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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국방예산 삭감에 요동친 방산주, 유럽은 상승하고 미국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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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유럽 패싱'에 유럽 정상들 '자강론' 강조
유럽 주요국 방위비 증액 움직임에 유럽 방산주 급상승
미국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올해 들어 13% 하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방예산 삭감 발언에 이어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 추진 움직임이 방산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패싱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이 맞물리면서 유럽 방산업체의 주가는 급등한 반면, 미국 방산업체들은 내림세로 전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NATO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행보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군비 증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면서 유럽 방산주의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 라인메탈, 8.8%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 기록

17일(이하 현지시각) 유럽 방산업체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배런스, 유로뉴스, 마켓인사이드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예산 삭감 발언과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 추진, 유럽 지도자들의 국방비 지출 확대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유럽 방산업체에 대한 투자 심리를 자극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날 독일의 헨솔트는 전 거래일 대비 14%, 티센크루프는 18% 상승했고 라인메탈의 주가는 8.8%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100유로 미만이었던 주가는 900유로에 육박했다. 라인메탈은 155mm 포탄을 포함한 대규모 포병 탄약을 생산하는 독일의 방산업체다.

이 외에도 영국 BAE시스템스는 전 거래일 대비 7%,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는 5.27%, 프랑스 탈레스는 4.72%, 스웨덴 사브는 10.34%, 노르웨이 콩스베르그 그루펜은 6% 상승했다. 프랑스 다쏘항공도 5% 가까이 상승하는 등 유럽 전역의 방산주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상승했다. 반면 미국 방산업체의 주가는 하락했다. 미국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은 올해 들어 13% 하락했고 같은 기간 제너럴다이내믹스는 8%, 노스롭그루먼은 6.5%, L3해리스테크놀로지스는 6%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유럽 방산주의 상승을 이끈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가 자국의 방산업체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하락세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방위비 관련 상반된 발언으로 시장 혼란

자국 방산주의 하락을 이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중국·러시아와의 국방 지출 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것이 정리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회담 중 하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며 "그 자리에서 3국의 군사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세 나라는 이미 세상을 50번, 100번 넘게 파괴할 수 있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어 추가 핵무기 제조는 불필요하다"며 "이러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언젠가는 국방예산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캠페인부터 취임 이후까지 국방예산에 대해 상반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끝내길 원한다면서도 전쟁으로 인해 미국 무기 구매가 증가한 점을 강조했다. 정부효율부(DOGE)를 조직해 예산 절감 방안을 모색하는 중에도 강력한 군사력을 강조하며 '미국판 아이언돔(Iron Dome of America)'으로 불리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CNBC는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인용해 "현재 국방 예산과 관련해 상충하는 흐름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시장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국가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을 두고도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국내총생산(GDP)의 2%'인 NATO의 방위비 목표치를 'GDP의 5%'까지 증액할 것을 요구해 왔다. 지난해 2월에는 대선 유세 중 'NATO 동맹국이 방위비를 늘리지 않으면 러시아가 이들을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강경 기조는 취임 후에도 이어졌다. 지난 13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호구(Uncle Sucker)로 만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유럽 방산업계의 미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유럽 국가들의 국방예산 증액이 미국의 무기 수출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23년 6월부터 12개월 동안 유럽 국가들의 방위비 지출액 750억 유로(약 113조원)의 78%가 유럽 외 지역으로 흘러갔으며, 그중 63%는 미국 제조업체에 돌아갔다. 국방 기술을 가늠하는 R&D(연구개발) 지출 규모에도 격차가 크다. 2022년 기준 유럽의 방위 R&D 지출은 전체 방위비의 약 4.5%인 107억 유로(약 16조원)에 불과했지만, 미국은 전체 방위비의 16%인 1,400억 달러(약 201조원)를 R&D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비 'GDP 5%' 요구에 유럽 재정 시험대 올라

이러한 흐름 속에 유럽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배제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관내 안보 보장에 있어 유럽 국가들의 역할 확대와 국방비 지출 증가 등을 포함한 이른바 '유럽 자강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없이 유럽 국가만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면 방위비 부담이 대폭 증가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유럽연합(EU)의 양대 산맥인 독일과 프랑스가 침체기에 접어들어 당장 방위비 지출을 올릴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무리한 방위비 지출 확대가 유럽 국가들의 국가 신용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최근 뮌헨안보회의에서 "안보 보장을 위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으며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희생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기관 S&P 글로벌은 "유럽 국가들이 국방예산을 GDP의 5%까지 늘리면 연간 8,750억 달러(약 1,258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한다"며 "다른 지출을 줄여 상쇄하거나 신용도에 부담을 주지 않고는 개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훨씬 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갈등도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국방예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복지 예산 삭감이 불가피해 정치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14일 "복지 예산을 줄여 국방 예산을 늘리면 사회가 분열되고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극우 정당뿐"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외신들은 오는 23일 치러지는 독일 총선이 정치적 의지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뮌헨안보회의에서 "지금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EU 전체가 너무 늦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정적자 수준으로 볼 때 유럽 재정이 방위비 확대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EU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GDP의 약 120%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지고 있으며 연간 재정 적자는 6% 수준이다. 반면 EU 회원국의 평균 부채는 GDP의 약 81.5%, 연간 재정 적자는 2.9% 수준으로 미국보다 낮다. 이에 대해 유럽 경제 싱크탱크인 브뤼겔연구소는 "미국은 2009년 이후 미국이 적자를 이용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국가들보다 5배 더 많은 자금을 경제에 투입한 결과"라며 "대부분의 EU 국가는 더 높은 공공부채를 감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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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법 무산 두고 여야 공방, '화이트칼라 이그잼션' 도입 위한 균형점 찾아야

반도체법 무산 두고 여야 공방, '화이트칼라 이그잼션' 도입 위한 균형점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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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법, 여야 이견에 산자위 소위 문턱서 좌절
민주당, 노동계 반발 의식해 기존 당론으로 회귀
과기장관 "선진국 중 한국만 국가 R&D 근로 제한"

고소득·고학력 근로자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제외하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에 해당 예외 규정을 포함할지를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원회 논의는 결국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데 반해 국민의힘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위해 유연한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성동 "민주당이 반도체 업계 요청 묵살해"

