한 상태다. 샘 올트먼 창립자 겸 CEO와 오픈AI는 고도화된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서는 영리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난해 10월 펀딩 라운드에서는 향후 2년 이내 영리 기업 전환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66억 달러(약 9조5,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올트먼 CEO와 함께 오픈AI의 창립을 함께한 머스크 CEO는 크게 반발했다. 오픈AI와 샘 올트먼 CEO가 ‘공익을 위한 AI 개발’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저버리고 이익 추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머스크 CEO가 이끄는 투자 컨소시엄은 오픈AI를 지배하는 비영리법인을 974억 달러(약 140조8,0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오픈AI를 인수해 자신의 AI 스타트업인 xAI와 합병시킨다는 계획이다.

올트먼 CEO는 물론 브렛 테일러 오픈AI 이사회 의장 또한 머스크 CEO의 인수 제안을 즉각 거부하고 나섰다. 그가 실제 인수·운영 의사가 없음에도 단지 ‘견제’를 위해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는 비판이다. 오픈AI는 12일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회사를 비영리 단체로 유지하기 위해 인수를 제안했다는 머스크의 주장에 진정성이 없다”고 짚으며 “머스크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오픈AI와 경쟁하는 자신의 AI 사업과 직접 선정한 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오픈AI가 모든 자산을 자신에게 이전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오픈AI 자산 가치 재설정 가능성↑

다만 시장에서는 머스크 CEO의 이번 제안이 단순히 거절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오픈AI의 지배구조 개편 및 추가 투자 유치 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의 제안은 올트먼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NYT)는 “오픈AI가 1년 넘게 추진해 온 기업 구조 개편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트먼 CEO는 현재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오픈AI를 비영리 법인에서 완전한 영리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과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400억 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투자 유치 건에 대해서는 최근 진전을 이뤘다. 리드 투자자 소프트뱅크로부터 300억 달러를, 여타 투자자들로부터 100억 달러를 나눠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다만 영리 법인 전환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WSJ은 “머스크의 제안이 오픈AI의 자산 가치를 재설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으며 “비영리 법인은 자산을 공정한 시장 가치로 매각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이번 제안 이후 더 낮은 가격으로 오픈AI를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만약 비영리 법인이 머스크의 제안보다 낮은 금액으로 오픈AI의 영리법인 전환을 승인할 경우, 규제 당국의 감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오픈AI는 영리 법인 전환과 관련해 이미 법인 등록지인 델라웨어주와 본사 소재지인 캘리포니아주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다.

핵심 인력 이탈에 내부 갈등 최고조

영리법인 전환을 둘러싼 내부의 반발 또한 오픈AI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영리법인 전환을 본격화한 지난해 초를 기점으로 핵심 경영진이 잇따라 퇴사하는 등 혼란이 심화하고 있는 탓이다. 오픈AI에서는 지난해 2월 핵심 연구자였던 안드레이 카르파티가 자리를 정리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에는 올트먼 CEO의 해임을 주도한 바 있는 공동 창립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퇴사했다. 이어 8월에도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존 슐먼이 경쟁사 앤스로픽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오픈AI의 전직 연구원인 수치르 발라지가 생을 마감하면서 오픈AI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오픈AI에서 4년간 일하며 챗GPT 개발에 참여한 발라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 NYT 인터뷰를 통해 “오픈AI가 저작권을 침해하고, 인터넷 환경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폭로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AI의 저작권 침해 현황을 분석하는 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발라지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건은 자살로 종결됐다.

이후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AI 기술의 윤리적 개발을 옹호하는 국제 청소년 연합 인코드는 머스크 CEO의 가처분 소송을 찬동하는 변론서를 제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AI계의 대부’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코드의 요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힌턴 교수는 성명에서 “오픈AI는 회사를 비영리 단체로 유지하는 동안 세금 등 수많은 혜택을 받았다”며 “불편해지면 모든 것을 파괴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AI 산업 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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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 벤츠도 클릭으로 구매하는 시대, 온라인 직접 판매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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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 오브 더 퓨처’ 프로젝트 도입
적자 누적 딜러사는 희망퇴직 단행
연간 온라인 자동차 거래액 5조원 달해
벤츠코리아의 온라인 예약 시스템 예시 화면/사진=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독일에 기반을 둔 완성차 업체 메르세데스-벤츠가 내년부터 한국 시장 내 판매 방식에 변화를 줄 예정이다. 여러 딜러사에 판매 업무를 위탁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직접 판매 비중을 늘리고 온라인 판매 채널을 확대하는 식이다. 이 같은 행보는 전 세계적 흐름으로, 국내에서는 현대차를 비롯해 한국지엠, 혼다코리아 등이 시도한 바 있다.

