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기고] '시민 데이터 과학자'라는 어리석은 정책

[기고] '시민 데이터 과학자'라는 어리석은 정책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효정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식은 전달하는 정보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수정

'인공지능 전문가 = 코딩 전문가 = 개발자' 라는 잘못된 상식이 여전히 시장에 퍼져 있어
STEM 전공으로 석·박 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 데이터 과학자' 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 여전히 상존
훈련 받은 전문가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인 결과물에 수십조원 예산 낭비 말아야

최근들어 머신러닝, 딥러닝, 생성형AI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계산과학(Computational Science)을 처음 접했던 것은 박사 과정 중 시뮬레이션 관련 보조 수업을 찾던 2013년이었다. 미국 대학들의 대학원 과정 중 고학년 과정들은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드물기 때문에, 인근 대학의 박사생들이 타 대학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당시 MIT에서 열렸던 한 계산과학 수업에 보스턴 일대 주요 대학의 학생들이 모두 모인 탓에 교실이 매우 비좁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상식이 됐지만, 당시에는 자세한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수업의 상당 부분이 대학원 수준의 통계학을 가르치는데 할애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학기 초반부는 그렇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의 재미없는 수업이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들어가서야 계산과학의 다양한 방법론들이 수리통계학 중 인간의 손으로 깔끔하게 계산해낼 수 없는 부분들을 컴퓨터에 의존한 계산을 하는 전공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었다.

Citizen Data Science
사진=Pexel

계산과학에 대한 접근성 비약적으로 향상

당시 수업에는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전공을 줄여 표현하는 미국식 용어) 분야의 다양한 전공 출신들이 모여있었는데, 통계학 훈련이 부족했던 학생들은 초반부에 떨어져 나갔고, 후반부에는 과제 하나하나가 컴퓨터를 학대해야 답을 낼 수 있는 과제들이어서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R, Matlab 같은 연구용 프로그래밍 언어만 쓰던 우리와, 컴퓨터 과학 전용 언어인 C를 쓸 수 있던 전공자들 사이에 몇 가지 차이가 있었는데, C를 써서 돌아가는 계산들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계산 결과가 빠르게 나왔다. 반면, 수학적인 각종 변환을 지원해주는 패키지가 없다보니 C를 쓰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는데, 그런 종류의 수업 2개를 들으면서 언젠가 C와 동급의 계산 속도를 지원해주면서 고급 통계학 기반 패키지를 갖춘 시스템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했었다. 우리가 수업을 들으면서 만들어 뿌리는 패키지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10년 남짓이 지난 요즘, Python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R, Matlab의 접근성을 빌려오고, 그래픽 카드(GPU) 기반의 하드웨어적인 계산 속도 지원이 추가되면서 당시 우리가 느꼈던 문제의 일부분을 해결해준 상황이 됐다. 인공지능(AI)이라고 이름을 바꿔 단 계산과학이 업계의 관심을 끌면서 관련 분야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패키지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하드웨어적으로도 1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다.

예전에는 '계산 효율성(Computational Efficiency)'을 최대화하기 위해 '계산 비용(Computational Cost)'의 구성 요소인 CPU, 시간, 전력 소모 등의 변수들에만 집중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GPU가 방정식의 변수로 추가되면서 계산 비용을 단순한 1차 함수로 평가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 됐다.

시민 데이터 과학자를 저비용 훈련으로 만들 수 있다?

자본 투자와 기술 발전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수 많은 시너지가 있지만, 반대로 부작용도 속속 노출됐다.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개발자가 코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AI 전문가와 같은 직군이라고 착각했던 수 많은 비전문가들의 오해다. 정부 관계자들이 그런 오해를 가진 덕분에 한국은 최소 수조원, 최대 수십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개발자 양성 교육에 쏟아부으면서 '인공지능 교육'을 했다고 과대 포장을 했다. 기업들도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주가 부양을 하기 위해, 회사의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과대 포장을 따라했고, 결국 진짜 AI 전문가를 키우는데 필요한 대학원 교육에는 큰 보조금이 들어가지 못했다.

또 하나 부작용을 들자면 '시민 데이터 과학자(Citizen Data Scientist, CDS)'를 양성할 수 있다는 주요 비전문가들의 착각이다. 고급 통계 패키지들에 대한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누구나 쉽게 '내 첫번째 딥러닝 프로젝트(My First Deep Learning Project)'라는 이름으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자신이 AI 전문가라고 과대포장하는 내용을 등록하기 시작했고, STEM 관련 석·박 대학원 훈련을 받은 최상위권 인재가 아니어도 누구나가 쉽게 데이터 과학을 할 수 있다는 식의 홍보가 오랜 기간 진행됐다. 대학원 과정은 커녕, 영미권 대학의 학부 2-3학년 과정만 가르쳐도 F 학점을 받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도망가는 수준의 인력들이어도 프로그래밍 패키지를 실행만 할 수 있으면 전문가라고 포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접근성 민주화'가 낳은 부작용, 비전문가 대량 양산

이쪽 분야에서는 접근성의 확장을 '민주화(Democratized)' 됐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민주화 과정이 코드 접근성만 높였지, 그 코드가 실행하고 있는 고급 통계학, 그 통계학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수학에 대한 접근성은 전혀 높이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데이터들이 그렇게 수학, 통계학에 대한 접근성이 0인 상태에서도 패키지만으로 '분석' 작업이 됐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STEM 교육을 받은 인재들에게 미국 정부가 특별 비자 지원까지 해 줄만큼 고급 인재 대접을 받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인공지능 = 코딩'이라는 황당한 공식을 수십조원의 예산을 투입해가며 시장에 홍보한 탓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다. 일부 기업들, 언론사들이 여전히 '시민 데이터 과학자'를 키워내는 교육과정을 제공한다고 사람들을 모은다. 대학을 세우고 국내 명문대 STEM 전공 학, 석, 박사 출신들을 받아 해외 명문대의 학부 2-3학년 수준 과정을 가르쳐보면서 새삼 알게 된 내용이지만, 한국의 수학 교육 수준은 글로벌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심하게 낮은 수준이다. 그렇게 시장 수준이 낮기 때문에 시민 데이터 과학자를 길러낼 수 있다는 착각이 계속 남아있는 것인지, 그런 홍보가 계속되는 탓에 시장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것인지, 원인 변수와 결과 변수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인과관계를 넘어 결론만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훈련을 받은 인력들이 뽑아낸 '데이터 분석 결과물'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 밖에 안 될 것이다. 국민 세금 수십조원을 써서 만든 결과물이 조롱의 대상 밖에 되지 못한다면 그 예산 집행은 옳은 집행이었을까?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효정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식은 전달하는 정보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기고] 같은 눈높이를 갖춘 인력들로 구성된 학회의 장점

[기고] 같은 눈높이를 갖춘 인력들로 구성된 학회의 장점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효정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식은 전달하는 정보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수정

학회에 간다는 것이 매우 재밌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박사 학위 과정 2년차에 '미국 산업응용수학회(Society for Industrial and Applied Mathematics, SIAM)'에 초청 받았던 즈음으로 기억한다. 막 대학원에 들어갔던 시절에는 당장 수업을 따라가기도 버거웠고, 교수님들 논문 발표를 따라가는 것은 커녕, 가깝게 지내는 박사생들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이 마냥 대단해보이기만 했었다.

