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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기 무섭다" 식품·외식 물가 급상승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 목표치에 인접
물가 안정 마지막 열쇠는 에너지 가격?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원재료비 상승세를 견디지 못한 식품·외식업계가 제품·메뉴 가격을 줄줄이 올리면서다. 다만 소비자물가지수는 2%대 상승률을 유지하며 여전히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식품류 가격 줄줄이 인상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오는 17일 라면과 스낵 브랜드 56개 중 17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한다. 주요 제품 가격 인상률은 출고 가격 기준 신라면 5.3%, 너구리 4.4%, 안성탕면 5.4%, 짜파게티 8.3%, 새우깡 6.7%, 쫄병스낵 8.5% 등이다. 농심 관계자는 “그동안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원가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며 인상 압박을 견뎌 왔지만, 원재료비와 환율이 상승함에 따라 가격 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경영 여건이 더 악화하기 전에 시급하게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농심 외에도 많은 식품 기업들이 원재료비와 환율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는 최근 빵과 케이크 110여 종 가격을 약 5% 인상했다. 데일리우유식빵과 단팥빵은 각각 3,600원, 1,900원으로 100원씩 올랐고, 부드러운 고구마라떼 케이크는 3만원에서 3만1,000원으로 인상됐다. 지난달에는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와 던킨이 제품 가격을 약 6%씩 인상했으며, 삼립도 포켓몬빵과 보름달 등 주요 제품 가격을 100원씩 올렸다.
롯데아사히주류 역시 맥주 가격을 최대 20% 올렸다. 편의점 기준 아사히 수퍼드라이 캔제품(500㎖)은 4,900원으로 400원 올랐고, 병 제품(640㎖)은 5,400원으로 900원 인상됐다. 빙그레는 더위사냥, 붕어싸만코 등 아이스크림과 커피 음료 일부 제품 가격을 200~ 300원 높여 잡았다. 웅진식품도 하늘보리(500㎖) 등 차 음료 제품 가격을 10%, 자연은 시리즈와 초록매실(500㎖) 가격을 9.3% 인상했다.
한은 "2%대 상승률 유지될 것"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확대되고 있지만, 핵심 물가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아직 한국은행의 목표치(2%) 근처에서 머물고 있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08(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2.0% 올랐다. 1월(2.2%)에 이어 2개월 연속 2%대 상승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초 3%대에서 점차 하락하기 시작해 하반기에는 9월(1.6%), 10월(1.3%), 11월(1.5%), 12월(1.9%) 4개월 연속 1%대를 기록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미국 신행정부 출범의 영향으로 환율이 급등하며 2%대로 올랐다.
한은은 앞으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6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높은 환율 수준 등 상방 요인과 낮은 수요 압력 등 하방 요인이 엇갈리고 있다"며 "(물가 상승률이) 2월 전망 경로대로 목표 수준 근방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언했다. 한은은 지난달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9%로 제시한 바 있다.
변수는 '석유류 물가'
전문가들 역시 유사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그간 억눌려 있던 상품 가격이 지난 1~2월 사이 치솟으면서 물가 상승 사이클이 막바지 국면에 들어섰다"며 "상승 흐름이 조만간 끝나고, 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목표치인 2% 근처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물가가 완전히 안정되려면 에너지 가격이 하락해야 한다"며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환율 리스크 등이 에너지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석유류 물가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끌어 올리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월 석유류 물가는 전월 대비 6.3% 올랐다. 1월(7.3%) 대비 상승폭이 축소됐지만 여전히 가파른 상승세다. 특히 휘발유(7.2%) 가격이 눈에 띄게 치솟았으며, 경유는 5.3% 상승했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 이두원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국제유가 자체는 (작년 동월 대비로) 큰 변동이 없었다”며 “국제유가보다는 환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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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전국 월세 계약 17만9,656건
임대차 계약의 63.2%, 최고치
전국 월세지수 25개월 연속 상승
지난달 전국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계약 비율이 또다시 역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택 공급 가뭄과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 비아파트 시장에서 논란이 된 전세사기 문제 등으로 전세 수요가 월세로 돌아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국 월세 비중 63% ‘사상 최대’
7일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확정일자를 받은 전국 주거시설 28만4,454건 중 월세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건수는 17만9,656건(63.2%)으로, 이는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0년 7월 이후 월별 기준으로 역대 최대 비율이다. 이 통계에는 아파트·단독·다가구·연립·다세대·오피스텔 등이 포함된다.
월세 비율은 매달 빠르게 늘고 있다. 작년 10월 56.8%였던 월세 비율은 11월 58.3%, 12월 60.6%를 거쳐 올해 2월 63.2%를 기록했다. 임차인 10명 중 6명은 매달 집주인에게 월세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의 월세 비율은 전국 평균(63.2%)보다 높은 67.1%로 조사됐고, 경기도와 인천은 각각 56.2%, 52.4%로 임대차 계약의 절반 가량이 월세였다. 지방의 경우 수도권보다 전셋값 감소 속도가 더 빨랐다. 특히 대전(72.4%), 부산(71.4%), 대구(67.3%) 등의 월세 비율인 70%에 육박하면서 임대차 시장 불안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 포비아에 월세가격 폭등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는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월세가격도 치솟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빌라·오피스텔 월세 가격은 전국 기준으로 직전 분기 대비 0.40% 상승했다. 가장 수요가 많은 서울의 경우 0.35% 오르며 12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인천, 경기 지역도 각각 0.98%, 0.49% 상승해 수도권 전체 오피스텔 월세 가격은 0.51% 올랐다.