벤츠코리아-딜러사 동반 역성장

15일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 한성자동차는 이달 3일부터 12일까지 정비 인력을 제외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비영업직군의 경우 월 기본급의 600%가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지급되며, 영업직군은 여기에 2024년 기준 월평균 판매수당 600%가 추가로 지급된다. 퇴직일은 이달 말일이다.

한성자동차는 이번 희망퇴직과 관련해 “내수 침체와 시장 환경 변화 등 어려워진 경영 환경으로 상당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쉽게 호전될 전망 또한 보이지 않는다”며 “회사는 체질 개선을 도모해 경영난을 극복하고, 직원들의 새출발을 지원하고자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벤츠코리아는 지난 2023년 7만6,697대의 차량을 판매하며 전년 대비 5.2% 역성장을 기록했다. 같은 해 한성자동차의 영업손실은 468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3억원 급감한 실적을 나타냈다. 한성자동차는 벤츠코리아의 1위 딜러사로, 지난해 기준 전국 20개 전시장과 21개 서비스센터, 8개의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운영 중이다.

업계는 한성자동차의 구조조정이 메르세데스-벤츠의 온라인 판매 및 직판 체제 도입에 앞선 사전 조치로 해석하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3월 마티아스 바이틀 벤츠코리아 사장은 국내에서 2026년부터 직판 체제를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 모든 시장에서 직판 체제를 구축하는 ‘리테일 오브 더 퓨처(Retail of the Future·RoF)’ 프로젝트를 한국 시장에도 도입하겠다는 설명이다.

앞서 메르세데스-벤츠는 독일에서 그룹 소유의 직영 판매점을 모두 매각하면서 RoF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바 있다. 그룹 내부 의사결정 기구인 감독위원회가 80여 직영 판매점을 매각하는 데 동의하면서다. 직영점 매각을 시작으로 판매 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개혁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이후 지점별 자산 평가 등이 진행됐으며, 각 지점의 가치는 최대 4,000만 유로(약 581억원)에 달했다.

한국 시장의 경우 지금까지 독일에서 만든 자동차를 한국 법인인 벤츠코리아가 수입하고, 딜러사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경우 영업직원의 재량에 따라 할인 폭 등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벤츠코리아가 수입과 판매를 모두 담당하는 직판 체제가 갖춰지면, 이와 같은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나아가 시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메르세데스-벤츠가 온라인 판매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벤츠의 온라인 판매는 메르세데스 온라인샵에서 독점 제공하는 ‘나우오더’ 기능을 통해 100만원 이상 계약금을 결제하는 경우, 차량 예약이 가능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다만 실제 계약서 작성과 잔금 지불 등은 딜러사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벤츠코리아는 향후 신차 부문 온라인 판매 개시와 함께 새로운 옵션으로 구성된 모델을 공개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오프라인 전시장으로 판매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더 뉴 캐스퍼'/사진=현대차

내부에서도 실패에 무게? 현대차 ‘캐스퍼’의 깜짝 분전

한편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일찌감치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온라인 판매에 나섰다. 현대차는 2023년 11월 미국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과 온라인 자동차 판매를 포함한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모델과 트림, 색상, 기능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결제까지 이르는 자동차 구매의 전 과정을 아마존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차량을 인도받게 된다.