18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 열린 원내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반도체법에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을 반대하는 데 대해 "육상선수 발목에 족쇄를 채워 놓고 열심히 뛰라고 응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전날 국회 산자위 법안소위에서 여야는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을 심사했지만, 민주당이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에 반대하며 처리가 무산됐다. 법안 통과가 무산된 직후 권 원내대표는 "경쟁국보다 더 많은 지원은 못 해줄 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며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절실한 요청을 묵살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두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한때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가 철회한 것에 대해서도 공세를 펼쳤다. 권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일 반도체법 토론회에 참석해 '몰아서 일하기가 왜 안 되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며 사실상 유연성 확보에 동의해 놓고 불과 2주 만에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최근 조기 대선을 겨냥한 이 대표의 우클릭·친기업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는 "요즘 들어 성장을 외치는데 정작 성장하는 것은 이 대표의 거짓말 리스트뿐"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만 제외한 채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국민의힘은 "반도체법의 핵심은 집중 연구를 위한 근로시간 확보"라며 협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획일적인 주 52시간제의 폐해가 드러났음에도 민주당은 강성 노조와 일부 의원의 반발에 밀려 반도체법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어느 선진국도 연구·개발(R&D) 인력에게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어떤 연구자도 제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이 국회 앞에서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 제외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주52시간제 예외 적용과 관련한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한국노총

민주당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등 고려해야"

여당의 공세에 이재명 대표도 맞대응했다. 이 대표는 18일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 없이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몽니로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산업 경쟁력이 발목 잡히고 말았다"며 "국민의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라고 일갈했다. 이어 "계엄으로 국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이 망가지더라도 민주당이 하자는 것은 기어코 발목 잡아야겠다는 것인가"라며 "부디 더는 조건 붙이지 말고 합의 가능한 반도체법부터 우선 처리하자"고 촉구했다.

애초 민주당은 반도체법에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기보다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이달 3일 반도체법 토론회를 주재하면서 주 52시간제 예외 필요성을 언급한 뒤로 반도체법에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이를 두고 양대 노총 등 기존 지지층은 "노동 조건을 후퇴시키는 우클릭"이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당내에서도 이인영 의원 등이 "실용이 아니라 퇴행"이라며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은 최종 예외 조항을 신설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며 기존 당론으로 회귀했다.

특히 민주당은 반도체법상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신설할 경우,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예외 적용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산자위 핵심 관계자는 "노동시간 연장 문제는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일방 처리가 불가능하다"며 "충분한 소통을 통해 타협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전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제나 재량근로제로도 충분히 주 52시간제 예외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노동시간 추가 연장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R&D 몰입 높여 노동생산성 제고에 초점 둬야

여야의 남 탓 공방 속에 반도체업계는 법안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과 추격자인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R&D에 집중해야 한다"며 "현행 주 52시간제가 혁신 기술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R&D 연구자에 대해서는 근무시간 제한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 엔지니어들도 큰 테두리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편 반도체 업계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논의를 계기로 다른 산업계에서도 근로기준법 개정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17일 중소기업중앙회와 벤처기업협회는 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공식 요구했다. 중기중앙회는 "수출 기업 56%, 중소 제조기업의 28.3%가 주 52시간제로 인해 수주, 납기 준수, 생산성 등 문제를 겪고 있다"며 "기업 상황에 맞게 노사 자율로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벤처기업협회도 "R&D 등 핵심 인력에 대해 계약 자유의 원칙을 적용해 근로시간 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무작정 근로시간만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R&D 업무의 특성상 '몰입'이 중요한데 최근 MZ세대 근로자의 등장으로 산업 현장의 업무 마인드가 '목표 지향적'에서 '시간 지향적'으로 변화하면서 충분한 몰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다. 제도의 취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는 목소리가 높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는 장시간 근로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고연봉 관리·전문직은 근로시간이 아니라 일의 성과가 중요하다는 전제에서 도입되는 만큼 2차 산업 중심의 시간급제를 탈피해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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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통상전쟁 격화에 '중국 엑소더스' 가속화, 동남아·인도 반사 이익

미·중 통상전쟁 격화에 '중국 엑소더스' 가속화, 동남아·인도 반사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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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 '굿바이 차이나'
미·중 무역 갈등 격화하자 '脫중국' 행렬
생산공장 옮기고 사업 원점 재검토

미·중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다국적 기술기업의 ‘탈(脫)중국’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말고는 어디든’(anything but China)을 뜻하는 ‘ABC’가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른 양상이다.

美 기업 30% "공장 이전 시작"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기존에 중국 외의 보완 공급망을 확보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추진했던 다국적 기업들은 최근 아예 중국을 떠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중국 주재 미국상공회의소의 연례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360명 중 30%는 생산 기지 이전을 고려하거나 이미 시작했다고 답했고, 기술 및 연구개발( R&D) 기업의 약 4분의 1은 공급망을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품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앞서 기업들이 제품 조립만 중국 외 지역으로 이전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센서와 인쇄회로기판(PCB), 전력 전자장치와 같은 부품을 만드는 공장도 이전하고 있다.

엑소더스 경향이 가장 뚜렷한 분야는 미·중 간 기술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다. 미국은 지난 2년간 중국이 최첨단 칩과 장비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고, 이에 중국은 자체 칩 개발을 추진해 왔다. 중국은 세계 서버 생산의 가장 큰 허브 중 하나였지만, 미국이 2022년 10월 인공지능(AI)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이후 AI 서버는 멕시코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점점 더 많이 조립되고 있다.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와 공급업체들도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램 리서치는 지난해 미 정부의 압력으로 중국 기업을 공급망에서 제외했고, 전력 시스템 및 전기 부품을 만드는 어드밴스드 에너지 인더스트리스는 오는 7월까지 중국의 마지막 공장을 폐쇄할 예정이다.

기업들 탈출 러시, 베트남·인도에 새 공장

이 같은 탈중국 움직임에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는 2018년 1,550억 달러(약 223조 5,800억원)에서 2023년 2,300억 달러(약 331조 7,700억원)로 증가했다. 칩 제조업체 인텔, 인피니온, 마이크론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노트북 제조업체 HP는 지난 3년간 조립 기지에 태국을 추가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지난해 반도체, 컴퓨터 및 기타 전자 제품 수출액이 사상 최대인 1,370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여파로 2023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대부분의 노트북을 생산했지만, 올해는 비중이 80%로 줄어들고 베트남과 태국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중국 기업도 서구 고객들의 요청에 호응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추세다. 중국의 데이터 센터용 광 트랜시버 제조업체인 신역성통신기술은 해외 고객에 대한 공급을 늘리고 미·중 긴장의 여파를 피하기 위해 태국 공장을 확장했다. 또 노트북, 태양광 패널 및 산업 기계용 납땜 재료를 생산하는 바이탈신소재는 동남아시아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우리 기업들도 생산 거점을 동남아시아와 인도로 옮기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7월 방한한 팜민찐 베트남 총리를 만나 베트남을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는 베트남 박닌성에 18억 달러(약 2조6,000억원)를 투자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번 투자로 박닌성에 대한 삼성그룹 누적 투자액은 83억 달러(약 11조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LG디스플레이도 베트남 하이퐁 OLED 생산시설에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고, LG이노텍 역시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는 하이퐁 공장 증설을 위해 3,759억원을 투자한다고 지난해 11월 공시했다. 아울러 LG전자는 인도 증시에 현지법인 상장을 추진 중이며 세 번째 가전 공장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中 "인력·장비 못 나간다", 생산기지 이전 저지