이에 주택 월세가격지수도 오름세다. 지난달 서울 연립·다세대 월세가격지수는 104.93으로 2023년 2월부터 25개월 연속 상승세이자,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1월 이래 역대 최고치다. 특히 빌라 월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70% 상승하며 아파트 월세지수(1.32%)를 넘어섰다.
전세대출 보증강화 시행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이 월세로 재편되는 원인으로 전세 보증사고 비율이 높은 빌라와 단독주택 전세 기피 현상을 꼽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은 4조4,896억원으로 전년(4조3,347억원)보다 3.6% 증가했다. 보증사고 규모도 2021년 5,790억원, 2022년 1조1,726억원에서 2023년부터는 4조원대로 급격히 늘었다.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임차인 증가도 또 다른 원인을 지목된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은 4.16%(KB부동산)로, 이는 지난해 9월(4.09%) 이후 5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월세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여기에 정부의 대출 규제도 전세 수요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HUG는 올해 상반기 중 전세대출 시 필요한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대출금의 100%에서 90%로 낮출 예정이며, 하반기부터는 세입자의 상환 능력에 따라 보증 한도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전세대출 보증은 세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대신 상환하는 보증 상품이다. HUG에서 보증 한도를 낮추면 목돈이 부족해 대출을 많이 받아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HUG에서 세입자의 소득이나 기존 대출 여부를 따지지 않고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보증을 해줬다. 그런데 이런 보증 제도가 전세대출을 늘려 전세가‧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가계 부채의 뇌관을 키운다는 지적이 일자 제도를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간 세입자는 전세 5억원짜리 수도권 아파트를 구하며 전세 금액의 80%인 4억원을 대출받고 HUG로부터 4억원의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증 한도가 대출액의 100%에서 90%로 낮아지면서 HUG 보증을 통한 대출 가능 액수가 3억6,00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하반기부터는 세입자의 소득과 대출 등을 평가해 소득 대비 기존 대출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보증 한도가 더 줄어들 수 있다. 과거 1억원이 있으면 대출을 통해 5억원짜리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5억원짜리 집을 구하기 위해 최소 1억4,000만원 이상이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 심사를 더욱 까다롭게 해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대출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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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50년 만에 찾아온 “엔저 압박”
무역 적자, 재정 적자 부담 가중
관광 산업 호황, 글로벌 기업 수익성 증가는 “호재”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일본 엔화 가치가 최근 50년 내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며 추락하는 가운데 일본 경제가 느끼는 압박도 크다. 엔화 가치 절하가 수입품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및 재정 압박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 산업 호황과 일본 국적 글로벌 기업들의 수익성 증대와 같은 긍정적 요소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첨단 산업과 다변화한 수출 시장 등도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동아시아포럼
일본 엔화 가치, 54년 만에 “최저”
일본 엔화의 ‘실질 실효 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 교역 상대국 화폐 대비 구매력을 표시한 환율)이 최근 54년 이래 최저를 기록하며 일본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수입 물가와 채무 상환 비용 상승에 따른 경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강력한 글로벌 시장 경쟁력과 탄탄한 금융 시스템이 부작용을 흡수하는 데 그나마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은행(Bank of Japan)은 신중한 긴축 통화정책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작년 7월 무담보 익일물 콜 금리(uncollateralized overnight call rate, 단기 금리 주요 지표)를 0.25%로 올려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나더니 올해 1월에는 다시 0.5%까지 올렸다. 해당 조치로 엔화 가치는 6% 절상됐지만 주식 시장이 12%나 폭락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일본 은행은 추가 긴축을 위해, 임금 상승으로 소비와 수요를 진작시켜 물가를 올리는 ‘좋은 인플레이션’(good inflation)을 발생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실질 가처분소득은 눈에 띄게 오르지 않았고 실질 소비 역시 둔화 상태에 머물고 있다.
미국 연준(Federal Reserve)이 관세 및 재정 적자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것처럼 일본 역시 엔화가 통제 불가능 수준으로 절하되는 것을 막으려면 지속적인 긴축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와 재정 정책에 주는 압박은 더욱 커진다.
엔저로 재정 적자, 무역 적자 “동시 확대”
엔화 절하는 수입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올려 작년 일본 가구당 평균 생활비 부담을 9만 엔 (약 87만원) 정도 늘린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시바 시게루(Shigeru Ishiba) 일본 총리는 공공비용 보조금과 저소득 가구에 대한 현금 지원 등의 경기 부양책을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재정 비용을 증가시켜 이미 높은 규모의 재정 적자를 더욱 악화시켰다.