현대차는 국내에서도 온라인 전용 판매 모델 캐스퍼를 내놓는 등 오프라인 영업점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2021년 9월 현대차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온라인 전용 판매 모델을 선보인다고 발표했을 당시 내부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캐스퍼는 출시 이후 3년간 누적 판매량이 13만3,043대에 달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현대차의 변화에 온라인 자동차 시장도 들썩였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1월~7월 온라인에서 이뤄진 자동차 거래금액은 3조1,4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연간 온라인 자동차 거래액 5조원 달성도 어렵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들은 비대면 구매에 익숙한 데다, 굳이 시승을 고집하지 않아도 온라인 등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관련 산업 규모 또한 꾸준히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 전용 모델 출시, 영업점 운영 방식 변화

시장의 변화를 확인한 여타 완성차 업체들도 일제히 온라인 판매 채널 강화에 돌입했다.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던 업체가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와 폴스타 등 극히 소수였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먼저 제너럴모터스(GM)의 국내 법인 한국지엠은 픽업트럭·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전문 브랜드 GMC 출범과 함께 신차 시에라(SIERRA)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고 나섰다. 해당 모델은 온라인 계약 실시 이틀 만에 첫 선적(미국발 한국행) 물량 100여 대가 모두 완판되며 기대에 부응했다.

혼다코리아 또한 매우 적극적으로 온라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혼다코리아는 지난해 1월 미디어 테이블에서 ‘온라인-원프라이스’제도를 전면 도입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영업점은 전시 공간으로 전환하고, 딜러는 차량을 판매하는 역할에서 설명하는 역할로 바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매장에서 차량을 살펴보고 상세한 설명을 듣는 것은 기존과 동일하지만, 모든 지점에 동일한 가격이 적용되고 최종 구매 과정은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구조다.

BMW코리아는 2019년 말 개설한 ‘샵 온라인’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지난 한 해에만 6,891대를 판매했다. 이는 1년 사이 31.2%가 증가한 성적이다. 이 같은 결과는 온라인 판매 방식이 전통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영 컨설팅업체 KPMG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글로벌 자동차 산업 경영진 915명 중 78%는 2030년까지 대부분의 차량이 온라인을 통해 판매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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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전환' 속에 외국계 자본의 韓 임대주택 시장 진출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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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세사기 사태 후 월세 전환 속도
韓 장기 임대주택 시장 수익성 증가 전망 
국내 부동산 개발·운영사와 JV 설립 증가

최근 국내 임대주택 시장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외국계 자본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글로벌 큰손으로 꼽히는 투자은행과 연기금, 부동산 회사 등이 국내 기업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속속 진출하는 모습이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1인 가구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월세 수요가 급증한 것이 투자 매력으로 작용한 가운데, 정부 역시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기업의 임대주택 시장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어 외국계 큰손의 진출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커지는 월세 시장에 글로벌 부동산 기업들도 눈독

14일 금융투자 및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다수의 글로벌 금융투자 기관들이 국내 민간임대주택 시장에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한국의 코리빙(Co-Living) 스타트업 MGRV와 임대주택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다. JV의 규모는 약 5,000억원으로 지분의 5%는 MGRV가, 95%는 CPPI이 보유한다. 이는 금액 기준으로 역대 외국 기관투자자의 임대주택 투자 중 가장 큰 규모다. 양사는 서울의 주요 업무지구와 대학교 인근의 임대주택 개발 프로젝트에 최대 1,33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모건스탠리는 국내 자산운용사와 협력해 서울 도심의 주거용 부동산을 매입하고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동구의 원룸형 주택 '지웰홈스 라이프 강동'을 133억원에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고 있으며 서울 금천구에도 SK D&D와 협력해 195세대 규모의 임대주택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도 지난해 3월 홍콩계 코리빙 업체 위브리빙과 함께 JV를 설립하고 서울 영등포구의 '더 스테이트 선유 호텔'을 매입해 직장인을 위한 고급 레지던스로 변모시켰다.

글로벌 금융투자 기관뿐 아니라 외국계 부동산 기업의 한국 진출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계 부동산 기업 하인스는 기존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서 벗어나 지난해 국내 임대주택 사업에 진출했고, 또 다른 미국 부동산 시장의 큰손 존스랑라살(JLL)도 국내 시장 진출 시점과 방법을 논의 중이다. 아울러 영국 M&G리얼에스테이트는 상업시설 투자에서 주거 임대 시장으로 전략을 전환하며 새로운 수익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1인 가구·청년층 증가로 임대시장 패러다임 변화

