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항모’ 그린란드 둘러싼 美의 전략 수정, 합병 대신 미군 기지화로 절충, 핵심은 ‘러·중 봉쇄’
‘불침항모’ 그린란드 둘러싼 美의 전략 수정, 합병 대신 미군 기지화로 절충, 핵심은 ‘러·중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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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3곳 설치 절충안 추진 중·러 해상 활동 감시가 주된 임무 그린란드는 긍정, 아이슬란드는 반대 기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병합하겠다고 위협했던 덴마크령 그린란드가 미국과 그린란드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과 기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무력을 써서라도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고 공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동맹국들의 반발과 설득에 한발 물러선 후, 외교적 해법을 찾던 미국·덴마크·그린란드가 미군 주둔 확대라는 절충안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덴마크·그린란드, 비공개 협상 진전
18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그린란드, 그린란드 외교를 관할하는 덴마크 협상단은 지난 4개월 동안 워싱턴에서 그린란드의 미래를 둘러싼 비공개 협상을 이어왔다. 양측은 지난 1월 중순 이후 최소 5차례 회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군사 장악 위협에 출구를 제공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균열 위기를 낮추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현재 미국은 1951년 미국과 덴마크가 체결한 방위협정을 수정해 그린란드가 독립하더라도 미군이 무기한 주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 군사기지 3곳을 미국 주권 영토로 지정하는 식이다. 기지는 그린란드 남부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 가운데 한 곳은 과거 미군기지와 작은 공항이 있던 나르사수아크에 설치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이 땅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린란드·아이슬란드·영국 사이의 북대서양 해역인 ‘GIUK 갭(Greenland-Iceland-UK Gap)’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해상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그린란드 북서부 피투피크 우주군 기지 1곳만 운영하고 있다. 냉전 시기에는 약 17곳을 운영했었다. 피투피크 기지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를 위한 미사일 감시 임무를 수행하지만, 해상 감시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
미국의 요구는 군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 같은 경쟁국을 배제하기 위해 그린란드의 주요 투자 계약에 사실상 거부권을 갖는 방안도 요구하고 있다. 천연자원 개발 협력도 논의 대상이다. 그린란드에는 석유와 우라늄, 희토류, 기타 핵심 광물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상당수 자원은 그린란드 빙하 아래 깊숙이 묻혀 있다.
미국 전쟁부는 군사 확장 계획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미 해병대는 그린란드 남부 나르사르수아크를 방문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공항과 항만, 미군 병력 수용 가능 지역을 점검했다. 그레고리 기요 미국 북부사령부 사령관은 "알래스카와 캐나다, 그린란드를 잇는 레이더 기지와 군사 거점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며 "미군이 그린란드에 심해항과 순환 배치 방식으로 훈련·연습을 수행할 특수작전 병력 기지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협상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핵심 참모인 마이클 니덤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회의에 미 국무부 또는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1~2명과 동행했고, 덴마크 측에서는 외무차관과 주미 덴마크 대사, 워싱턴 주재 그린란드 외교수석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무부의 딜런 존슨 글로벌공보 담당 차관보는 "대통령이 제기한 국가안보와 경제 우려는 모든 당사자가 부인하지 않는 사안이며, 이를 영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란드 총리 “안보 위해 최선”
그린란드 정부는 미국과의 안보·경제 협력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1951년 양측이 맺은 방위 협정에 따라 현재도 미국이 그린란드에 추가로 기지를 설치하는 것이 이미 가능하다며 기존 방위 체계에 근거해 미군 기지를 확장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닐센 총리는 “우리는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며 “협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국가와 국제 안보를 위해 더 많이 행동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린란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올해 초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유럽 동맹국들의 반발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의 설득에 지난 1월 하순 그린란드 병합에서 한발 물러섰고, 이후 미국과 덴마크·그린란드는 외교적으로 갈등을 풀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의 군사·경제 협력 확대와 광물 자원 분야 협력에 열려 있지만 자국의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온 닐센 총리는 최근에도 “우리의 유일한 요구는 (우리에 대한) 존중”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협상 국면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초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확보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가던 시기와 비교하면 훨씬 현실적인 절충안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현재 그린란드 정치권은 미국의 북극 안보 수요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있으며, 기존 방위협정 틀 안에서 미군 활동 범위를 조정하는 문제는 협상 가능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그린란드가 받아들이려는 것은 안보 협력 확대지, 미국식 통치 체계 편입은 아니다. 닐센 총리는 최근 미국 특사단과 회동한 뒤 “그린란드인은 매매 대상이 아니다”라며 자기결정권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과의 대화 자체는 지속하겠지만, 모든 협력은 주권 존중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그린란드 정치권 내부에서도 미국과의 군사 협력과 미국의 영향력 종속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게 형성돼 있다.
그린란드가 미국과의 협상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냉혹한 현실도 자리한다. 인구 6만 명 수준의 거대한 북극 자치령이 독자적으로 방위·감시 체계를 구축하기에는 재정과 인프라 역량이 제한적이다. 북극항로 경쟁이 격화되고 러시아 잠수함 활동, 중국 자원 접근 시도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정보 자산은 사실상 필수적인 안전판으로 간주된다. 그린란드 내부에서 “미군 증강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피투피크 기지 단일 체계만으로는 북대서양 감시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 현지에서도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아이슬란드·페로제도 덮친 안보 불안
하지만 그린란드와 달리 북대서양 주변국에서는 미국 의존 안보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 이후 아이슬란드에서는 유럽연합(EU) 가입 논의 재개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부는 당초 내년에 치를 예정이던 'EU 가입 협상 재개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오는 8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2009년 국내 대형 은행 3개가 파산하며 금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EU 가입 신청서를 냈지만, 이후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2013년 가입 협상을 동결했고 2015년엔 EU에 가입 후보국으로 간주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정학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아이슬란드는 EU 가입을 둘러싼 손익 계산에 다시 나서게 됐다.
아이슬란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이 한창이던 1월 중순 주아이슬란드 미국 대사 지명자가 꺼낸 "아이슬란드가 미국의 52번째 주가 될 것" 이라는 농담에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아이슬란드 외무부는 즉각 이 발언에 대해 미 대사관에 해명을 요구해 사과를 받았지만, 현지의 불쾌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지난달 21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여러 차례 아이슬란드로 바꿔 부르면서 아이슬란드인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이 같은 불안감은 지정학적 현실과도 직결된다. 아이슬란드는 GIUK 갭의 핵심 축선에 위치한 국가로, 냉전 시기부터 러시아 잠수함 진출을 차단하는 나토 북대서양 방어선의 요충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또한 아이슬란드는 자체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안보는 나토 회원국 지위와 1951년 미국과 체결한 상호 방위 협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그린란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이슬란드에서는 자국 역시 미·중·러 북극 경쟁의 직접적인 압박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인근 페로제도 역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덴마크 왕국 내부 자치령인 페로제도는 그린란드 사태 이후 북극·북대서양 안보 정책에서 자치정부의 발언권 확대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가파르다. 덴마크 국제문제연구소(DIIS)는 최근 보고서에서 “그린란드와 페로제도가 안보 정책에서 더 강한 목소리를 요구하면서 덴마크 왕국 체제가 압박받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미국이 그린란드 문제를 양자 협상 방식으로 밀어붙일수록 덴마크 왕국 내부의 정치적 균열도 함께 확대되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