일본 은행의 금리 인상 역시 국채 상환 비용을 증가시켰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4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며 국가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채무 상환 비용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4%를 넘을 전망이다. 여기에 이시바 총리의 부양책과 국방 및 사회보장 지출 증가는 올해 예상되던 기본 재정 흑자(primary budget surplus, 이자 지급액을 제외한 재정 수지 흑자)를 GDP 대비 0.7% 규모의 적자로 반전시켰다. 국채 규모가 GDP의 2.5배를 넘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더 이상의 채무 상환 비용을 발생시키지 말고 해당 예산으로 기업 활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식료품 및 에너지 수입 가격을 올려 무역 적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이 엔화 강세 기간 많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한 것도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가가 가져다줄 이익을 상쇄해 버렸다.
글로벌 기업 수익, 관광 산업 호황 등 “엔저 호재도”
하지만 엔화 약세의 장점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무역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관광 산업은 해외 관광객이 47%나 늘어날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한편 토요타(Toyota)와 고마쓰(Komatsu, 일본의 글로벌 중장비 제조업체) 등 대부분의 수익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기업들은 엔화 표시 수익이 눈에 띄게 늘었다. 덕분에 닛케이 225 지수(Nikkei 225 stock index)는 연간 19%나 올라 역사상 가장 높은 주가로 작년을 마감하기도 했다. 해외 수익의 국내 송금과 관광 산업 호황은 무역 적자의 상당 부분을 보완하며 작년 GDP의 4%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를 창출해 엔화 약세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을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엔화 강세 시절 어려움을 겪은 일본 제조업 분야는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에너지 수입국이지만 에너지 비용 상승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일부 기업의 주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다수의 일본 기업이 에너지 가격 상승 시 수요가 늘어나는 고품질 니치 제품(high-quality niche products)에 특화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기업들은 전자 및 의료 장비 산업에서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집적 회로 제조에 사용) 및 이미지 센서는 물론 반도체 산업의 필수 부품 영역에서 강력한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한국, 미국, 중국, 유럽, 동남아시아, 대만 등에 걸친 수출 시장의 다변화도 일본 경제를 뒷받침하는 중요 요인이다. 시장 다변화는 일본 기업들을 중국 포함 특정 시장의 불안정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돼 준다.
물론 일본은 올해 심각한 도전을 피해 가기 어렵다. 이는 엔저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한국 및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 전쟁 및 재난 위험, 고령화 및 노동 인구 감소 등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미 다양한 경제 위기 속에서 회복력을 입증해 온 일본이 희망을 내려놓을 필요는 결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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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사정, 전년比 악화 31%, 호전 11%
건설·철강·석유화학 순 ‘악화’ 비중 높아+
경영정상화 힘든 D등급 급증, 부동산 '최다'
올해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국내 대기업 10곳 중 3곳은 지난해보다 자금 사정이 악화한 데다 경제정책 불확실성마저 5년여 만에 최악 수준으로 높아진 탓이다.
국내 기업들, 올해 자금 사정 더 안 좋다
6일 한국경제인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1,000대 기업(공기업·금융기업 제외, 100개사 응답)을 조사한 결과 올해 자금 사정이 전년보다 악화했다고 응답한 기업 비중은 31%로 집계됐다. 호전됐다고 답한 기업(11%)보다 3배 많은 수준이다. 나머지 58%는 비슷하다고 답했다.
자금 사정이 악화한 기업을 업종별로 나눠 보면 건설·토목(50%), 금속(철강 등, 45.5%), 석유화학·제품(33.3%) 순으로 비중이 높았다. 한경협은 이들 업종이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와 글로벌 공급과잉 영향으로 장기 부진을 겪고 있어 자금 조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기업들은 자금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고환율과 물가 부담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환율 상승(24.3%)이 가장 많았고,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23.0%), 높은 차입 금리(17.7%) 등도 지목했다.
자금사정은 어려운 상황인 반면, 올해 기업들의 자금수요는 연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작년과 비교해 자금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36.0%)은 감소(11.0%)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고, 기업의 과반(53.0%)은 올해도 작년과 유사한 수준에서 지출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수요가 주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부문은 원자재․부품 매입(39.7%)이 가장 많았고, 설비투자(21.3%), 차입금 상환(14.3%), 인건비․관리비(14.0%) 순으로 조사됐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기업 5곳 중 1곳은 이자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0%에서 2.75%로 0.25%p 인하했지만 기업 20%는 여전히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가 현재 기준금리(2.75%)보다 낮다고 응답한 기업 비중은 기준금리2.5% 응답 비중(14.0%), 2.25%(4.0%), 2.00%(2.0%) 등이었다.
대기업마저 '부도 위기'
자금 사정 악화 속 부도 위기에 내몰린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채권은행의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 230개사를 부실징후기업(C·D등급)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체 부실 징후 기업은 작년보다 1곳 줄었지만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작은 D등급은 17곳 늘어 130곳에 달했다. 대부분 상황이 나빠져 C등급 기업이 D등급으로 이동한 탓에 C등급은 작년보다 18곳 줄어든 100곳으로 집계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기 회복 지연에 따른 업황 부진, 원가 상승, 고금리 장기화 등에 따라 일부 한계기업의 경영 악화가 심화한 점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1년에 한 번 하는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는 A~D 네 등급으로 나뉜다. A는 정상, B는 부실 징후 가능성을 보이는 기업이다. 부실 징후 기업인 C와 D는 다시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높은 기업(C)과 낮은 기업(D)으로 구분된다. 통상 C등급은 채권단 중심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D등급은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는다. 특히 지난해는 부실 징후 기업 가운데 금융권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이 2곳 늘어난 11곳으로 조사됐다. 그중 D등급이 전년 2곳에서 7곳으로 증가했다. D등급 대기업은 2021년과 2022년엔 한 곳도 없었다.