이처럼 외국계 자본은 국내 임대주택 시장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로 주목하는 것은 최근 임대주택 시장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시장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불거진 전세 사기 사태의 여파로 임대주택 시장에서 월세의 비중이 급증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확정 일자를 받은 주택 임대계약 총 247만6,870건 중 월세 계약은 142만8,950건으로 전체 계약의 57.7%를 차지했다. 이는 대법원에 확정 일자 정보가 취합되기 시작한 지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전세 비중은 2020년 70.5%로 고점을 찍은 후 2022년 60.5%, 2023년 51.9%로 하락했고, 2024년 들어 전월세 비중이 역전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2020년 7월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꼽는다. 이른바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은 세입자가 최초 2년 계약 후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과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을 직전 임대료의 5% 이내로 제한한 '전월세상한제'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와 전세 가격 상승까지 맞물리면서, 전세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로 전환하는 경향이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소형 평수의 월세를 선호하는 1인 가구의 증가도 이 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1인 가구 수는 783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5.5%를 차지하며, 이는 4인 이상 가구(370만 가구)의 두 배에 달한다. 1~2인 가구를 합치면 그 비중은 64%로 절반을 넘어선다. 특히 1인 가구의 80%가 월세에 거주하며 80%가량이 20평 미만의 소형 주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젊은 층의 수요가 늘어난 점도 월세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의하면 2018~2021년에 연평균 67만3,000명 수준이었던 30세 도달 인구는 2023년 이후 75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정부, 주택 공급 위해 장기 임대주택 규제 대폭 완화

월세 수요 확대와 함께 정부가 기업의 임대주택 시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외국계 기업의 시장 진출 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는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투자회사(리츠), 시행사, 보험사 등이 임대주택을 20년 이상 장기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신유형 장기민간임대주택 공급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이 대규모 장기 임대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 임대료 규제를 풀고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으로, 정부는 이를 통해 2035년까지 기업형 임대주택을 10만 가구 이상 공급할 계획이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8년간의 의무 임대 기간을 두는 '뉴스테이'를 추진했다. 당시 의무 임대 기간과 계약 갱신 시 임대료를 5% 이내에서 올려야 한다는 제한을 제외하고 모든 규제를 풀면서 고가 임대료 논란이 제기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뉴스테이를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개편했다. 그간의 지적을 반영해 초기 임대료를 시세의 95%로 제한하고 의무 임대 기간은 10년으로 연장했지만, 사업성이 나빠진 상황에서 집값 급등기가 오면서 기업의 관심이 식었다.

이러한 정책적 한계를 고려해 최근 국토부는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면서도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물량 확대와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제도를 보완했다. 먼저 자율형·준자율형·지원형의 세 가지 사업 모델을 제시해 기업의 선택권을 확대했다. 특히 자율형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2+2년 계약'과 '임대료 상승률 5% 상한' 규제만 지키면 된다. 또한 세제 혜택을 포함한 장기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공적 지원을 강화하고 청년, 고령자, 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를 위한 맞춤형 특화 서비스를 제공해 양질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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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숙 복귀로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일단락, 기업 역량 회복 ‘큰 산’ 앞둬

송영숙 복귀로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일단락, 기업 역량 회복 ‘큰 산’ 앞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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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전 대표 사임
지분 54% 확보한 4인 연합 승기
최우선 과제 ‘어닝 쇼크 지우기’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신임 대표, 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사진=한미약품그룹

1년여 동안 치열하게 이어져 온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 고(故) 임성기 창업자의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 측이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한 데 이어 차남 임종훈 대표이사 또한 한미사이언스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미약품그룹은 서둘러 경영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창업주 차남 임종훈 ‘대표→사외이사’