이에 중국은 주요 기업들의 생산 기지 이전 저지에 나선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당국은 규제 기관과 지방 정부에 기술 이전 및 장비 수출을 제한하도록 구두 지시했다. 중국 정부는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첨단 제조업에 필요한 인력과 특수 장비의 해외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 생산을 강화하고 잠재적 실업을 방지하며, 미국이 새로운 무역장벽을 도입할 경우 고관세를 우려한 외국 투자자들의 대규모 중국 탈출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조치의 영향으로 애플의 주요 생산 파트너인 대만 폭스콘은 중국 직원들의 인도 파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 생산에 직접적인 차질이 발생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도 공장은 중국으로부터 필요한 특수 장비를 추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애플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 국가로 부상한 상황이다.

동남아 지역도 중국의 제한 조치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최근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에서는 중국산 장비 도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애플에 장비를 공급하는 중국 업체 두 곳의 경우 지난해부터 인도 수출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특별 감찰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모든 국가를 동등하게 대우하며 세계 각국 기업에 열려있다”며 “다른 국가의 이익을 해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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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미 정부 ‘팬데믹 지원금’이 빈곤 감소에 미친 영향

[딥파이낸셜] 미 정부 ‘팬데믹 지원금’이 빈곤 감소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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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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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기간 미국 정부 지원금 ‘3조 달러’ 규모
지원금 영향 ‘소득 빈곤’은 빠르게, ‘소비 빈곤’은 천천히 등락
지원금 저축했다 나중에 소비한 결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미국 정부는 무려 3조 달러(약 4,328조원) 규모의 지원금을 가구에 배분하며 미국 경제 정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전례 없는 정부 개입으로 아동 빈곤율을 포함한 전반적 빈곤율이 개선되는 가운데 소득 빈곤(income poverty)과 소비 빈곤(consumption poverty) 간 차이가 목격되기도 했다. 정책이 시행된 2021년 소득 빈곤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소비 빈곤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감소한 것이다. 또한 2022년 지원 정책의 종료와 함께 소득 빈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소비 빈곤은 팬데믹 이전 수준 이하를 유지했다. 모두 저축과 대출의 영향이었다.

사진=CEPR

미국, 팬데믹 기간 가구 지원금 ‘3조 달러’

팬데믹이 미친 광범위한 경제적 차질은 정부의 즉각적인 대규모 정책 대응을 불렀는데 이 중 경제 영향 지원금(Economic Impact Payments, 정부의 일회성 현금 지원, EIP), 확장적 실업 급여(expanded unemployment insurance, 실업 급여 대상을 일시적으로 확대), 아동 세액공제 확대(expanded Child Tax Credit, 2021년 공제액을 일시적으로 확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팬데믹 시기 해당 정책들이 미친 경제적 영향을 살펴보려면 두 가지 빈곤 지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가처분 소득 빈곤(disposable income poverty)은 세후 소득과 함께 식료품 보조, 주거 지원 등 비현금성 혜택을 포함한 실질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빈곤 정도를 평가한다. 한편 소비 빈곤은 상품과 서비스 구매 및 주택, 자동차 등 내구재 가치를 포함한 소비 측면의 지표다.

정부 지원과 함께 ‘소득 빈곤’은 빠르게, ‘소비 빈곤’은 천천히 감소

팬데믹 전후인 2015~2022년 기간 두 가지 지표의 움직임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는데, 코로나19 이전까지 소득 빈곤과 소비 빈곤은 나란히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2020년 팬데믹 확대 후 급격히 줄어든 가처분 소득 빈곤에 비해 소비 빈곤은 완만한 하락세를 기록해 두 지표 간 차이가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2021년까지 ‘아동 가처분 소득 빈곤’(Disposable income poverty for children)은 41% 감소했다 2022년 지원 프로그램이 종료되자마자 다시 85% 상승했다. 하지만 소비 빈곤은 2021년 5% 감소를 기록한 것에 이어 2022년에도 23% 감소하는 매우 다른 패턴을 보였다.

아동 소비 빈곤율 및 소득 빈곤율 추이(2015~2022년)
주: 연도(X축), 빈곤율(2015년 대비 변화율, %)(Y축), 공식 소득 빈곤(세액 공제 및 일부 지원금 누락, 청색), 가처분 소득 빈곤(노랑), 소비 빈곤(녹색), *공식 소득 빈곤은 세액 공제 및 지원금 누락으로 팬데믹 이후 상승/출처=CEPR

두 빈곤 지표 간 차이는 대부분 가구 저축과 대출로 설명할 수 있다. 지원금과 실업급여, 아동 세액공제 혜택을 복수로 받는 가구들은 소득의 일부를 저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데이터를 봐도 저소득 가구의 2020~2021년 사이 자산 가치는 경제 영향 지원금이 지급될 때마다 급격한 상승을 보인다. 이러한 저축액이 이후 지원 프로그램이 종료된 소득 감소 시기에 가구들이 소비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저소득 가구의 자산 가치 추이(총소비가 빈곤선 수준의 50%~150% 사이인 가구 중 자산 가치 순위 상위 75% 대상)
주: 기간(분기)(X축), 자산 가치(달러)(2015년 1분기 대비 변화량, Y축), *빈곤선 이하 및 다소 상회 수준 저소득 가구 중 상위 75%의 자산 가치 수준을 나타냄/출처=CEPR

소비 빈곤, ‘저축 효과’로 지원 중단 후에도 지속 감소

실제로 앞서 언급한 세 개의 소득 지원 프로그램들이 아동 빈곤 감소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2021년의 경우 ‘아동 세액공제 확대’는 확대 이전 세액공제와 비교해 아동 빈곤을 1%P 더 줄이는 효과를 발휘했다. 또한 경제 영향 지원금은 3.1%P의 감소 효과를 기록해 세 개 프로그램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보였다. 확장적 실업 급여 역시 1.2%P로 나쁘지 않았다.