"진짜 위기는 하반기부터" 기업들 미리 자금 조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초부터 많은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한 제조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나라 기업들 상당수는 신년 상반기까진 그나마 버틸 체력이 있지만, 진짜 돈줄이 마르기 시작할 하반기에 금융회사를 찾아가면 우릴 만나주기나 하겠나"라며 "올해 1분기 내 연중 필요한 자금 조달을 모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들의 자금 경색 위기가 확산하기 전 타기업들보다 미리 현금을 확보해 두겠단 전략과도 같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다시 재현된다면 건설회사들의 자금 소요가 크게 늘어나고 금융권의 문턱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이 같은 판단의 배경이 되고 있다.
환율이 불안정한 상태를 감당하지 못할 중소·중견 기업들이 금융권에 손을 벌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선제적인 자금 확보의 요인이다. 국내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건설, 제약·바이오 등 어떤 산업군도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본격적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꺾이기 시작하면 금융사를 태핑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텐데, (우리회사는) 미리 주채권은행을 만나 기업 대출 한도를 최대한 열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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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 적체 심화→호가 하락 추가 개발도 일제히 멈춤 상태 B·C 노선 개통 일정 ‘불투명’
시운전 중인 GTX 차량의 모습/사진=국가철도공단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파주 운정중앙역이 개통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일대 집값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GTX라는 초대형 호재가 일찌감치 선반영된 데다, 상급지로 평가되는 일산 집값이 주춤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공사비 급등을 이유로 사업을 재검토하는 건설사가 늘면서 주변 추가 개발 또한 요원한 실정이다.
파주시 집값 6주 연속 내림세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파주시 목동동 ‘운정화성파크드림시그니처’ 아파트(전용 84㎡·23층)는 지난달 4억9,800만원에 새 주인을 만났다. 전월 거래 가격인 4억8,500만원(12층)보다 소폭 오른 수준이지만, GTX 개통 전 기록한 최고가 9억5,000만원(25층)과 비교하면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인근 단지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산내마을9단지힐스테이트운정(59㎡)’은 지난달 4억8,000만원(25층)에 새 주인을 만나며 최고가(7억3,000만원·12층) 대비 2억5,000만원 하락했고, ‘산내마을6단지한라비발디(84㎡)’역시 최고가보다 2억원 이상 떨어진 4억2,000만원(24층)에 거래됐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도 2월 넷째 주 파주시 집값은 0.05% 내리면서 6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 올해 들어서만 0.17% 떨어졌다.
이와 같은 부진은 지난해 12월 GTX A노선 운정중앙역~서울역 구간이 개통하면서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상반된 결과다. 목동동 한 공인중개사는 “GTX A노선 계획이 발표되고 착공까지는 일대 집값이 폭등했다”며 “개통 시점만 하더라도 호가를 높인 집주인이 많았는데, 매수자가 줄면서 하나둘 가격을 낮춰 잡았다”고 전했다.
GTX 개통 시점까지 분위기를 살피던 물건들이 단기간에 쏟아지면서 매물 적체도 심화했다. 부동산 정보분석 업체 아실에 의하면 GTX A노선 개통일인 지난해 12월 28일 5,453건이던 파주시 아파트 매물은 이달 5일 기준 6,329건으로 16% 늘어났다. 같은 기간 경기도 아파트 매물 증가율인 9.1%와 비교해 훨씬 높은 수치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교통 호재가 가격에 선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 탄핵 정국 등 여러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집값의 하방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내년 입주 물량도 1만 가구에 육박해 당분간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리 인하와 GTX 착공 시점이 맞물리면서 운정신도시 일대 집값이 과도하게 뛴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서울과 더 가까운 일산 집값이 일산테크노밸리 개발과 선도지구 재건축 등 이슈에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운정신도시 집값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건설 원가 부담에 사업 원점 재검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정신도시 일대에는 땅을 취득하고 개발사업의 첫 삽도 뜨지 못한 현장이 줄을 잇고 있다. GTX 특수를 기대하며 사전청약까지 받았던 시행사 중 상당수가 수익성 저하를 이유로 차일피일 착공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시행사는 공사비 급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건설공사비지수는 2021년 117.37에서 지난해 130.18로 3년 사이 11%가량 상승했다.