15일 공시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13일 송 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4월부터 한미사이언스를 이끌어 온 임종훈 대표는 사임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이사 총 7명 중 임 전 대표를 포함해 6명이 참석했으며, 만장일치로 송 신임 대표의 선임을 가결했다. 임 전 대표의 사외이사직은 유지된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임성기 회장의 작고 후 유족의 상속세 부담이 컸던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나섰다. 양사의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냄으로써 막대한 자금 투자가 필요한 신약개발 등 강력한 연구개발(R&D) 추진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전 사내이사와 차남 임 전 대표가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개인 최대주주였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이 과정에서 모녀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매입하며 지분을 키웠다. 여기에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까지 합류해 4인 연합을 결성, 분쟁이 본격화했다. 당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각각 송 회장, 임 부회장, 신 회장, 라데팡스 측 인사 5명과 형제 측 인사 5명,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임 전 이사가 보유 지분 일부인 5%를 신 회장 등 4인 연합에 매도하면서 분쟁 종식의 기미를 보였다. 임 전 이사의 지분 매도로 4인 연합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54.42%를 확보하면서 지분율 21.86%를 보유한 형제 측을 압도했다. 사실상 승기를 잡은 셈이다. 여기에 형제 측 인사인 사봉관 사외이사, 권규찬 기타비상무이사가 이달 사임한 데 이어 임 전 이사까지 사임하면서 갈등은 마무리 수순을 밟았고 결국 13일 이사회에서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하며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갈등은 막을 내렸다.

송 신임 대표는 그룹 조직을 재정비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일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종식과 한미약품그룹 경영 정상화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첫 발걸음”이라며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후속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전 대표 역시 “앞으로도 창업주 가족의 일원으로 회사를 위해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본사 전경/사진=한미약품그룹

뒷전으로 밀렸던 연구개발, 성과 필요한 때

송 신임 대표의 최우선 경영 과제로는 실적 개선이 꼽힌다. 지난해 연구개발 성과가 부재한 탓에 연간 실적이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한미약품이 2024년 연결기준 매출 1조4,950억원, 영업이익 2,150억원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3년보다 매출은 0.3% 증가한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2.5% 감소한 수치다.

상품 매출이 포함된 별도한미 대비 수익성이 높은 북경한미의 매출이 줄었고, 영업이익에 반영되는 연구개발 성과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장민환 iM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이 마지막으로 수령한 유의미한 규모의 연구개발 수익은 2023년 4분기 수령했던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 'MK-6024'의 임상2b상 진입에 따른 마일스톤(197억원)”이라고 진단하며 “새로운 연구개발 성과를 통한 수익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장 연구원은 “상반기 마무리되는 비만치료제 ‘HM-15275’의 임상 1상이 6월 미국 당뇨병학회(ADA)에서 결과 발표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짚으며 “파트너사인 머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MK-6024 임상2b상(연내 종료) 및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치료제 ‘HM15136’ 임상 2상(상반기 종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러면서도 한미약품 주가 전망치를 기존 40만원에서 35만원으로 낮춰잡았다.

그룹 전반 리더십 ‘흔들’

한미그룹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또한 시장 기대치(컨센서스)를 265억원가량 하회하는 성적표로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공시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 한미약품의 영업이익은 30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6.6% 감소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한미약품이 작년 4분기 영업이익 57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3,516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6.7% 줄었고 당기순손실은 17억원을 기록했다. 아울러 한미약품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2,162억원으로 전년보다 2.0% 감소했고, 순이익 역시 1,435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219억원 감소를 나타냈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14.5%를 기록했으며, 연구·개발(R&D)에 매출의 14.0%에 해당하는 2,098억원을 투입했다.

이 같은 결과는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지난해 8월 한미사이언스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처음 나온 성적표다. 당시 박 대표는 독자 경영 선포와 함께 한미약품 내 인사팀과 법무팀을 별도 신설했고, 송 신임 대표와 임 부회장 측 상속세 해결 자문을 맡았다가 업무에서 배제된 다수의 인력을 회사에 복귀시켰다.

하지만 독자 경영 선포 직후 첫 실적 또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분기 경영 실적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당시 한미약품의 매출은 3,621억원, 영업이익 51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7%, 11.4% 감소한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인 매출 3,860억원과 영업이익 575억원을 모두 밑도는 결과다. 당기순이익 또한 전년 동기 대비 42.3% 떨어진 350억원에 그쳤다. 그룹 전반적으로 리더십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시장의 지적이 쏟아진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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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직원들 ‘제 역할’ 찾아주는 관리자가 “최고”

[딥파이낸셜] 직원들 ‘제 역할’ 찾아주는 관리자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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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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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역량, ‘적합한 업무 할당’에서 가장 빛나
수평적 업무 이동 통해 다양한 업무 기회 부여
직원 경력 개발 장려도 “독보적”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쟁사들을 압도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기술 발전과 혁신이 거의 중심에 놓이지만 관리자들이 직원들과 회사 성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유능한 관리자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동기 부여나 관리감독의 차원이 아닌 효과적인 ‘업무 할당’에서 찾아보는 연구가 진행됐다. 자주 간과되는 역할이지만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무엇보다 크고 오래갔다.