박사 1학년 시절 듣던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쓰고 있는 중이라는 논문으로 수업을 하시는데, 기본 가정을 너무 부실하게 잡아서 연구 목적이 달성될 것 같지 않아보이는 논문의 가정을 별 생각없이 지적했더니, 교수님이 '너무 논문 평가자처럼 볼 필요는 없다.(You act too much like a critic. You don't have to.)'라며 받아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부터는 논문들의 수준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누군가의 논문을 지적할 수 있는 만큼, 내 논문의 조잡함도 함께 이해하게 됐던 것 같다.

seminar
사진=Pexel

'수학=언어'라는 훈련이 되어야 연구를 연구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논문 심사를 거쳐 외부 학회에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졸업 논문을 승인하는 구조를 갖춘지 2년째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 출신 학생들 대부분이 연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학위를 따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기 때문에 논문 주제부터 잘못 잡는 경우가 많아 결국 졸업을 못하는데, 반면 논문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학생들의 논문을 보면 속칭 '탈한국'을 하는데 성공했구나는 생각이 들어 교육자 입장에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학생들과 평소에 대화를 나눠보면 딱 박사 1학년 때 눈이 열려서 내 논문이 매우 부끄러웠던 시절 같은 느낌이 든다. 자기 논문의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연하게나마 이해가 됐는데, 아직 배운 내용이 부족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가 넘쳐난다는 것을 감은 잡은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기초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단순히 데이터만 구해와서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계산 방법론 몇 개만 적용해본 것으로 조잡한 논문만 발표하는 국내 명문대 교수들의 학회들에 불편한 감정이 많았는데, 수학적인 훈련이 어느 정도 됐다보니 본인의 무지를 깨닫는 대학원생들을 보면서는 오히려 반가운 감정과 응원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첫 해에는 논문 발표 중에 계속 쏟아져 나오는 연구자들의 질문에 학생들이 대답을 못할까봐 두려운 감정이 컸다. 논문 지도 수업 내내 여러차례 지적했던 내용들인데도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쉬운 감정도 있었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질문하는 것처럼 답변을 해준 적도 있었다.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연구자들이 논문 지도 수업 중에 내가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하면 우습기도 하고, 대답을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몇 달이나 시간을 줬는데 왜 못 고쳤나'는 꾸중을 하고 싶은 감정도 솟구쳤다.

비슷한 질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역시 훈련을 받은 연구자들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는 것도 이해하게 됐고, 반대로 저 학생들이 같은 시선을 갖추게 되면 더 이상 가르칠 필요없이 스스로 노력해서 성장하는 길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박사 논문 지도를 그렇게 깐깐하게 하는구나는 이해도 새삼 얻게 됐다.

같은 눈높이를 갖춘 인력들로 구성된 학회의 장점

처음 SIAM 학회에 발표자로 뽑혔다는 이메일 답장을 받았던 무렵, 고작 박사 2학년에 갓 올라간 주제에 그런 유명한 학회에서 발표를 해도 될까는 두려움이 컸었다. 아예 모르는 내용을 질문 받고는 얼어버리는 것은 아닐까는 걱정도 있었고, 과연 내 연구에 다른 연구자들이 관심이나 있을까는 불안감도 있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수학적으로 훈련도가 높지 않은데 미국 최대 수학 학회에 참가하는 실력자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는 자기 불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다행히 둘째 날 오후 발표 순서를 배정 받았고, 첫째 날에 다른 발표들을 매우 열심히 들으면서 그 학회에는 수학 이외에 매우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초청을 받았고, 자기들 세부 전공에서 하는 연구 방식은 다르지만, 쓰는 언어가 '수학'인 덕분에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거기다 내가 쓰고 있는 언어가 그들과 같은 언어고, 내 연구가 그들의 연구보다 그렇게 수학적으로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니 안도감이 생기더라.

둘째 날 오후에 연구실 동료와 발표를 나눠 맡으며 질문에 답변을 다 하고, 쉬는 시간에 전 세계 다양한 국가, 다양한 전공 출신의 연구자들에게 평소에 보지 않았던 관점에서 색다른 질문을 받으면서, 이런 것이 연구고, 이런 것이 학회 행사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됐던 것 같다. 특히, 그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눈높이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니 더 편하게 진행하던 다른 연구들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그들의 경험담 하나하나가 내 연구의 방향을 미세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부터 10년 남짓이 지났는데, 여전히 학회에 가면 초급 연구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해하고, 어떤 부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는 것이 고급 연구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덕분에 불편함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에 만족감을 얻는다. 전공이 같지 않더라도 수학적 도구를 쓰는 눈높이가 비슷한 인력들이 모인 학회라면 얼마든지 다른 연구를 이해하고, 나 스스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학회 논문 발표를 들으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느끼는 쾌감 덕분에 더 많은 학회를 찾아가고 싶어진다.

반대로 같은 눈높이를 갖추지 못한 분들, 같은 언어를 쓸 수 없는 분들의 이름 뿐인 학회에는 초청을 받아도 참석하기가 싫어진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잘못된 내용, 틀린 내용을 발표하거나, 고급 연구가 아니라 단순한 기업 설명회 수준의 발표에 지나지 않는 자리를 '학회'라고 이름을 붙여놨기 때문이다. 그 분들께 미안하지만, 그런 학회를 피할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친 학생들이 뼈아픈 질문을 받고 자기 논문의 부족함에 자책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시련을 이겨내면서 탄탄한 역량을 갖추고 나면 언젠가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뛰어난 연구자 분들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학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감으로 학회를 찾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반대로, 내실이 없는 학회를 피할 수 있는 시야를 갖추고 좀 더 생산적인 일에 노력과 열정을 쏟게되면 좋겠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효정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식은 전달하는 정보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해외 DS] AI도 속는 착시, 인간과 얼마나 닮았나?