2022년 지원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나타난 영향도 정확히 대칭적이다. 경제 영향 지원금 만료가 소득 빈곤 증가에 가장 크게 작용했고 아동 세액공제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며 미세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소비 기반 빈곤 측정치들은 이때까지도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는 사실로 팬데믹 시기 서민들의 경제 수준 유지에 정부 정책과 저축이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팬데믹 시기 소득 지원 프로그램이 아동 빈곤 감소에 미친 영향
주: 아동 세액공제 확대, 경제 영향 지원금, 확장적 실업 급여(좌측부터), 빈곤 감소율(%)(Y축)/출처=CEPR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지원 효과 단기에 그쳐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저소득 가구는 지속되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재정적 궁핍과 식량난을 겪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전반적으로 개선된 경제 상황에도 더 큰 어려움에 처한 가구들의 존재는 팬데믹 시기 정책이 당장의 빈곤 완화에 도움을 줬지만 장기적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향후 정부 지원 정책 설계에서는 단기 구제와 지속 가능한 경제적 지원이 균형을 이룰 방안이 고민돼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 지원 규모를 정확히 산정할 수 있는 조사 방법과 지표의 개발도 시급한 과제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 통계는 오랜 기간 비판을 받아왔지만 팬데믹 기간에는 더욱 큰 한계를 드러냈다. 공식 빈곤 통계를 제공하는 인구조사국의 현재 인구 조사(Current Population Survey, CPS)가 집계한 2020년 실업 급여 지급액이 실제 지급액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3,600억 달러(약 519조원)를 누락한 결과다. 저소득 가구의 빈곤율과 복지 지출의 효과성을 판단하기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원문의 저자는 브루스 마이어(Bruce Meyer)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해리스 공공정책대학원(Harris School Of Public Policy)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Poverty during the pandemic and the role of government transfer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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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이자 버거운 기업 ‘수두룩’ 미국·한국 닮은꼴, 미국은 경기 둔화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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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대출 연체액 40조원 상회
금리 인하 가능성↓, 상황 악화 우려
기업대출 비중 늘리는 은행권 ‘비상’

미국 기업들의 대출 연체율이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이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 탓에 차입금 상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장의 소비심리까지 위축되면서 기업의 현금흐름 악화를 가속하고 있다. 한국 또한 이 같은 흐름을 뒤쫓으며 경기 둔화의 사이클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경제 불확실성 속 기업 현금흐름 악화

17일(현지시각) 금융정보업체 뱅크레그데이터(BankRegData)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기업의 대출 연체 금액은 280억 달러(약 40조4,000억원)를 넘어서면서 1년 전과 비교해 54억 달러(약 7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7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뱅크레그데이터는 “대출 연체액 증가에서 볼 수 있듯 기업의 현금 흐름이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소비자의 지출 감소나 비용 증가에 그 원인이 있는 만큼 미국 경기 전반의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다.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2개월간 미국 레버리지론 시장의 채무불이행률은 7.2%로 2020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레버리지론은 복수의 금융회사가 기업에 공통의 조건으로 자금을 대여하는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의 일종으로, 변동금리를 적용하는 게 특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차입 비용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급증했다는 게 무디스의 설명이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은 채권시장 대신 대출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짚으며 “하이일드채권(무디스 기준 Ba1 이하 저신용 회사 채권) 시장의 채무불이행 비율보다 레버리지론 시장의 불이행률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둔화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식료품 가격 급등 영향으로 3%를 기록하며 하락세가 끊겼다. 이에 따라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노동 시장 경색, 소비자 체감도 짙어져

여기에 지난달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또한 미국의 경기 둔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고율 관세가 미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인플레이션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소비자 물가는 일시적으로 0.5%~0.7%p 오를 것”이라면서 “올 연말에는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3%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경기 둔화의 여파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동 시장 둔화 등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급감할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의 세금 정책 연구기관 택스 파운데이션(Tax Foundation)은 트럼프 행정부가 20%의 보편 관세와 60%의 대(對)중국 관세를 부과할 경우,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전일제 일자리는 최대 110만 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가계부채 규모 및 연체율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발표한 작년 4분기 가계 연체율은 전분기 대비 0.1%p 오른 3.6%를 나타냈다. 이는 2020년 2분기 이후 4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자, 2023년 2분기(2.6%) 이후 6개 분기 연속 상승 흐름을 이어온 결과다. 연은은 “‘심각한 연체(90일 이상 연체)’로 분류된 부채를 보면, 주택담보대출은 안정세를 유지한 반면 자동차 대출과 신용카드 등에서 급증세를 나타냈다”며 “자동차 대출의 연체율은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3%를 나타냈고, 신용카드 연체율 또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7.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계기업 늘고 연체율 상승, 은행은 ‘한숨’

소비자의 지출 여력 축소에서 기업의 현금흐름 악화 및 대출상환 능력 저하로 이어지는 경기 둔화의 사이클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일하게 발생한 현상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한국과 주요 5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9.5%(2,260곳 중 440곳)로 미국(25.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한계기업은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3년 연속 ‘1’을 하회하는 기업을 말한다. 영업을 통해 거둬들인 수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장기적으로도 나란히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2016년 7.2%(163곳)에서 2024년 3분기 19.5%(440곳)로 12.3%p 증가했고, 같은 기간 미국은 9.2%에서 25.0%로 15.8%p 뛰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미국은 팬데믹 당시 대출이 크게 증가한 상태에서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면서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국도 경기 부진 장기화에 따른 판매 부진, 재고 증가로 기업 수익성이 크게 악화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월 기업대출 연체율 하락 조짐이 보이며 분위기 반전을 신호탄을 쏘기도 했으나, 중소기업의 연체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44%로 전월 말(0.52%) 대비 0.08%p 하락했다. 다만 1년 전(0.38%)과 비교하면 0.06%p상승했다.