사진=CEPR

중간 관리자 역량, ‘효과적 업무 할당’이 가장 중요

관리자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 지표는 고과 리뷰, 팀 성과, 직원 만족도 등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유능한 관리자의 구체적인 정의부터 시작했다. 나이 서른 전에 승진하고 빠른 경력 발전과 연봉 인상, 상사의 긍정적인 평가와 부하 직원들의 높은 인정으로 대표되는 ‘고성과자’(high-flyers)다. 연구 대상 관리자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이들이 ‘뛰어난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됐다.

또 해당 연구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직원 20만 명과 중간 관리자 3만 명을 두고 10년 넘게 활동해 온 다국적 기업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특히 이 회사가 운영하는 관리자 순환 근무제(managerial rotation policy, 관리자들을 주기적으로 다른 팀에 재배치)의 효과에 집중해, 앞에서 정의한 ‘고성과 관리자’들이 직원 생산성과 기업 성과에 기여하는 부분을 따로 떼 연구할 수 있었다.

연구의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고성과 관리자들이 조직 내 직원들의 업무 재배치에 매우 능하다는 사실이다. 직원들의 역량과 가능성에 더 잘 맞는 역할을 찾아준다는 얘기다. 실제로 저성과 관리자와 일하다 고성과 관리자 밑으로 옮긴 사람은 저성과 관리자 밑에서 머무는 동료들에 비해 수평적 직무 이동이 7년 동안 57% 더 많았다. 이렇게 동일한 급여를 받으며 역할만 바뀌는 수평적 이동은 직원들이 다른 직능이나 조직을 경험해 보고 본인의 능력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자리를 찾도록 해준다.

연구 대상 조직에서는 48%가 같은 팀 내에서 역할 변경을 경험했고, 37%는 역할을 유지하면서 팀을 옮겼다. 나머지는 팀도, 역할도 바뀌었다. 이러한 경험은 직원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본인의 역량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더 적합한 자리를 발견하도록 도움을 줬다. 이 과정에서 이직률이 높아지지도 않았다.

고성과 관리자와 수평적 직무 이동 간 관계
주: 수평적 직무 이동(상단), 관리자 변경 후 기간(분기)(X축), 수평 이동 증가율(Y축) / 수평적 직무 이동 구성(하단), 전체 이동, 팀 내 이동, 역할 유지·팀 변경, 역할·팀 모두 변경(위부터)/출처=CEPR

고성과 관리자와 일하면 승진, 연봉, 생산성 “훨씬 높아”

효과적인 직무 재할당이 주는 이점은 팀 차원을 넘어선다. 고성과 관리자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직원들보다 승진할 확률이 7년 동안 평균 41%나 더 높았고 따라서 연봉도 10% 더 많았다. 이것이 단순한 숫자만이 아닌 것은 업무 성과가 실제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고성과자가 이끄는 조직의 상대적 매출은 0.18 표준편차 더 높았고, 이는 유능한 관리자에 의한 업무 재할당이 직원들의 생산성과 연봉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음을 증명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성과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저성과 관리자 밑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까지 개선된 성과가 이어졌다.

고성과 관리자와 연봉 수준(승진 횟수) 간 관계
주: 관리자 변경 후 기간(분기)(X축), 승진 횟수 증가율(Y축)/출처=CEPR

고성과 관리자와 헤어져도 ‘성과 지속’

연구 결과는 그간 당연시돼 온 조직 고성과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낸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수평적 업무 이동은 고성과 관리자들의 인맥을 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이들 관리자가 실력보다 관계에 의존한다는 통설을 뒤집었다. 한편 고성과 관리자 밑을 떠나는 것이 해당 직원의 미래 성장 기회를 제한하기는 했지만 업무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이는 고성과 관리자의 주된 기여가 인재를 알아보고 활용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지 동기 부여나 관리감독이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고성과 관리자 결별 후 성과 추이
주: 수평적 직무 이동(상단), 관리자 변경 후 기간(분기)(X축), 수평 이동 증가율(Y축) / 승진 횟수 증가율(하단), 관리자 변경 후 기간(분기)(X축), 승진 횟수 증가율(Y축)/출처=CEPR