여기에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돼 건설 원가 부담을 최소화할 방도가 없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견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보통 원가율 80% 초중반을 안정권으로 여기는데, 최근 건설사들 대부분 원가율이 90%를 넘는 실정”이라며 “들어오는 돈보다 자재와 인건비 등 나가는 돈이 더 많으니 지어도 남는 게 없을 거란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뜩이나 공사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마케팅 등 여타 비용까지 감안하면 사업 취소가 가장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전망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서울 도심지역까지 30분 이내 주파가 가능해진 만큼 파주 일대 주민들은 GTX를 이용해 서울의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찾아갈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이동이 용이해지면 대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의 경제력을 흡수하는, 이른바 ‘빨대효과’다. 서울과의 접근성 개선이 GTX 역사 주변 상가들에는 도리어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B·C 노선 부동산 활성화 기대 ‘언감생심’
GTX B·C 노선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이들 노선의 준공 시점을 각각 2028년, 2030년으로 제시하면서 기대 수요가 몰렸지만, 철도 공사조차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이 또한 공사비 폭등과 사업성 저하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시행사들이 공사 시작을 위한 자금 마련 단계부터 난항을 겪으면서 개통 일정을 맞추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인천 송도부터 남양주 마석(연장 82.8㎞)을 연결하는 GTX B노선은 민자 구간(상봉-마석)과 재정 구간(용산-상봉)으로 구분된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착공식을 열고 재정 구간 일부(상봉역-구리역) 공사에 들어갔지만, 민자 구간 착공 시점은 여전히 미정이다. 민자구간 사업 시행자는 대우건설 컨소시엄이다. 총사업비 4조2,894억원 중 3조4,000억원가량을 민간에서 조달해야 하는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고금리 장기화 등 각종 변수가 이어지며 자금조달 과정에서 애를 먹어왔다.
지난해 말에는 지분 20%를 보유한 현대건설이 GTX C노선 사업 집중을 이유로 13%를 반납하기로 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DL이앤씨(지분 4.5% 보유)도 사업성을 이유로 컨소시엄 탈퇴를 통보했다. 대우건설 측은 올 1분기 내 착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기존 참여사가 손을 털고 떠난 마당에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경기 양주시 덕정역에서 청량리역, 삼성역을 통과해 수원역까지 86.46㎞를 연결하는 C노선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사업 시행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 내 다수의 참여사가 공사비를 이유로 사업 참여를 재검토하고 나서면서다. 아직 컨소시엄을 탈퇴한 참여사는 없으나, 주간사인 현대건설은 최근 국토교통부에 공사비 증액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공사비로는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판단”이라며 “현재 금융주간사인 국민은행이 자금 조달을 타진하고 있지만, 마무리가 안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들 노선의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일각에선 재정사업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토부와 국가철도공단은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자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재정으로 전환하면, 기존 계약 해지에 따른 귀책 사유 검토와 사업성 파악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등 여러 절차가 따라온다”고 짚으며 “지금으로선 전혀 전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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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위 대형마트 체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시장 곳곳에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홈플러스 상품권 제휴 업체들부터 자금을 내어준 카드사, 금융권 등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인해 줄줄이 곤욕을 치르는 양상이다.
홈플러스 상품권 둘러싼 불안감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CJ푸드빌 △CJ CGV △신라면세점 △삼성물산 패션 부문 △앰배서더호텔 등은 최근 홈플러스 상품권 결제를 중단했다. HDC 아이마크몰, 신라호텔, 신라스테이도 홈플러스 측과 상품권 결제 관련 협의에 나섰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를 운영하는 다이닝브랜드그룹은 아직까지 결제를 중단하진 않았지만, 논의 결과에 따라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업체가 홈플러스 상품권을 경계하는 것은 지난 4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며 상품권 사용 금액에 대한 변제 및 정산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당시 해피머니 상품권의 사용에 대한 변제가 지연되거나 무산된 사례가 있다 보니 우려가 커진 측면이 있다”면서 “홈플러스 측은 상품권 변제는 이뤄진다고 말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정산 지연”이라고 했다.
카드·증권사 채무 변제 밀리나
카드업계와 증권업계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홈플러스는 현재 현대카드·롯데카드·신한카드와 신영증권·SK증권을 통해 3,900억원 규모의 매입 채무를 금융 상품으로 유동화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거래처 상품을 사들여 매입 채무가 발생할 때, 카드사가 먼저 구매 대금을 자체적으로 거래처에 정산한 뒤 3개월 이내에 홈플러스로부터 상환받는 식이다. 이를 통해 홈플러스는 결제일을 늦추면서 공급망을 넓힐 수 있다. 이른바 '역팩토링'인 셈이다.
이에 더해 카드사들은 2023년부터 신영증권·SK증권과 함께 역팩토링 상품을 다시 만기 3개월의 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로 재유동화하고 있다. 증권사가 페이퍼컴퍼니(SPC)를 세우면 카드사가 홈플러스에서 받은 카드 대금 채권을 넘기고, SPC가 신용평가를 받은 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개시하면서 금융부채 상환은 유예하고 상거래 부채는 정상적으로 변제할 계획을 세웠단 점이다. 유동화상품의 기초 자산은 상거래에서 비롯되지만, 현재 관련 채무는 카드사와 증권사를 거치면서 금융부채로 분류되고 있다. 홈플러스도 회계장부에 이를 금융부채로 계상 중이다. 기업회생절차에 따라 카드사들의 자금이 꼼짝없이 묶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유동화상품을 매입한 증권사와 리테일 투자자들도 피해를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서도 혼란 가중
금융권 역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돌입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금융채권 상환 유예로 인해 홈플러스가 임차인인 실물 자산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의 자금이 순식간에 묶이면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회생절차가 마무리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며 "차입금 상환 일정이 꼬이며 금융권 내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회생법원 공고문에 따르면 홈플러스 회생채권자·회생담보권자 및 주주 목록의 제출 기간은 오는 18일까지며, 회생채권·회생담보권 및 주식 신고 기간은 오는 1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다. 이어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의 조사 보고서 제출은 다음 달 29일, 회생계획안 제출은 오는 6월 3일 내로 이뤄진다. 법원이 이 회생계획안을 보고 인가를 내면 비로소 회생계획이 확정된다. 사실상 회생계획을 마련하는 데에만 최소 3개월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후 홈플러스는 확정된 회생계획에 따라서 채무를 변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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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완성차 기업, 내연차 강화 의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전기차 전환 속도↓
중국산 전기차 공세, 낮은 수익성도 과제
포르쉐 911 하이브리드/사진=포르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신차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로 인한 영향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좋은 차종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전기차 전환 과정이 순탄치 않은 만큼 내연기관 시장 재공략을 통해 기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너도나도 전기차 '급브레이크'
6일 자동차업계와 복수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들은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들자 내연기관 파워트레인을 유지하거나, 이를 활용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출시로 방향을 틀고 있다.