부문별 동향에서는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모두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기업대출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이 상반된 모습을 나타냈다. 먼저 대기업대출의 연체율은 0.03%로 전월 말과 비슷했고, 1년 전(0.48%)과 비교하면 도리어 0.09%p 하락했다. 반면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62%로 전월 말(0.75%) 대비 0.13%p 하락했으나 1년 전(0.48%)과 비교하면 0.14%p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따라 기업대출에서 돌파구를 마련 중인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통상 미래 수익 전망치를 토대로 실행되는 기업대출은 유형자산을 담보로 잡는 주담대 등 가계대출보다 부실 위험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는 건전성 관리를 위해 부실 자산에 따른 빠른 상·매각 등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업의 경영 환경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건전성 제고에 한계가 있다”며 “가계대출 확대 또한 쉽지 않은 만큼 우량 자산을 발굴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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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반사이익' K-조선, 중국 경쟁사 퇴출로 FLNG 시장 지배력 강화

'미·중 갈등 반사이익' K-조선, 중국 경쟁사 퇴출로 FLNG 시장 지배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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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위슨, 美 무역제재에 FLNG 시장서 사실상 퇴출
신조 FLNG 건조기업은 韓 조선사 외 대안 없는 상황
美中 무역 갈등 심화에 韓 기업 독식 환경 조성

국내 조선업계가 미·중 무역 갈등 심화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최근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 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를 신규 수주하며 입지를 키워가고 있던 중국 조선소가 미국 제재로 발이 묶이면서다. 해양 플랜트 부문의 유일한 경쟁사가 제거된 가운데 K-조선의 독점적 입지가 더욱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美, 中 유일 FLNG 생산업체 '위슨조선소' 제재

1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최근 중국 해양 플랜트 전문 조선사인 저우산후이성해양공정유한공사(Zhoushan Wison Offshore and Marine Limited·위슨조선소)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러시아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에 발전 모듈을 제작해 공급했다는 이유다. 위슨조선소는 러시아 대규모 LNG 개발 사업인 ‘Arctic LNG-2’에 발전 모듈을 공급한 바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핵심 에너지 개발 사업이었지만, 미국의 제재 등으로 인해 지난해 10월 가동을 중단했다.

이번 제재에 따라 위슨조선소는 더 이상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위슨조선소 미국인을 비롯해 모든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또 제3국 기업이 제재 대상과 거래할 경우에도 같은 제재를 받게 된다. 위슨조선소를 포함해 위슨과 거래하는 기업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된다는 점도 추가 수주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 대상에 포함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진다”며 “대부분 국제 거래가 달러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슨조선소의 저가 수주에도 발주처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사실상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중국이 퇴출된 셈이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코랄 술(Coral Sul)'/사진=삼성중공업

중국 경쟁사 퇴출에 K-조선 '환호'

국내 조선업계에선 미국의 대중 제재로 우리나라 해양 플랜트 사업에 반등의 기회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슨조선소는 그간 삼성중공업 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FLNG를 건조하던 업체로, 지난해 8월 삼성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았던 미국 델핀(Delfin Midstream) FLNG 1호기의 시공 사업을 따내 눈길을 끌었다. 델핀은 멕시코만에서 진행 중인 LNG 프로젝트에 FLNG 4기를 설치해 연간 1,330만 톤(t)의 LNG를 생산할 계획인데, 이 중 1호기 건조를 중국 업체가 가져간 것이다. 지난해 초에는 나이지리아 FLNG 프로젝트의 사전 기본설계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위슨조선소가 퇴출됨에 따라 삼성중공업의 델핀 FLNG 2호선과 모잠비크 코랄 술 FLNG 2호기의 독점 수주 가능성이 커졌다. FLNG는 계약금액이 2조~3조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두 프로젝트의 사업 규모는 각각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 25억 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수주와 매출 인식 사이 시차를 감안하면 삼성중공업이 2016년 이후 9년 만에 매출 10조원 클럽에 다시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도 나온다.

최근 해양 플랜트 외연을 확장한 한화오션도 FLNG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오션은 올해부터 FLNG 수주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서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16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FLNG 선박을 건조해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에 인도한 바 있으나, 이후 수주 실적이 없다가 한화그룹 편입 후 해양 플랜트 분야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4월 ㈜한화건설 부문에서 풍력 사업, 글로벌 부문에서 플랜트 사업을 인수했고, 지난해 11월엔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싱가포르 해양 설비 전문 제조사 다이나맥(Dyna-Mac Holdings)을 함께 품었다. 다이나맥은 해양 플랜트 상부 구조물 전문 제작사로, FLNG와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 분야에서 건조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오션은 다이나맥 인수로 해양 플랜트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시너지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中 수주잔량·가격 경쟁력 우위, 제재 실효성 "글쎄"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중국 조선산업 제재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중국이 불공정한 정책과 관행으로 조선·해운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외국 기업에 대한 장벽 강화, 강제적인 기술 이전과 지식재산권 탈취 등 등을 통해 자국 조선업을 육성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특혜와 보조금에 힘입어 중국의 글로벌 조선 산업 점유율은 2000년 약 5%에서 2023년에는 50%를 넘기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클락슨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신조선 주문의 70%를 수주했으며, 한국 17%, 일본 5%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한때 세계 조선 시장을 장악했던 미국의 점유율은 1% 이하로 추락했다. 1980년대 300여 개에 달했던 미국의 조선소는 이제 20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무역법 301조에 따라 관세나 쿼터 등의 제재를 검토하는가 하면, 미국 노동조합은 중국산 선박에 추가 항만사용료 부과를 제안했다. 그러나 업계는 선주들이 중국산 선박을 미국 외 항로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 중국 조선소 임원은 "미국의 제재를 과도하게 우려하지 않는다"며 "특히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는 중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 산업 부활을 공언했으나,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다. 미 의회조사국은 "미국산 선박 가격이 세계 시장의 4배"라며 "중국이 연간 1,000척 이상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은 5척 미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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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대만 국적 표기 허용’에 공허한 메아리 된 “하나의 중국”

일본 정부 ‘대만 국적 표기 허용’에 공허한 메아리 된 “하나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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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적 관련 성령 5월 시행
‘잘못된 신호’ 비판 나선 중국
한·미·일 “대만 국제기구 참여 지지”

일본 정부가 오는 5월부터 대만인이 호적에서 자신의 국적을 ‘대만’으로 표기할 수 있게 허용한다. 지금까지 외국인 주민표 및 재류카드에만 대만 국적 표기를 허용했던 것과 달라진 조치다. 이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외치고 있는 중국은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존 중국 국적자도 변경 가능

1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법무성은 호적(전부사항증명서)에 기재하는 국적란을 ‘국적·지역란’으로 변경하는 호적 관련 성령(시행령)을 개정해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출신 국가명만 쓸 수 있었던 국적란을 지역명도 함께 기입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닛케이는 “사실상 대만을 공식 국적으로 인정하는 길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대만과 단교하기 전인 1964년 통달(소관기관 등에 전하는 문서)을 통해 중화민국(대만) 국적 표기를 ‘중국’으로 정했다. 당시 중국과 국교가 없었던 탓에 중국인과 대만인 모두 중국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1972년 중국과의 국교 수립 이후로도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일본인과 결혼할 때 호적 정보란에 외국인 배우자의 이름과 국적 등 개인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입양된 외국인 또한 출신 국적을 적어 내야 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새로 등록하는 대만인은 물론 기존 중국으로 등록한 대만인도 변경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 대만 내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대만인 약 800~1,000명이 일본인과 결혼한다.