또한 더 넓은 조직 차원에서 봐도 고성과 관리자와 접촉 기회가 많은 팀이나 현장은 그렇지 않은 동료들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앞질렀다. 과거에 고성과자가 관리하던 공장 인력들의 1인당 생산량은 더 높고 생산 비용은 낮았다. 관리자들의 직원 개개인에 대한 영향이 조직 차원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공장 생산성 및 고성과 관리자 접촉 기회 간 관계
주: 생산성과의 관계(상단), 과거 고성과 관리자 접촉 정도(X축), 생산성(Y축) / 생산 비용과의 관계(하단), 과거 고성과 관리자 접촉 정도(X축), 생산 비용(Y축)/출처=CEPR

고성과 관리자는 직원 경력 개발 ‘독려’

한편 고성과 관리자들은 더 많은 조직원이 ‘직원 개발 프로그램’(worker development programmes)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연구 대상 기업은 최근 ‘인재 시장’(talent marketplace)과 ‘유연 프로젝트제’(flexible projects)라는 사내 플랫폼을 도입했다. 각각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공유하고 조직 내부에서 다른 역할을 찾도록 하는 것과 고정적인 역할을 떠나 다른 단기 과제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들이다.

여기서도 고성과 관리자와 함께 일하는 인력들의 참여율이 훨씬 높았다. 유연 프로젝트제 등록률이 17% 더 높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비율도 5% 높았으며, 실제 프로젝트 지원자도 26% 더 많았다. 이러한 적극적인 참여는 유능한 관리자가 조성한 ‘성장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직원들이 본인의 경력 및 역량 개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도록 격려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결과는 경영 의사 결정의 장기간에 걸친 영향력을 보여준다. 효과적인 직무 배분의 이점은 해당 관리자의 임기가 끝난 후까지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직원 경력 개발을 통해 지속되는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버지니아 미니(Virginia Minni)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부스 경영대학원(Booth School of Business) 조교수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Good managers, better matches: Job allocation effects on worker productivity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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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 세계 국방비 사상 최대치 경신, 전년 대비 7.4% 증가

2024년 전 세계 국방비 사상 최대치 경신, 전년 대비 7.4%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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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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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쓰겠습니다. 경제 활력에 작은 보탬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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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전쟁, 중동 갈등 등 영향으로 각국 방위비 확대
러시아發 위협에 유럽 군비 16% 급증, 독일은 최대 증가 폭
中·日 방위비 증가세에도 아시아 비중 감소, 韓은 10위권
2024년 국방 예산 상위 15개국/출처=국제전략연구소(IISS)

지난해 전 세계가 지출한 방위비가 2조4,600억 달러(약 3,600조원)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 지역의 군사적 충돌 등 글로벌 안보 환경이 악화하면서 각국 정부가 국방 예산을 대폭 확대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여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비 증액 기조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의 지정학적 긴장 등도 전 세계의 방위비 증액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GDP 대비 방위비 비율도 1.94%로 확대

12일(현지시각)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발표한 '2025년 군사력 균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방위비 총액이 2조4,6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7.4%로 2023년(6.5%), 2022년(3.5%)을 앞지르며 증가 폭을 키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비율도 1.94%로 2023년(1.8%)보다 0.14%포인트 확대됐다. IISS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는 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헤즈볼라 간 전쟁도 1년 넘게 계속됐다"며 "안보 환경 악화와 위협 인식의 심화로 방위비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방위비가 증가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를 침공 이후 대륙 전역에 위협 인식이 높아진 유럽은 전년 대비 11.7% 증가한 4,570억 달러를 기록하며 10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러시아는 구매력 평가 기준(Purchasing Power Parity, PPP) 방위비가 GDP의 6.7%인 4,620억 달러로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체 방위비(4,570억 달러)보다 많았다. 독일은 전년 대비 23.2% 늘어난 860억 달러를 방위비로 지출해 영국(811억 달러)을 제치고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4위가 됐다. 미국은 9,680억 달러로 러시아의 2배가 넘었다. 