[해외 DS] AI도 속는 착시, 인간과 얼마나 닮았나?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태선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수정

GPT-4V, 실제 픽셀 색상 대신 사람이 인지하는 색상을 묘사
챗봇도 인간처럼 주관적으로 색상을 해석했을 가능성 시사해
착시 연구를 통해 인간 시각 인지와 AI 작동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Optical Illusions Can Fool AI Chatbots ScientificAmerican 20240530
사진=Scientific American

2015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파랑-검정 vs 흰색-금색 드레스' 사진은 사람마다 색깔을 다르게 인지해 화제가 됐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의 디미트리스 파파일리오풀로스(Dimitris Papailiopoulos) 컴퓨터공학 교수는 착시를 일으키는 이 사진을 떠올리며 흥미로운 실험을 시작했는데, 오픈AI의 챗GPT와 구글의 제미나이와 같은 챗봇이 인간의 뇌를 속이는 착시 현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인간의 시각 시스템은 다양한 조명 조건에서도 물체를 일관된 색상으로 인식하도록 진화해 왔다. 때문에 한낮의 밝은 햇빛 아래에서도, 주황빛 노을 아래에서도 나뭇잎은 녹색으로 보인다. 이러한 적응력 덕분에 우리 뇌는 다양한 방식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색상을 보게 된다. 아델슨의 체커그림자 착시, 빨간색이 없는 코카콜라 캔이 빨갛게 보이는 착시 등이 대표적인 예다.

파파일리오풀로스 교수는 시각 프롬프팅에 특화된 GPT-4V를 이용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챗봇 역시 인간과 동일한 착시 현상에 속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챗봇은 이미지의 실제 픽셀 색상보다 사람이 인지하는 색상에 기반하여 이미지를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파란색 필터가 적용되어 실제로는 파란색과 녹색 값이 큰 연어회 사진을 보고도 챗봇은 이를 분홍색으로 인식했다. 이는 챗봇이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파파일리오풀로스 교수가 직접 제작한 '색 항상성 착시' 사진에도 똑같이 반응한 결과로, 챗봇이 인간처럼 시각적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Target combo ScientificAmerican 20240530
왼쪽은 일반적인 과녁 이미지, 오른쪽은 색채 항상성 착시 현상을 보여주는 파란색 필터 이미지다. 필터를 입힌 이미지 속 과녁의 중심은 빨간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란색과 녹색 값이 더 높다/사진=Scientific American

인간처럼 색깔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파파일리오풀로스 교수는 "이번 실험은 공식적인 연구는 아니었고,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실험이었다"라며, 해당 결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챗봇이 이미지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원본 이미지를 수정하는 것이 아닐지 의심했지만, OpenAI 측은 GPT-4V가 이미지를 해석하기 전에 색온도나 다른 특징을 조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파파일리오풀로스 교수는 챗봇이 인간의 뇌처럼 이미지 속 물체들을 서로 비교하고 픽셀을 평가하여 문맥에 맞게 색상을 해석하는 법을 학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캐나다 맥길대학의 블레이크 리처드(Blake Richards) 컴퓨터과학·신경과학 교수 또한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며, 챗봇이 인간처럼 물체를 식별하고 해당 유형의 물체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색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학습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AI 모델이 이미지 속 색깔을 미묘하게 해석하는 방식은 인간의 시각 인지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리처드 교수는 AI 모델이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며 색깔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현상은, 인간 역시 비슷한 학습 과정을 통해 색깔을 주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시사할 수 있다며, 인간과 기계의 시각 인식 능력이 생각보다 유사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챗봇이 항상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챗봇은 때로는 인간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전혀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사실 인간과 AI는 생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앞뒤로 주고받는 복잡한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 정보를 바탕으로 정보의 빈틈을 채우고 추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반면 대부분의 AI 모델은 정보가 입력에서 출력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단순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

물론 인간의 뇌처럼 정보를 순환시키는 신경망 모델도 있지만, 대다수의 머신러닝 모델은 순환적인 양방향 연결을 갖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가장 널리 쓰이는 AI 모델은 정보가 입력에서 출력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 방식이라 인간의 복잡한 사고 과정을 완벽히 따라잡지 못한다. 하지만 AI 시스템이 착시 현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나면, 착시 현상 연구를 통해 현재 널리 사용되는 단방향 AI 모델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나아가 인간처럼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착시 연구 통해 인간 시각 인지 과정과 AI 작동 방식을 엿보는 게 핵심

최근 4개의 오픈 소스 비전-언어 멀티모달 모델을 평가한 연구팀은 모델의 크기가 잠재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더 많은 가중치와 변수를 사용하여 개발된 모델이 작은 모델보다 착시 현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더 유사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연구자들이 실험한 AI 모델은 이미지 내 착시 요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뛰어나지 않았고 (평균 정확도 36% 미만), 인간의 반응과 일치하는 경우는 평균적으로 16%에 불과했다. 또한 모델이 특정 유형의 착시 현상에 대해서는 다른 유형보다 인간의 반응을 더욱 밀접하게 모방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와 비슷한 착시 실험을 진행한 아마존웹서비스(AWS) AI 랩의 응용 과학자인 와시 아마드(Wasi Ahmad)는 AI 시스템이 착시 현상을 해석하는 능력 차이는 정량적 추론과 정성적 추론 중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간은 두 가지 추론 모두 능숙하지만, 머신러닝 모델은 쉽게 측정할 수 없는 것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덜 익숙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AI 시스템이 해석을 잘하는 세 가지 착시 유형은 모두 주관적인 인식뿐 아니라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속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AI 시스템의 특성은 인간의 편향을 복제할 수도, 완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책임감 있는 활용을 요구한다. 같은 관점에서 자연어 처리와 인간-로봇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조이스 차이(Joyce Chai) 컴퓨터과학 교수는 AI 시스템을 책임감 있게 활용하려면 인간의 경향이 어디에서 복제되고 어디에서 복제되지 않는지뿐만 아니라 AI 시스템의 취약점과 약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델이 인간과 일치하는 것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라며, 어떤 경우에는 모델이 인간의 편향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방사선 이미지를 분석하는 AI 의료 진단 도구는 시각적 오류에 취약하지 않아야 한다고 예시를 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AI가 인간의 편향을 모방하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에 사용되는 AI 시각 시스템이 인간의 실수와 유사하게 작동하도록 설계한다면, 차량의 실수를 예측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리처드 교수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가장 큰 위험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운전 중에 실수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기존 도로 안전 시스템이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율주행차의 "이상한 오류"를 우려했다.