포르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전기차 타이칸 판매량이 절반가량 줄었음을 밝히며 기존 순수전기차로 계획했던 모델들을 하이브리드 혹은 내연기관으로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루츠 메슈케 CFO(최고재무책임자)는 "현재 결정을 내리는 중"이라며 "분명한 것은 내연기관을 훨씬 오래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내연기관을 포기하겠다고 밝혀 온 중국 소유의 영국 로터스자동차도 2028년 순수전기차만 출시한다던 기존 계획을 폐기했고, 폭스바겐과 현대차그룹 또한 전기차 외에 PHEV와 EREV 차량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스카웃모터스를 통해 전기차와 EREV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고 현대차그룹도 EREV 개발에 돌입했다.
BMW도 전략 재검토
BMW는 1조원 규모의 영국 전기차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BMW는 지난달 24일 성명을 내고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여러 불확실성을 감안해, 영국 옥스퍼드 공장에서 미니 배터리 전기차 생산을 재도입할 시기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BMW는 지난해 영국 정부의 지원 아래 옥스퍼드 공장에서의 전기차 모델 생산을 포함해 6억 파운드(약 1조905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해당 공장에서 2026년까지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고 2030년부터는 전량 전기차 생산으로 전환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성명으로 인해 불투명해졌다.
이밖에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최근 몇 주 사이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차종 신모델이나 업그레이드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모빌리티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하이브리드 신모델 출시는 43% 급증해 116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연기관차에 60조원대 보조금 지급
완성차 제조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서 내연기관 유지로 방향을 튼 이유로는 전기차 판매 상승 지표가 가파르지 않은 점이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5.4% 성장했지만, 주요 완성차 그룹은 역성장했다. 특히 전기차 선진 시장인 유럽의 성장이 뒷걸음쳤다. 유럽 지역은 223만 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이처럼 전기차 시장이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25% 수준의 관세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속 여부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에도 직면한 상태다. 또한 내연차 퇴출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 전기차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 부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데서 오는 불편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내연기관차에 대한 보조금도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데 한몫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ERM에 따르면 가장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 국가는 이탈리아(160억 유로, 약 24조원)다. 그 뒤로 독일이 137억 유로(약 20조원), 프랑스가 64억 유로(약 10조원), 폴란드가 61억 유로(약 9조원)로 이었으며, 스페인은 1억 유로(약 1,495억원)로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제공했다. 유럽연합(EU)이 말로는 내연기관차 종식과 전기차 전환을 얘기하면서도 내연기관 자동차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해 온 것이다.
아울러 중국이 값싼 전기차를 내세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점도 전기차 전환을 늦추는 요소로 풀이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회사 BYD는 지난해 전기차와 PHEV 등 총 413만7,000대를 팔았다. 저가 전기차 모델들이 급성장한 영향이다. BYD는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매출이 테슬라를 앞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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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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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4구·마용성 거래 동향 모니터링 투기 세력 몰리며 시장 양극화 가속 거래량은 평년 수준, 실수요 ‘잠잠’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제도(토허제) 해제 이후 일부 지역에서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올리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와 서울시는 이들 지역의 거래 동향을 점검하고, 향후 합동 현장 점검에 나선다는 방침을 전했다.