아시아 국방 예산은 중국의 군 현대화와 남중국해의 갈등 고조,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진전 등으로 지역의 위협 인식을 고조시키면서 완만하게 증가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일본의 지출이 상당히 늘어난 것도 특징으로 꼽았다. 중국의 증가율은 7.4%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평균 상승률(3.9%)을 앞질렀다. 한국(439억 달러)은 세계 10위권으로 아시아에서는 중국·인도·일본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세계 방위비 지출에서 아시아의 비중은 다른 지역이 더 크게 증가하면서 2021년 25.9%에서 2024년 21.7%로 감소했다. 실질적인 증가가 없었던 유일한 지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로 전년 대비 3.7% 감소했다.

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올해 방위비 증액

이어 IISS는 향후 방위비 전망과 관련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전쟁의 양상이 소모적인 육상전으로 변질되면서 양측 모두 단기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러시아의 경우 전쟁을 최소 1년 더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쟁에 필요한 군 병력 규모를 확보·유지하는 데도 러시아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우크라이나는 이미 인적 자원의 해외 도피가 심각한 상황으로 이번 주부터 18~2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입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군사력의 손실 규모를 고려하면 러시아의 상황도 그리 유리하지만은 않다. 러시아는 지난해 1,400대의 전차를 잃었고 전쟁 발발 이후부터 현재까지 총 4,400대의 주력 전차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무기 생산 속도가 느려 파괴된 전차를 교체하지 못한 채 냉전 시대의 비축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1950년대 생산된 장갑차와 1960년대 전차를 전장에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ISS의 육상전 선임 분석가인 벤 배리 연구원은 "양측이 휴전 없이 전쟁을 지속하더라도 앞으로 몇 달간 전쟁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IISS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13.7% 늘린 15조6,000억 루블(약 244조4,500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지방정부와 기업 보조금을 포함한 금액으로 올해 GDP 추정치의 7.5%에 달한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사일과 드론 공격, 최전선 군인 수십만 명에 대한 고액 월급 등으로 소련 시대 이후 최고 수준으로 군사 지출을 늘리고 있다. IISS는 "올해 러시아 연방정부 예산에서 국방·안보 관련 지출 비중이 40%에 이른다"며 "방위비 증액은 나라 경제의 차원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32개 NATO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 기조도 올해 전 세계 방위비를 늘리는 주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NATO 회원국의 최소 지출 목표를 현재 'GDP의 2%'에서 5%로 올려야 한다고 압박했다. 마르크 뤄터 NATO 사무총장도 회원국에 GDP의 3.7%까지 방위비를 증액할 것을 제안하며 복지 예산의 일부를 방위비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NATO의 유럽 회원국들이 GDP의 3~5%까지 방위비를 편성하면 유럽의 전체 방위비는 최소 2,000억 달러(약 288조원)에서 최대 8,000억 달러까지 늘어나 러시아의 방위비를 압도한다.

美·獨 등 주요국, 방위산업 생산력 강화

방위비 증액과 함께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미국, 유럽 등 전통적인 방산 강국들은 자국의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일례로 그동안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중동에 무기 수출을 금지했던 독일 정부는 최근 튀르키예에 전투기 유로파이터를 수출했고, 지난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수출금지를 해제했다. 이에 대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공식 석상에서 "독일의 방산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며 "방산 강화를 위해 산업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대응한 군사력 강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 5년간 무기 수출국 순위에서 러시아를 누르고 2위에 올라선 프랑스는 유럽 내 안보 역량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병사 2,000명을 대상으로 군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국산 무기 최대 수입국인 폴란드는 지난해 10월 리투아니아와 탄약 생산을 위한 공장 건설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155mm 포탄 자체 생산을 위해 7억4,000만 달러(약 1조원)의 예산을 배정하기로 했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도 자체 포탄 생산 시설 확충을 끝냈다.

미국은 최첨단 무기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대부분의 재래식 무기 생산을 중단한 미국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요가 폭증한 155㎜ 포탄의 생산 역량을 높이기 위해 40년 만에 켄터키주 그레이엄에 트리니트로톨루엔(TNT) 생산 시설을 가동하기로 했다. 아울러 미국의 방위산업 및 항공우주 기술 스타트업 안두릴은 연내 극초음속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고 호주에 공장을 세워 고스트 드론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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