OpenAI의 GPT-4V와 같은 대규모 머신러닝 모델은 설명 없이 결과만 제공하는 불투명한 시스템, 즉 '블랙박스'로 불리곤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도 익숙한 착시 현상은 이러한 블랙박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편집진: 영어 원문의 출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태선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알테쉬 초저가 공세에 밀린 동대문패션타운, ‘한 집 건너 공실’

알테쉬 초저가 공세에 밀린 동대문패션타운, ‘한 집 건너 공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임선주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패션의 성지' 동대문 일대, 공실로 몸살
벼랑 끝 몰린 맥스타일, 10곳 중 9곳 텅 비어
'알·테·쉬' 진격에 도매 플랫폼도 줄줄이 폐업
Dongdaemun_Fashionmall_001_TE_20240531

한때 '패션의 성지'로 불리던 동대문 일대가 죽어가고 있다. 부품, 원단, 도매, 소매 모든 부문에서 예전 같은 활기는 사라진지 오래고, 주변 건물 대부분 공실률이 절반을 넘는다. 시장을 지탱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코로나19로 발길을 뚝 끊으면서 하염없이 추락한 동대문은 최근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플랫폼의 '초저가 경쟁' 가속화에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모습이다.

동대문패션타운, 공실률 급증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이곳 도소매 상가건물 32곳 중 14곳의 공실률이 두 자릿수다. 소매상가인 맥스타일은 공실률이 무려 86%에 이른다. 점포 10곳 중 9곳 가까이 비어 있는 셈이다. 디자이너클럽(77%)과 굿모닝시티(70%)에서도 절반 이상의 점포가 문을 닫았고, 혜양엘리시움(44%), 헬로에이피엠(37%) 등의 공실률도 늘고 있다.

동대문 패션타운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방문객이 줄자 소매시장이 먼저 타격을 입었다. 2016년 사드 사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국인을 비롯한 관광객 유입이 사실상 끊겼다.

엔데믹 이후에도 회복은 요원하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회복세를 보이지만 동대문을 찾는 관광객 자체가 줄고 있다. 밀리오레 2층에서 여성복·아동복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하루 방문객 중 국내 손님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해외 관광객들도 예전보다 줄었고, 이들 대부분이 예전처럼 의류 대량구매를 하기보다는 순수 관광 목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 매출에 타격이 크다”고 했다.

C커머스로 발길 돌린 소비자들

여기에 더해 최근 이용자가 폭증한 알테쉬 등 C커머스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이들이 초저가 의류를 판매하면서 동대문 패션타운의 입지가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동대문에서 유통되는 옷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으로 대체된 데다 알리와 테무에서 비슷한 옷을 싸게 주문할 수 있는데 누가 동대문을 찾아오겠냐”고 토로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특히 동대문 도매시장의 경우 지금까지는 디자인 기획력과 품질에서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중국 업체의 염가 공세를 막아냈지만, 중국의 의류 산업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 패션 플랫폼 관계자는 “지금은 중국산과 품질 차이가 있지만, 격차가 더 좁혀지면 도매시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인들은 동대문 도매시장을 찾던 외국인 바이어 수가 최근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광저우·항저우 도매시장에서 파는 옷의 품질이 좋아져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바이어들까지 동대문으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도매상의 주요 고객이었던 국내 소매상도 중국 도매상과 C커머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동대문 도매상과 소매상을 이어주던 플랫폼이 하나둘 폐업하면서 위기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2년 설립된 도매 플랫폼 ‘링크샵스’는 올 초 문을 닫았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처음으로 사입 중개 서비스를 시작해 한때 벤처캐피털에서 200억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았지만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결국 폐업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또 다른 도매 플랫폼인 ‘골라라’가 서비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coupang-car-daegu-20240531_002
사진=쿠팡

알테쉬 공세에 '쿠팡' 입지도 위태

C커머스발 쓰나미로 인해 시름을 앓는 건 동대문만이 아니다. 국내 이커머스 1위 업체 쿠팡도 C커머스 플랫폼의 공세에 힘겨운 상황이다. 2018년 한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인기 배우 마동석을 모델로 플랫폼 마케팅을 본격화하며 인지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지난해 10월 한국상품 전문관인 케이베뉴(K-베뉴)를 개설해 한국 셀러를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상품 영역도 가공·신선식품으로 확대했다. 1년 새 한국 시장 공략에 가속 페달을 밟은 셈이다.

이런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이 물류센터 설립 등을 포함해 3년간 11억 달러(약 1조4,471억원) 규모의 한국 투자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나면서 쿠팡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쿠팡은 연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흑자 6천억원을 달성하며 창립 13년 만에 '유통 제왕'으로 공인받았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중국산 초저가 상품을 내세워 한국 시장을 파고들면서 더는 과거와 같은 성장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와이즈앱 기준 1년 새 증가한 쿠팡 앱 이용자 수는 57만 명으로 알리익스프레스(463만 명)와 테무(581만 명)에 한참 못 미친다. 기존 토종 업체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던 와중에 중국 업체들이 가세하며 글로벌 이커머스 격전지로 변모한 양상이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임선주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전달하겠습니다.

기술기반업종 창업기업 수 10% 이상 급감, 스타트업 생태계 빨간불

기술기반업종 창업기업 수 10% 이상 급감, 스타트업 생태계 빨간불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기술창업 전년비 10% 감소, 고금리 장기화 등 원인
스타트업 투자도 2021년 정점 찍고 줄곧 하락세
이대로면 벤처생태계 고사 위기, 규제 완화해야
startup_001_TE_20240531

올해 1분기 기술기반 창업기업이 1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부터 시작된 기술창업 감소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에 신산업·딥테크 분야 유망 창업기업을 키우겠다는 정부 목표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술기반업종 감소폭↑, 창업 생태계 비상

30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KOSI)에 따르면 지난 3월 제조업과 지식기반서비스업 등 기술기반업종 창업기업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4% 줄어든 1만8,992개를 기록했다. 1분기 전체 기술창업 기업은 5만5,820개로 전년 동기(6만2,299개) 대비 10.3% 감소했다.