중국 정부는 즉각 “수작 부리지 말라”는 강한 어조로 반발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 간담회에서 “대만은 중국 영토에서 분할이 불가능한 일부분이고 양안(중국과 대만) 동포는 모두 중국인”이라면서 “일본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고, 대만 문제에서 모순되거나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대만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건국 이래 줄곧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대만을 자국의 일개 지방으로 간주하고, 이를 부정하는 국가와는 국교를 맺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만 역시 한때 중국이 대륙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양국의 국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자국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주장을 거둬들인 상태다.

“韓 사회 내 화교 다중정체성 인정해야”

한국은 일본보다 앞서 대만인들의 국적을 인정했다. 해방 이후 민적법에 의거해 성씨가 없던 화교들에게 한국 성씨를 부여하면서 외국인으로 등록한 데 이어 그들과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혼혈아에게도 화교로서 대만 국적을 부여한 것이다. 이후 1992년 8월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대만과 단교를 선언했지만, 한국에 정착했거나 정착하려는 대만인들의 국적을 중국으로 강제하는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다만 이 같은 조치에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3·4세대 젊은 화교들은 대만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공공연히 자행됐던 차별과 배척은 대부분 개선됐으나, 한국에서 일상을 영위하며 마주하는 장벽이 젊은 화교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로 다가온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금융거래 등 이제는 일상화한 서비스조차 누리기 어렵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대학생 화교 A씨는 “한국 국적자만 가입이 가능해 친구들은 다 사용하는 간편송금 앱도 이용하지 못한다”며 “요즘엔 다들 모임통장을 만들어 돈을 주고받는데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 매번 돈을 따로 보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화교들은 한국 귀화까지 고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 다른 대학생 화교 B씨 “한국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면 ‘한국 국적자’가 대상인 경우가 주를 이룬다”며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아예 채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중국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이마저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으로 귀화하려고 해도 최소 2년 이상 걸려 시간과 비용에서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다행인 점은 최근 들어 이 같은 차별 정책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만 국적자들의 ‘다중정체성’이 그들의 선택이 아닌, 환경에 의해 주어진 만큼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김윤태 동덕여대 교수는 “화교들은 생존을 위해 초국가적 활동 공간을 구축하고, 자신들이 가진 정체성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며 “그들이 한국과 대만 양국관계의 상생적 발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귀중한 사회적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 전경/사진=pixels

美, 중국 견제할수록 대만 지지 움직임도 활발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대만 지지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양상이다. 미 국무부는 최근 홈페이지의 ‘대만과의 관계에 관한 팩트시트’란 제목의 문서를 업데이트하면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지웠다. 그러면서 “어느 쪽에서든 현 상황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고 짚으며 “적절한 국제기구의 가입을 포함한 대만의 의미 있는 참여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달 10~12일(이하 현지시각) 미 해군 구축함 존슨함과 해양측량선 보디치호가 대만해협을 통과한 것이다. 미 군함이 대만해협을 지난 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지지 의사를 공식화한 바 있다. 그는 공동 발표문에서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힘과 강압에 의해 일방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만 지지 선언에 한국과 일본도 공조하고 나섰다. 15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한·미·일 외교장관은 공동성명에 “적절한 국제기구에서 대만의 의미 있는 참여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두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의 대만 지지 행보에 일본이 발 빠르게 호응하고, 한국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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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임대인에 떼인 보증금 1.6조 세금으로 메꿨다, 모럴 해저드 부추기는 임대보증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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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액, 21년 409억→24년 1조6,537억
3년 새 임대보증 사고 규모도 40배 증가
전세사기 여파에 비아파트 월세 거래 큰폭 증가

지난해 주택 등록임대사업자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발생한 임대보증 사고 규모가 1조6,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새 임대보증 사고의 규모는 40배 증가했다.

임대보증 사고액 1.6조, 사고건수 8,105건

18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임대보증금 보증 사고액은 1조6,537억원으로 집계됐다. 사고 건수는 8,105건이다. 개인 임대보증 사고액은 1조3,229억원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고, 법인 임대보증 사고액은 3,308억원이었다. 지난해 사고액은 전년(1조4,389억원)보다 14.9%(2,148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임대보증 발급 규모는 34만3,786가구, 보증 금액은 42조8,676억원이다. 임대보증은 임대사업자가 임대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임차인에게 임대보증금의 반환을 책임지는 HUG의 보증 상품이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 세입자가 자신의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 직접 가입하는 상품이면, 임대보증은 임대사업자가 가입하는 것이다. 지난 2020년 8월부터 민간임대주택특별법에 따라 모든 등록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임대보증에 가입해 보증금 보호 장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임대보증에 가입하지 않은 임대사업자는 보증금의 최대 10%를 과태료로 내야 한다.

임대보증 사고로 HUG가 임대사업자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돈인 대위변제액은 지난해 1조6,093억원으로 전년(1조521억원)보다 53% 증가했다. 보증에 가입한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발생한 사고액은 2021년까지 연간 409억원(524가구)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 831억원(902가구)으로 증가하더니 2023년부터는 1조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보증과 임대보증 사고액을 합치면 6조1,433억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임대보증, '도덕적 해이' 논란

지난 2017년 국토교통부는 '보증금 3억 전세세입자, 연 38만원으로 보증금 전액 보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국토부는 "제도개선을 통해 역전세난이나 깡통전세로부터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로 주택시장 안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해당 제도는 도덕적 해이 비판에 직면해 있다. 통상적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거의 없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 계약을 이행하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등이 국가에서 보장하는 HUG 보증보험 등을 미끼로 계약에 나서게 부추겼다.

실제 중개업자와 짜고 대출을 받아 튀는 신종 전세사기가 등장했던 시기는 2013년으로 전세금 반환보증이 처음 시행되던 때다. 2013년 당시 정부는 전셋값 폭등으로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한다며 HUG 대출보증과 전세보증보험을 대폭 확대했다. HUG 전세보증보험은 전세가율 100% 주택까지 가입을 허용했다. 전셋값이 집값에 맞먹어도 HUG가 보증한 것이다.

결국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한 부담은 HUG가 떠안았다. HUG는 2022년 1,000억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13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의 보증금 대위변제액이 늘어난 탓이다. HUG는 주택도시기금법에 근거해 정부의 대주주 지위가 법으로 보장(공사 지분 50% 이상을 정부가 출자)돼 있으며 유사시 손실 보전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유사시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는 의미로, HUG의 부실은 곧 세금 증가를 뜻한다.