투기·교란 수요에 선제적 대응 취지
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는 전날 ‘부동산 시장 및 공급 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최근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 주택가격 상승 우려와 관련, 주택시장 상황과 가계부채 추이를 철저히 점검하기로 뜻을 모았다. 집값 상승세를 틈타 투기 및 교란 수요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부동산 시장 상황 대응에 나선 것은 지난달 12일 토허제에서 해제된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중심으로 치솟은 호가가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는 조짐을 보인 데 따른 조치다. 이들 지역은 물론 마포·용산·성동 같은 강북 인기 주거지에도 단기간 매수세가 급증하며 호가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집값 띄우기 목적의 허위신고와 자금조달계획서 허위 제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달 10일부터 오는 6월까지 서울 지역 주택 이상 거래에 대한 집중 기획 조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 정황이 확인되면 국세청·금융위·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시장 거품을 부추길 수 있는 가계부채 추이 또한 함께 점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 관계자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 주택가격 상승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주택시장 상황과 가계부채 추이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기로 했다”며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심리 불안으로 인한 투기·교란 수요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부동산 시장 ‘먹구름’, 서울만 과열
부동산업계는 서울시의 토허제 해제 이후 서울 주거 선호 지역으로 투기 세력이 몰려들었다고 본다. 이는 부동산시장의 양극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에 의하면 지난달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11% 올랐다. 송파구가 0.58%로 가장 크게 뛰었으며, 강남구(0.38%)와 서초구(0.25%)도 서울 평균을 훌쩍 웃도는 상승 폭을 그렸다. 반면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은 -0.04%에서 –0.05%로 하락 폭을 키웠다. 지역별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대구 0.11% △경북 0.10% △광주 0.06% △부산 0.06% △대전 0.05% △경남 0.04% △전남 0.04% 등이다.
집을 사고자 하는 심리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지난달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7.8로 전주 대비 0.9p 올랐다. 강남 지역 매매수급지수(100.5→101.5)가 1p 오르며 상승을 주도했다. 같은 기간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2에서 89.1로 주저앉았다. 매매수급지수는 시장에 나온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점수화한 수치로 기준선인 100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집을 팔 사람이 살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거래까지 이어진 사례는 드물어
매섭게 오르는 호가에도 실거래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시장 교란의 신호로 읽힌다. 지난달 13일 토허제 해제 후 이달 4일까지 잠실·삼성·대치·청담동에서 실거래된 아파트는 총 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이 지역에서 실거래 신고된 67건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실질적인 매수세 증가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셈이다.
심지어 실거래 중에는 가격이 하락한 사례도 포착됐다. 잠실동 잠실엘스(84㎡)는 지난달 14일 28억8,000만원에 3년래 신고가로 거래됐지만, 이후 이보다 훨씬 낮은 26억900만원과 22억원에 각각 실거래됐다. 인근에 위치한 리센츠(84㎡) 역시 지난달 13일 26억6,000만원에 팔렸는데, 이는 해제 전인 같은 달 4일 거래가격(28억3,000만원)보다 1억원 이상 낮은 가격이다.
이 같은 가격 하락세는 매도자와 매수자 간 눈높이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담아이파크(119㎡)의 최근 호가는 31억~35억원인 반면, 지난달 29억원의 실거래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삼성동 힐스테이트1단지(84㎡) 또한 실거래가는 28억원 안팍이지만, 호가는 이보다 훨씬 높은 32억원 선을 오가고 있다.
다만 실거래가 신고 기간이 계약 체결일로부터 30일인 만큼 속단하긴 이르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공인중개 관계자는 “(지금까지 신고된 거래는) 토허제가 풀리기 전 거래가 주를 이루는 데다, 수십억원의 고가 부동산은 하루이틀 만에 거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가격 상승은 반영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매수 문의가 많은 만큼 단기간 내 거래 폭증과 가격 급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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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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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라는 표현인데, 변호사/변리사/회계사 같은 자격증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구조를 말한다. Rent(지대)는 먼저 특정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이 후발주자들이나 그 조건이 없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공무원, 자격증 등의 시험 통과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잘 나타난다.
학문적인 예시를 들면, '박사 학위'를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3류 대학에서 논문 같지도 않은 논문을 써서 어찌어찌 박사 학위만 받고나면 실제로 정부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젝트에서 '꿀을 빠는' 것이 가능한 사회라고 보면 적절한 비유가 될 것 같다. '박사 학위'를 연구할 수 있는 훈련이 됐다는 최소 요건이 아니라, 일종의 자격증으로 보는 것이다.
글로벌 수준에서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특정 자격증을 가졌다는 이유로 평생 '꿀을 빠는' 사회가 바로 'Rent 사회'인데, SIAI 설립 시절부터 꾸준히 듣던 이야기 중 하나가
저기 졸업하면 대기업 들어갈 수 있냐
같은 질문이었다. 말을 바꾸면,
'저 자격증(?)을 따면 꿀을 빨 수 있냐?
는 뜻일 것이다. 학위 과정을 실력 양성을 위한 기본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격증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상황, 즉 한국식의 'Rent'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고, 우리나라 대기업이 대학 학위를 또 그렇게 '자격증'처럼 취급해서 인력을 뽑고 있기 때문에 확산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노동법의 보호 덕분에 한번 뽑히고 나면 자르는 것도 쉽지 않고, 이런저런 패키지를 받고 나오니, '머슴살이도 대감 댁에서'라는 표현이 도는게 한국 현실이기 때문이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대기업 취직이 '꿀통'을 찾았다는 관점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무능한 인력에게도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줘야된다는 위험을 안겨주는 셈이고, 글로벌 시장 관점에서 보면 나라가 얼마나 기업 활동을 막고 있는지, 더 깊숙하게 보면 얼마나 'Rent' 위주로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지, 즉, 얼마나 2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구직자 분들께 안타까운 사실은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으로 탈출(?)하는 중이기 때문에, 이제 저런 '꿀통'은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이미 IMF구제금융 이후 지난 30년간 매우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다음 세대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인재가 못 되면 '기본소득제' 법안이 통과되는 것만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원하는 개발자 vs. 글로벌 시장에서 원하는 개발자
국내 IT학원들에서 키우는 개발자들을 모두 만나본 것이 아니니 지나친 일반화를 조심해야겠지만, 그간 만나본 개발자 애들은 대부분
A를 하면 B를 할 수 있다
는 식의, 일종의 게임 Tech-tree를 만드는 스타일로 IT개발이라는 지식을 접근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학부 시절에 경영학과 애들에게서 자주 봤고, SIAI 설립 전후로는 공대 출신들에게서 매우 자주 봤던 관점인데, 지식을 자꾸 공식화 하더라.