기술창업 기업 감소는 2022년부터 시작됐다. 2022년 22만9,416개로 전년도에 비해 4.2% 감소한 데 이어, 2023년 22만1,436개로 다시 3.4% 줄었다. 올해 1분기는 훨씬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장기화와 투자 둔화 등을 창업 감소 원인으로 꼽는다. 지난 1분기 전체 창업기업 역시 30만6,200여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8.1% 감소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변화된 인구·경제 환경에 맞춰 생애주기별 창업 지원정책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술창업 아이디어를 보유한 예비창업자에게 사업화 자금 최대 1억원과 비즈니스모델(BM) 고도화, 시제품 제작 등을 지원하는 예비창업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올해는 예비창업자 약 930명을 선발했는데 지난해 1,142명에서 18.5% 축소됐다. 아울러 창업 3년 이내 기업 성장을 돕는 초기창업패키지도 3년 사이 지원대상이 300여 명 줄었고 창업 저변을 다양화할 수 있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도 같은 기간 15%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처럼 창업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민간주도형 기술창업 프로그램 팁스(TIPS) 선정 규모를 1,0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팁스는 민간 운영사 투자를 받은 7년 미만 창업기업에게 연구개발비를 2년간 최대 5억원과 사업화·마케팅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 규모 단계적 확대를 위해 올해 신규 선발기업을 크게 늘렸는데, 정작 기존에 선발된 선정기업 500여 개사는 올해 받기로 한 연구개발(R&D) 자금 20%가 삭감될 뻔했다.

정부 창업·R&D 지원사업에서 초기 창업기업이 설 자리도 점차 없어지고 있다. 초기기업 대상 R&D 지원사업인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디딤돌 과제(1년간 최대 1억2,000만원 기술개발비 지원)는 올해 상위단계 수행기업의 역방향 지원 제한을 폐지했다. 그 결과 시스템반도체·인공지능(AI)·미래차 등 초격차 10대 분야 기업에 3년간 11억원을 제공하는 '초격차 스타트업 1,000+ 선정기업'이 디딤돌 과제에도 선정된 사례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트업 투자도 축소, 전년 대비 28%

스타트업에 대한 기업 투자도 감소하는 양상이다. 벤처 투자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네이버 D2SF와 카카오벤처스의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15건, 투자 금액은 1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두 기업의 투자 건수(106건)와 투자 금액(544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동안 네이버와 카카오는 막대한 투자를 통해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이를 위해 전문 벤처캐피털(VC)인 네이버 D2SF와 카카오벤처스도 운영하고 있다. 네카오는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투자를 통해 성장을 돕고, 향후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 기업공개(IPO) 진행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추가 수익을 창출했다. 일부 스타트업은 자회사로 편입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시절 언택트(비대면) 문화 확산과 풍부한 자금 유동성으로 네카오의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2021년 861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불과 1~2년 새 금리가 급등하고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스타트업 혹한기’로 불릴 만큼 투자의 씨가 말랐다. 스타트업 민간 지원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투자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건수는 584건, 투자 금액은 2조3,226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상반기와 비교해 각각 41.5%, 68.3% 줄어든 수치다.

platform_act_TE_20240531

정부 규제가 창업 생태계 발목 잡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창업이 감소하는 데는 정치권 규제 강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은 국내 스타트업들을 강하게 옥죄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 후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사전 규제를 받을 수 있고, 유튜브·구글·알리익스프레스 등 글로벌 기업이 한국 시장을 잠식한 상황에서 국내 사업자만 규제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토종 플랫폼 기업만 규제에 적용돼 위축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고사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벤처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포럼·한국여성벤처협회 등 혁신 벤처·스타트업 단체는 지난 1월 “플랫폼법 제정은 '규제 혁신이 국정 최우선 과제'라는 윤석열 대통령 과거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면서 “규제 필요성만 강조되고 본질적 목적인 벤처·스타트업 혁신과 성장을 입법 과정에서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더 많은 규제가 부여되기에 시대 흐름과 역행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또 플랫폼법이 시행되면 모험자본시장 위축과 혁신 벤처생태계 축소로 국내 벤처·스타트업이 위기에 빠질 것으로 관측했다. 플랫폼법이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중간 회수시장을 활성화했던 플랫폼 기업을 크게 위축시켜 결국 국내 창업 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이란 전망이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세기의 이혼’ 재산분할도 역대급, 지배구조 위기 속 자금 마련 ‘비상’

‘세기의 이혼’ 재산분할도 역대급, 지배구조 위기 속 자금 마련 ‘비상’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서울고법, 최·노 이혼 소송 항소심서 노 손들어줘
위자료 20억원·재산 분할 1조3,808억원 지급 판결
지분율 낮은 최태원 회장, 지배구조 영향 불가피
SK_divorce_001_TE_20240531

'세기의 이혼'이라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2심에서 크게 뒤집혔다. 재판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자금 유입’을 언급하며 이를 판결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1조원 넘는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위기에 놓인 가운데, 이번 재판을 계기로 해외 헤지펀드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고법,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 인정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선고 공판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금 1조3,808억1,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 추산액 약 4조원을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각각 65%, 35%로 나눠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 넘게 늘어난 금액이자, 국내 이혼소송 재산분할 규모로는 역대 최대 금액이다.

2심에서 재산분할 액수가 ‘조’ 단위로 바뀐 것은 SK 주식 가치 상승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SK 주식을 최 회장이 아버지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에게 상속받은 고유 재산인 ‘특유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유재산은 배우자가 기여한 점이 없다고 봐 이혼할 때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이 아닌 부부간 ‘공동재산’으로 봤다. 재판부는 “최 전 회장이 1998년 사망하고 20여 년간 최 회장은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긴 시간 (경영활동을) 해 왔다”며 “주식 가치 증가에 대해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 역시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의 형성과 가치 증가에 유무형적으로 도움을 줬다는 점을 인정했다. 최 전 회장이 1991~1992년 노 전 대통령에게 교부한 ‘50억원 약속어음 6장’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최 전 회장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약속어음 6장은 노 관장 측이 2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최 전 회장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이에 최 회장 측은 “SK그룹에 비자금이 유입된 적이 없다”며 “이는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도 확인된 사실”이라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노 관장 측 손을 들어줬다. 또 재판부는 최 회장에 대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2월부터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SK_finance_naver_TE_02_20240531
출처=네이버증권