전월세 거래 10건 중 6건은 월세

한편 전세사기 여파는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토부의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1~12월) 서울 주택 전월세 거래(82만585건) 중 월세(보증부월세, 반전세 포함) 비중은 60.3%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53.3%, 2024년 56.2%에 이어 3년 연속 높아진 것이다.

유형별로는 지난해 아파트의 월세 거래 비중이 43.2%, 비아파트의 월세 거래 비중이 69.0%를 각각 기록했다. 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직전 연도(42.3%)보다는 높았으나 2022년(44.5%)에 견줘선 낮아지는 등 소폭의 등락이 있었다. 이에 반해 비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2022년(57.4%), 2023년(63.7)에 이어 3년 연속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는 전세사기와 역전세 등 여파로 다세대·연립을 중심으로 전세 기피 현상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한국부동산원이 확정일자를 받은 전월세 계약 건을 집계한 수치로, 누락분이 존재하는 탓에 매매 거래량과는 달리 국가승인 통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전월세 거래 중 월세의 비중은 최근 5년간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2020년 40.5%였던 전국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 비중은 2021년 43.5%를 기록한 뒤 2022년 52.0%로 절반을 넘어섰고 2023년 54.9%, 지난해 57.6%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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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아시아판 NATO·전술핵 공유 제안, 집단안보 체제 실현 가능한가?

정몽준, 아시아판 NATO·전술핵 공유 제안, 집단안보 체제 실현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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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정몽준 명예이사장, SAIS 기금 기탁식에서 화두 던져
"북·중·러 군사적 모험주의 대응해 협력 강화 필요"
"유럽에 전술핵 배치했듯이 한반도에 재배치 고려해야"
지난 17일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이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대학원(SAIS)에서 열린 '정몽준 안보 부문 석좌교수직 기금 기탁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아산정책연구원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이 북한·중국·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가칭 '인도·태평앙조약기구(IPTO)'의 창설을 제안했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아시아판 NATO'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며 미·일 동맹의 재편과 전술핵 공유를 주장하는 등 최근 아시아의 집단안보 체제 구축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안보의식을 공유해 온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 간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산업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집단안보 체제가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와 동맹국들, 북·중·러에 강력한 협력 의지 보여야"

17일(현지시각) 정 명예이사장은 미국 워싱턴 DC의 존스홉킨스대학 국제학대학원(SAIS)에서 열린 '정몽준 안보 부문 석좌교수직 기금 기탁식'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국들이 북한·중국·러시아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아시아판 NATO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3년 이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 명예이사장은 석좌교수직 기금으로 750만 달러(약 108억원)를 기탁했다. 해당 기금은 세계 안보 문제 연구와 신진 학자 양성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서 정 명예이사장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전문가와 지도자들이 아시아의 집단 안보 체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아시아판 NATO의 명칭으로 IPTO를 제안했다. 이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체제를 중심축(Hub)과 바큇살(Spoke)의 관계에 비유하며 구체적인 참여국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필리핀·태국 등 바큇살에 해당하는 동맹국 간의 협력(spoke to spoke)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아울러 인도·인도네시아·싱가포르·베트남과 같은 중요한 파트너들과의 협력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명예이사장은 한국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지속되는 기적(miracle in progress)'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중국은 지난 10년간 일본·필리핀·호주·캐나다에 대해 경제·외교적 강압을 행사해 왔다"며 "한국도 지난 2016년 북핵·미사일 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체계(SAAD)를 배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은 한국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군용기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침투시키는 등 군사적 위협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전술핵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이사장은 "미국이 냉전 종식과 함께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지역에서 전술핵 무기를 철수한 반면, 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유럽에는 100여 개의 전술핵 무기를 배치했다"며 "안보 위협이 더 심각한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술핵의 일부를 한국 기지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5월 정 이사장은 '아산플래넘2024' 환영사에서도 "한국도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기반 마련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日 이시바도 평화헌법 개정, 대등한 미·일 동맹 등 제안

아시아판 NATO에 대한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제102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가 총재 당선 이틀 전인 지난해 9월 25일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일본 외교 정책의 장래'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시아판 NATO의 창설을 주장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UN 집단안보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아시아의 내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중국·대만과 등치시키면서 중국, 나아가 북한과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아시아판 집단안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해당 기고문에서 쿼드(Quad)·오커스(AUKUS) 등 미국 주도의 소다자(小多者) 체제는 물론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를 거론하면서 일본이 캐나다·호주·필리핀·인도·프랑스·영국과 유사 동맹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관련한 소다자 협력 체제를 모두를 묶어 아시아판 NATO를 창설할 수 있다는 게 이시바 총리의 구상이다. 그러면서 동맹의 핵심 축인 일본은 제도적으로 새로운 안보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보기본법 제정과 함께 일본의 전력 보유를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또 다른 한 축인 미국은 전술핵 무기를 역내에 반입해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들과 이를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미·일 동맹을 대등한 동맹 관계로 바꾸자고도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을 지키는 의무'를 지는 대신 일본은 미군에 '기지 제공 의무'를 다하는 게 미·일 안보조약의 기본 구조였지만, 이제는 이런 비대칭을 고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미·영 동맹에 버금가는 대등한 관계로 미·일 동맹을 강화해 지역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며 "미·일 안보조약을 '보통 국가' 간 조약으로 개정할 조건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또 그는 주일미군 지위 관련 협정인 미·일 지위협정을 개정해 자위대를 미군 핵심 기지 중 한 곳인 괌에 주둔시켜 억지력 강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면서 일본이 독자적인 군사전략권을 확보하는 '군사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美 중심 양자동맹·소다자주의가 현실적 대안이란 지적도