2심 판결 이후, SK 주가 9% 이상 폭등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직후 SK 주가가 급상승세를 타는 등 증시도 크게 출렁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0일 SK의 주가는 전일 대비 1만3,400원(9.26%) 뛴 15만8,1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SK 주가는 이날 장 중 14만3,200원까지 밀렸으나,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결과가 나온 오후 2시 30분부터 반등, 한때 상승 폭을 키우면서 16만7,700원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주가 상승을 견인한 세력은 개인과 기관투자자였다. 개인과 기관은 SK 주식을 각각 200억원, 318억원 순매수했다. 사모펀드들도 매수에 가담했다. 사모펀드의 SK 순매수액은 42억원으로 파악됐다. 반면 외국인은 530억원 규모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장 마감 이후에도 이어졌다. 시간외단일가 거래에서 SK 주가는 최대 4.11%까지 올랐고, 거래량은 15만4,609주로 전날 거래량(260주) 대비 594배나 급증했다. 31일 역시 오름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31일 오후 1시 45분 기준 SK는 전일 대비 5,900원(3.73%) 오른 16만4,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장 초반에는 16만9,500원까지 오르며 7.21%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가 급등은 SK의 경영권 리스크가 부각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면서 경영권에 변수가 생긴 만큼 주가에 단기 모멘텀이 붙은 결과다. 실제로 2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재산분할액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의 지분이 상당 부분 희석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앞으로 경영권 분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크게 점쳐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격적인 매수세가 유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권 분쟁은 단기적 호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SK_divorce_003_TE_20240531_NEW

1.4조 마련해야 하는 최 회장, 셈법 분주

이런 가운데 세간의 눈은 최 회장의 이혼 자금 마련 방안에 쏠리고 있다. 먼저 최 회장 보유의 SK 지분 매각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최 회장 보유 지분이 많지 않은 데다 자칫 지배구조를 위협당할 수 있는 우려가 상존하는 만큼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SK그룹은 최 회장이 지주사인 SK㈜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SK㈜가 다시 사업 회사를 지배하는 구조인데,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이 25.57%에 불과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통상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려면 35% 정도가 필요하다.

더욱이 지분 매각을 통해 최 회장의 경영권이 취약해질 경우 헤지펀드 등 외부 세력이 경영권을 타깃으로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국내 대기업은 해외 헤지펀드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SK그룹은 과거에도 타이거펀드(1999년), 소버린(2003년) 등 미국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소버린 사태는 당시 그룹의 지배구조까지 뒤흔들었다. SK㈜ 지분율을 14.99%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최 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이듬해인 2004년 SK㈜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 끝에 최 회장이 승리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 결국 2005년 소버린이 SK㈜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또 다시 재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경영권의 핵심인 SK㈜ 주식 매각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각 대신 최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가도 총 12조원에 달하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상속세 납부를 위해 홍라희·이부진·이서현 모녀가 삼성 계열사 지분 매각과 담보 대출을 병행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삼성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지분 매각 없이 개인 신용대출 등을 활용해 상속세를 내고 있다. 다만 최 회장은 이미 SK㈜ 주식 가운데 절반 이상인 767만 주(약 4,100억원)가 담보로 잡혀 있어 현실적으로 1조원 넘게 대출을 받기란 쉽지 않다. 또한 추가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재계에서는 SK그룹 경영권과 무관한 SK실트론 지분 매각을 유력한 해법으로 꼽고 있다. 최 회장은 SK실트론 지분을 29.4%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17년 SK㈜가 ㈜LG로부터 기업을 인수할 당시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 Swap) 형태로 지분을 인수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SK실트론의 기업 가치는 3조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만일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의 지분 29.4%를 매각할 경우, 약 1조원대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내리막길 걷는 삼성전자 주가, 파업·HBM 부진 등 악재 겹쳤다

내리막길 걷는 삼성전자 주가, 파업·HBM 부진 등 악재 겹쳤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삼성전자 주가 횡보 거듭, 7만4,000원 벽 깨져
노조 파업, HBM 부진 등 대내외 악재 겹친 결과
삼성 일가의 대규모 지분 매각도 주가에 악영향
samsung_20240531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줄이 삼성전자 '손절매'에 나서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의 창사 이래 최초 파업 및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부진 등 악재가 누적되며 주가가 미끄러진 결과다. 올해 들어 이어진 삼성 일가의 대규모 지분 매각 움직임 역시 주가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끄러지는 삼성전자 주가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1,700원(2.26%) 하락한 7만3,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주가가 종가 기준 7만4,000원을 밑돈 것은 지난 3월 19일 이후 72일 만이다. 하락세를 견인한 것은 외국인의 매도세였다. 외국인은 지난 29일부터 전날까지 9,235억원을 팔았다. 기관도 같은 기간 1,232억원을 순매도했다.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는 삼성전자 노조의 유례 없는 파업 선언이 꼽힌다. 전삼노는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이 교섭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 즉각 파업에 임한다"고 발표, 파업 움직임을 공식화했다. 노조 측은 조합원들에게 오는 6월 7일 단체 연차 사용을 요청해 본격적인 연가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편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아직은 소극적인 파업으로 볼 수 있지만 단계를 밟을 것"이라며 "총파업까지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22%(약 2만8,400명 추산)가 몸담고 있는 전삼노가 대대적 파업에 착수할 경우, 삼성전자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전삼노 조합원의 대부분이 주력 사업인 DS(반도체) 부문 종사자라는 점도 큰 악재다.

HBM 시장 영향력 상실

삼성전자의 HBM 부진 역시 주가 하락을 견인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38%에 그쳤다. 이는 1위인 SK하이닉스(53%)의 점유율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HBM 시장의 큰손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시장 영향력을 잃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HBM 샘플 테스트를 계속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해 10년 전부터 적극적인 HBM 투자를 진행한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부터 엔비디아에 HBM3E 8단 제품을 출하하기 시작했고, 12단 제품 역시 인증 과정을 거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주요 공급사' 자리를 굳히며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hbm_samsung_down_20240531

위기를 감지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하며 경영 쇄신에 나섰다. 지난 21일 삼성전자는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을 DS부문장으로, 경계현 DS부문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반도체 부문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인사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회사 측이 강력한 쇄신 의지를 내비친 이후에도 주가는 '횡보'를 거듭했다.

"자꾸 물량 쏟아져" 삼성 일가 리스크

삼성 일가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꾸준히 처분하고 있다는 점 역시 악재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남긴 유산에 부과된 상속세는 자그마치 12조원에 달한다. 이에 삼성 일가 3모녀(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는 꾸준히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며 재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 보통주 2,982만9,183주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했다. 당시 이들이 매각한 삼성전자 지분은 홍 관장 0.32%(1,932만4,106주), 이 사장 0.04%(240만1,223주), 이 이사장 0.14%(810만3,854주)다. 해당 거래를 통해 이들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홍 전 관장 1.45%, 이 사장 0.78%, 이 이사장 0.70%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4월에는 이 사장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약 520만 주를 블록딜로 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는 삼성전자 지분 약 0.09%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주당 매각 가격은 8만3,700~8만4,500원으로, 매각 규모만 자그마치 4,460억원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업계 종사자는 "삼성 일가가 계속해서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며 "대내외적 악재까지 고려하면 (삼성전자) 주가가 유지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라고 진단했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반도체가 경제 살릴 것" 산업연구원, 올해 GDP 전망치 상향 조정

"반도체가 경제 살릴 것" 산업연구원, 올해 GDP 전망치 상향 조정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수정

산업연구원 "올해 한국 경제 2.5% 성장한다"
회복기 맞이한 반도체 산업, 수출 견인 기대
'반도체 대표 주자' 삼성전자 둘러싼 변수는
chips_korea_20240531

산업연구원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를 2.5%로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부문의 업황이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든 가운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증가세가 경제 전반을 견인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산업연구원의 낙관적 전망

30일 산업연구원은 ‘2024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을 발간, 올해 한국의 수출이 8.3% 증가하며 3년 만에 연간 무역 흑자가 발생할 것이라 전망했다. 연구원은 “2024년 수출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호조세에 힘입어 전년 대비 8.3% 증가하고, 수입은 하반기 수출 업황 개선에 따른 중간재 수입 증가로 연간 1.4% 늘어날 전망”이라며 “무역수지는 연간 335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며 3년 만에 연간 흑자 달성이 기대된다”고 했다.

민간 소비의 경우 고물가로 인한 실질 구매력 약세, 고금리 기조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의 영향으로 1.8% ‘미약한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설비 투자는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다소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자금 조달 부담과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2.3%의 '제한적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건설 투자의 경우 장기화하는 부동산 경기 둔화와 신규 인허가·착공 물량 감소 영향으로 작년보다 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한국의 GDP 전망치는 2.5%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2.3%보다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시한 2.6%보다 낮은 수준이다. 산업연구원은 “고물가·고금리가 내수 부문의 성장세를 제약할 전망이나, 반도체를 중심으로 자동차·조선 등의 주력산업의 수출 호조세가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chips_up_20240531

제자리 찾아가는 반도체 시장

이어 연구원은 2024년 상반기 반도체 수출이 큰 폭의 실적 부진이 나타났던 2023년 상반기 대비 48.2%의 고성장을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다. 최근 들어 반도체 시장이 수요 회복, 재고 감소 및 단가 안정화에 따라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서는 “수출 증가에 대응한 가동률 상승과 단가 상승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2% 증가가 예상된다”고 짚었다.

실제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9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10개사의 올해 1분기(1~3월, 일부 기업은 2023년 12월~2024년 2월·2024년 2~4월) 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은 1,488억 달러(약 204조4,95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순이익은 329억 달러(45조1,059억원)로 4.6배 늘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 대상이 된 기업은 삼성전자, 엔비디아, TSMC, 퀄컴, SK하이닉스, 마이크론, ST마이크로, AMD,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다. 이들 중 전년 동기 대비 순이익이 증가한 기업은 4곳(삼성전자·엔비디아·TSMC·퀄컴)이고, 흑자 전환에 성공한 기업은 3곳(SK하이닉스·AMD·마이크론)이다. 인텔은 10개사 중 홀로 적자를 기록했다.

파업 등 악재 부딪힌 삼성전자

관건은 대규모 파업 등 '악재'에 휩싸인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지다. 지난 29일 삼성전자 사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은 삼성전차 창 이후 최초로 파업을 선언했다. 전삼노는 중앙노동위원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 조합원 찬반투표 등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삼성전자 창사 55년 이래 최초 파업의 불씨는 성과급이었다. 지난 1월 29일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을 확정해 공지했다. 삼성전자는 사업부가 연초 세운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 이익금의 5분의 1 한도 안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문제는 올해 삼성전자의 반도체(DS) 부문의 성과급 지급률이 '0%'였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황 불황으로 DS 문이 지난해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이유에서다.

'성과급 0원' 사태에 불만을 품은 DS 부문 직원들은 줄줄이 전삼노에 가입, 본격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전삼노는 지난 28일까지 임금 인상 및 투명성,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쟁점 삼아 2023~2024년 임금 교섭을 진행했으나, 끝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삼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임금 제도 개선이며 이 부분이 선행돼야 한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것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한 성과급 지급”이라고 밝혔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서지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해외 DS] 인공지능 약점을 노리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

[해외 DS] 인공지능 약점을 노리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전웅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흥미로운 데이터 사이언스 이야기를 정확한 분석과 함께 전하겠습니다.

수정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 시스템, 국방·운송·자동차 등 사용범위 점차 늘려가
무인 시스템이 성장하는 만큼 무인 시스템 취약점을 노리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도 같이 성장해
지향성 에너지 무기에 교란당하지 않으려면 무인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부터 취약점 고려해야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저희 글로벌AI협회 연구소(GIAI R&D)에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DEW
사진=Scientific American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 시스템이 산업에서 점차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에 무인 시스템의 취약점을 노리는 무기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무기로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가 있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무인 시스템의 전자 센서를 교란시켜 무인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킨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한 만큼, 인공지능의 반격 무기인 지향성 에너지 무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지고 있다.

인공지능 천적, 지향성 에너지 무기

인공지능을 이용한 무인 시스템이 널리 활용되는 추세다. 실제로 미국 공군 장관은 인공지능의 조종을 받으며 F-16을 타고 캘리포니아 사막 상공에서 모의 공중전을 벌였다. 또한 자동차 제조업체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공급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선원이 없는 화물선이 비료를 운반하고 있다. 위 사례는 모두가 무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인 시스템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향성 에너지 무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졌다. 여기서 지향성 에너지 무기란 한 곳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강력한 빔을 쏘는 무기를 말한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무인 시스템에 의존하는 센서와 전자 장치를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어 무인 시스템을 위협하는 존재다. 예를 들어 총과 미사일은 물론 통신기기, 레이더, 미사일 추적기도 방해할 수 있다. 일부 무기는 이미 현장에 배치되었으며 다른 무기는 테스트를 진행한 후 배치시킬 예정이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했던 지향성 에너지 무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일반적으로 고에너지 레이저 또는 고출력 마이크로파 시스템의 형태를 갖는다. 레이저 무기는 마이크로파 무기보다 장거리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지만, 한 번에 한 표적만 맞출 수 있다. 반면 마이크로파 무기는 넓은 영역을 공격할 수 있어 여러 표적을 동시에 타격하기 유리하다. 따라서 마이크로파 무기는 러-우 전쟁에서 사용되는 드론을 격추시키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무인 시스템은 레이저 공격에 특히 취약하다. 무기용 레이저 뿐만 아니라 상용 레이저로 무인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을 정도로 레이저에 쉽게 무너진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무인 시스템을 포함한 전자 시스템을 손상시킬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심지어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전력망의 제어 장치부터 사물 인터넷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자 장치까지 교란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파를 드론에게 쏘면 마이크로파를 맞은 드론은 전자 시스템에 교란이 생겨 추락한다.