다만 이시바 총리의 제안을 두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NATO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의 생명력은 통일된 위협 인식과 공통의 안보 이해관계에서 나온다. NATO의 설립 목적 자체가 소련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는 데 있었던 만큼 소련이 '공통의 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고 회원국 하나가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면 다른 모든 회원국도 자국이 침략당한 것으로 간주해 공동으로 전쟁에 나서는 데 반대하는 나라가 없었다. 또한 유럽은 안보 문제에 대한 다자적 협의와 평화적 위기 해결의 전통이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부터 거의 4세기에 걸쳐 축적돼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상황은 유럽과 다르다. 위협 인식과 안보 이해관계가 나라마다 상이해 집단안보 체제 구축의 정치적 기반이 결여돼 있고 다자 안보 협력의 역사도 일천하다. 예를 들어 중국이 일본이나 필리핀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한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한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이나 필리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더욱이 아시아판 NATO가 사실상 중국을 염두에 둔 구상임을 전제로 할 때 이시바 총리가 주장하는 평화헌법에 따른 상호 방위는 인정되기 어렵다. 또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가 많다는 점도 집단안보의 한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정학적 구조와 정치적 기반을 고려할 때 결국 동아시아의 안보 문제는 미국과의 양자 동맹 체제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고, 양자 동맹을 연결하는 소다자주의로 이를 보완해 나가는 것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동아시아 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 역시 현재처럼 소지역별·사안별로 분화된 동맹 시스템하에서 융통성 있게 대응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체제가 핵으로 무장한 북한·중국·러시아 3자 연대에 대항할 실질적 능력을 갖춘 유일한 소다자적 틀이지만 현 단계에서 이를 동아시아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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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車 관세’ 압박, 현대차 현지생산 확대 명분되나

트럼프의 '車 관세’ 압박, 현대차 현지생산 확대 명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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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4월 2일 수입차 관세 부과"
미국 내 현대차그룹 견제 분위기에 '긴장'
현지 생산 늘리고 미국 기업 협력 활로
수출 대기 중인 자동차들/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최다 판매 시장인 미국을 겨냥해 현지화 전략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자동차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에 위치한 글로벌 생산 차종을 늘리고 아마존에서 온라인으로 차량을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현지 판매 전략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고관세 우려 현실로, 관세 부과 땐 연간 영업익 20% 감소

18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가진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수입차 관세 도입 시기를 묻는 말에 “4월 2일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에서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조지아에 새로 조성한 친환경차 전용 생산 시설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도 작년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에서 대량 판매되는 모델 중 대부분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실행하면, 현대차그룹 역시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 총 225만8,026대를 수출했는데, 이 중 45%인 101만5,005대를 미국으로 보냈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공장에서 수출용으로 생산한 차량 2대 중 1대는 미국으로 간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대차와 기아는 작년 미국에서 총 170만8,293대(현대차 91만1,805대·기아 79만6,488대)를 팔았고, 미국에서 생산한 차는 총 71만5,732대(현대차 36만1,632대·기아 35만4,100대)였다. 지난해 현대차가 미국에서 판매한 차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Sport Utility Vehicle)인 투싼으로 총 20만6,126대의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는 13만6,698대, 중형 SUV 싼타페는 11만9,010대로 각각 2, 3위에 올랐다. 기아는 16만1,917대가 팔린 중형 SUV 스포티지가 최다 판매 모델이었다. 준중형 세단 K3와 후속 모델인 K4가 합산 판매량 13만9,778대로 뒤를 이었고, 대형 SUV인 텔루라이드는 11만5,504대가 판매됐다. 이런 가운데 관세 20%가 부과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은 최대 20% 위축될 것으로 계산된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차량을 만들고 있다/사진=현대차

메타플랜트·조지아·앨리배마 등 현지 생산 차종 및 물량 확대

이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의 생산을 더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국 생산량을 확대해 관세 부과의 위험을 일부 피하겠다는 복안이다. 먼저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는 올해 하반기까지 하이브리드차 혼류 생산체제를 갖춰 연간 생산(연산) 규모를 기존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33만 대)과 기아 조지아 공장(35만 대)의 연간 생산량까지 합치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생산량은 총 118만 대로 예상된다.

생산량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보유한 앨라배마, 기아의 조지아 공장에서도 생산 모델 확장도 고심 중이다. 현재 현대차·기아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은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투싼, 픽업트럭 싼타크루즈, 싼타페, 싼타페 하이브리드, 제네시스 GV70과 GV70 전동화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신규 판매 채널도 확보한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은 지난달 7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아마존 내 오토스 코너에서 자동차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지난 2023년 11월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아마존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을 발표하고 아마존을 통한 차량 판매 계획을 처음 밝혔고 1년여가 지난 올해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현대차는 자사 제품이 아마존 오토스에서 구매할 수 있는 '최초의 브랜드이자 현재 유일한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오토스는 미국 전역에 있는 소비자가 차량을 선택하고 금융 서비스를 받아 결제한 후 원하는 곳의 현대차 딜러 매장에서 차량 인도까지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현대차는 2020년대 말까지 이런 온라인 플랫폼 매출이 미국 전체 판매의 30%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생산 늘리려면 노조 동의 필요

다만 현지 생산을 늘리기 위해선 노동조합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 현대차는 지난 1999년 체결한 단체협약에 ‘해외 공장으로 차종을 이관하거나, 국내에서 생산 중인 동일 차종을 해외에서 생산할 경우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기아 역시 비슷한 협약을 시행 중이다. 현대차·기아 노조가 속해 있는 금속노조는 지난 2010년 해외 공장의 생산 비율을 제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현대차 노조는 2015년과 2019년에도 생산량 노사 합의, 생산 비율제 도입 등을 사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차·기아 노조에 있어 생산 물량의 해외 이전은 예민한 문제다. 최근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과 신차 부족으로 국내 판매가 부진한 상황이라, 인기 모델의 생산까지 줄면 수당과 성과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노사가 인기 모델의 미국 현지 생산에 합의해도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해 4월 2일부터 관세가 부과되면 당분간 타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파업 등으로 회사의 파격적인 양보안을 이끌어 냈던 이전과 달리, 더 이상 노조의 강경한 투쟁은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공장 생산 차질로 인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그간 현대차는 핵심 거점별 전략 차종의 현지 생산 기반을 꾸준하게 다져왔다. 지난해 기준 미국과 인도, 중국, 튀르키예, 체코, 브라질,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8곳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250만 대에 육박한다. 또한 이들 공장에서는 해외 시장 인기가 많은 싼타페, 투싼 등 현지 전략형 모델을 생산한다.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의 수만 해도 10종이 넘으며, 중국은 생산 시설이 남아돌고 있고 인도 법인(HMI)도 지난해 상반기까지 32만 대를 생산해 현지에서 팔았다. 한국 공장 노조가 파업을 하고 생산을 멈춘다고 해도 예전과 다르게 해외 판매가 멈출 일이 사라진 셈이다. 해외 공장 네트워크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절대적 사업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에 별 타격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노조와 협상 경험이 많은 한 관계자는 "국내 사업 비중이 60% 수준이었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회사가 노조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노조가 파업을 벌이며 강경한 투쟁을 한다고 해도 무리한 요구는 걸러낼 수 있게 입장이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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