무인 시스템 설계단계에서부터 반격 무기 고려해야

‘블랙박스’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은 실체를 알기 어려운 존재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한 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제조업체는 무인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센서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최근 자율주행 차량에 광학 카메라만 사용한다. 반면 알파벳의 자율주행 택시인 웨이모는 레이더, 라이더(LiDAR), 카메라를 조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드론 센서에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 개발자는 최첨단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만 집중하여 미래의 전자기 동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 전자기 동향을 고려해야 저비용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능이 이미 가동된 후에 전자기를 뜯어 고치는 일은 훨씬 더 비싸며 어려운 작업으로 심지어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인공지능 시대, 지향성 에너지 무기에 잘 대처해야

현재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위력이 입증됐으며 미국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전 세계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1919년에 니콜라 테슬라는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 “스스로 지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가 생산될 것이며 이들의 출현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며 인공지능 시스템을 갖춘 기계에 대해 예언했다. 니콜라 테슬라가 언급한 혁명은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왔으나, 인공지능 시스템의 취약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약점을 노리는 공격수단으로 이에 잘 대처해야 한다. 대처하지 못하면 인공지능 시스템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서 '취약점'을 고려할 시기가 왔다. 인공지능의 약점을 노리는 무기로부터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앞으로 인공지능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편집진: 영어 원문의 출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전웅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흥미로운 데이터 사이언스 이야기를 정확한 분석과 함께 전하겠습니다.

위기의 삼성전자, 사상 첫 파업 선언에 '노조 리스크' 우려

위기의 삼성전자, 사상 첫 파업 선언에 '노조 리스크' 우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수정

사내 최대 노조 전삼노, 6월 7일 연차 파업 선언
지난 3월 쟁의권 확보, 최근 대규모 집회도 개최
전삼노 민주노총 가입 시도에 勞·勞 갈등 조짐도
union_20240531

삼성전자 사내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가 창립 이후 55년 만에 첫 파업을 선언했다. 임금협상 결렬로 노사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쟁의행위에 돌입한 것이다. 최근 SK하이닉스와 TSMC에 밀리며 반도체 초격차 전략이 위기를 맞은 삼성전자가 '노조 리스크'라는 또 다른 악재를 만나며 회사 안팎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전삼노 "사측 교섭안 제시하지 않고 노조 무시해"

29일 전삼노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회사가 노조를 무시하면서 임금 교섭에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즉각 파업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측과 교섭을 벌여왔는데, 접점을 찾기는커녕 회사가 교섭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삼노는 우선 징검다리 휴일인 다음 달 7일 조합원들이 단체 연차휴가를 사용해 ‘파업’을 진행하고 이후 상황에 따라 수위를 높일 것인지 검토할 방침이다. 이날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24시간 버스 농성도 시작했다. 앞서 전삼노는 올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된 이후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74%의 찬성을 얻어 쟁의권을 확보한 바 있다.

지난해 노사 간 임금 교섭이 결렬되면서 올해 양측은 2023년과 2024년 임금 교섭을 병합해 지난 1월부터 △임금 인상 △임금 제도의 투명성 강화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안건으로 협상을 이어왔다. 지난 28일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은 교섭에 관한 안건을 제출하지 않았고 이에 전삼노가 사측 교섭위원의 교체를 요구하면서 공방을 펼친 끝에 결렬됐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교섭에 아무런 의지가 없는 회사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단순히 임금을 1~2% 인상해 달라거나 성과급을 많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임금 제도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samsung_20240530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파업 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29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에 노조 측이 파업을 선언한다는 문구가 적힌 버스가 서 있다/사진=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지난해 실적 악화, '성과급 0원'에 1만 명 노조 가입

전삼노가 집계한 조합원 수는 약 2만8,400명으로 전체 직원 12만4,804명 가운데 22.8%의 비중을 차지한다.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로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성과급이 ‘0원’이 되면서, 올해 초 1만 명 이상이 새로 가입했다.

앞서 지난달 17일 2,000여 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전삼노 주최 집회에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의 전통을 고수해 왔지만 지난해 대규모 적자로 촉발된 성과급 불만에 더해 경쟁사에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겹치자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노조 임원들이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인 적은 있지만 조합원 수천 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이 첫 사례다.

지난 24일에는 두 번째 단체행동에 나섰다. 당시 집회에는 전삼노의 상급단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아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조합원 200여 명이 이례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위기 경영으로 긴장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예인 공연이 동반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천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행사 비용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실적 부진 위기 넘기니 안전사고에 노조 리스크까지

최근 삼성전자에 있어 악재는 노조 리스크 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만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 1분기에 1조9,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5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처졌고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대만의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의 HBM 납품 테스트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

안전사고도 이어졌다. 지난 24일 기흥사업장 어린이집 신축공사 현장에서 5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3일 후인 27일에는 기흥사업장 생산라인 근무자 2명이 방사선에 피폭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올해 초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신축 현장의 안전관리 책임자들이 형사 입건됐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노조 리스크란 또 다른 악재를 만나면서 회사 안팎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사상 첫 파업 소식이 전해진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는 3.09% 떨어졌다. 여기에 노·노(勞·勞)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전삼노 사무실에 민주노총 담당자와 소속 변호사가 상주한다는 내용이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알려지자 전삼노 집행부가 상급 단체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삼성 5개 계열사의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전삼노의 쟁의행위가 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상급단체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임원들이 주 6일을 근무하는 등 비상 경영 체제를 도입하고 DS부문의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감행했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을 맡은 지 9일 만인 30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한마음으로 최고 반도체 기업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다시 힘차게 뛰어보자"며 "최근의 어려움은 지금까지 쌓아온 저력과 함께 고유의 소통과 토론의 문화를 이어간다면 얼마든지 이른 시간에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Picture

Member for

2 months 3 week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