이런 사고는 위의 'Rent 사회'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사법고시를 합격(A)하면 꿀(B)을 빨 수 있다.
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머리가 나쁜 애들, 사고력의 깊이가 매우 얕은 애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분 나쁘실테니 하나 에시를 들어서 납득을 시켜드리면, 구구단을 달달 외우는 와중에, 연립부등식을 이용한 다리 4개, 2개인 동물 숫자 찾아내는 문제를 던지면 응용을 쉽게 하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졸업할 때가 되어도 그 응용이 안 되는 애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후자 쪽에서 이런저런 변명을 하겠지만, 한 줄 요약하면 '머리가 나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머리는 납득이 되어도 가슴으로 납득이 안 되어서 날 욕하고 싶으면 욕해라. 그래봐야 당신의 사고력 깊이가 얕은 것은 바뀌지 않는다.)
Jordan Peterson -What kind of Job Fits Your IQ
위와 같은 맥락에서, 개발자들 교육이 위와 같은 '공식형' 시스템이면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는 인재가 아니라, 로컬 시장에서만 먹히는 인재가 된다.
한국에서 교육 받은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코딩 몽키(Coding Monkey)' 이상의 성과를 못 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에서 몇 년간 개발자를 채용해보고, 개발자라는 사람들과 부대껴보니 이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도 저런 한국식 인재가 아닌 분들이 은근히 있겠지만, 한국 개발자 사회의 주류는 아닐 것이다.
미국 동부형 인재 vs. 서부형 인재
국내 스타일의 인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질문을 안 한다는 것이다. 시키는 걸 '이해만 했으면' 직진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반대로, 일을 시켜보면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이해하고 끼워넣으면 안 되냐 싶지만, 모든 걸 질문한다. 일 시킨 사람 입장에서
하나를 가르치면 둘이 아니라 열을 아는 사람
에게 일을 시키고 싶은데, 정반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겨우 하나를 아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위의 관점으로 보면, 아마 질문이 많은 사람들은 IQ가 매우 낮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 IQ가 낮은 사람, 일을 못하는 사람일까?
많은 일은 업무 담당자가 프로젝트 전체의 방향성, 회사의 상황 등을 적절히 고려해서 결정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워킹 레벨에서 결정하기 매우 어려운 주제들도 적지 않다. 단지 프로젝트 초기에는, 윗 사람의 눈에는 잘 안 보였을 뿐인데, 그런 질문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길 하면, 특정 순간에 A와 B 중 하나의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서비스 개발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고, 나중에 업그레이드를 할려고 해도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그런 중요한 결정들이 있다. 아니, 회사를 이끌고 있고,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보면 그런 순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날 수 있다.
SIAI 설립 당시로 예를 들면, 해외에서 대학을 만들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스위스에 SIAI를 만들고 독일어로 모든 문서를 감당하는 편이 미래 지향적인 선택이냐, 미국 몬태나에 MIAI를 만들고 영어로 모든 문서를 관리하지만 정작 몬태나 같은 외딴 시골에서 대학을 만들어서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 하나의 결정으로 회사의 10년, 어쩌면 100년이 바뀌어 버릴 수도 있다.
'질문을 안 하는' 인재들은 이런 상황이 오면 위에서 결정을 내릴 때까지 대기 상태로 들어간다. 결정을 내려야 다른 일들이 진행되고, 자칫 결정이 바뀌면 했던 일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 자기가 찾아서 자료 정리한 다음에 윗 사람과 '회의'하는 일은 안 한다. 시킨 사람 입장에서 매우 짜증나는 유형이다. 내가 잘 몰라서, 시간이 없어서 너한테 일을 시켰는데, 결국 내가 모든 정보를 다 다시 습득하고 그간 했던 일들을 추적해야 되기 때문이다.
뭐 잘 모르겠고, 일단 대학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넣은 업체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고 해 보자.
'질문을 안 하는' 인재들을 데리고 있는 컨설팅 업체의 보스는 고객사에도 친절하게 설명을 다 해주면서 고객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고, 직원들에게도 어떤 상황이 진행되고 있으니 어떻게 준비해야 된다고 설명을 다 해줘야 한다.
속칭 PM(Project Manager)라고 불리는 직위에 있는 분이 혼자서 '커뮤니케이션'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PM이 누구인지가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일처리 방식이다.
이런 한국식 시스템이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도 동부의 큰 기업들을 가면 종종 볼 수 있다. 기획서를 뽑아내는 팀이 있고, 발주처 경영진과 기획서 뽑는데 반 년, 1년을 쓴 다음에 완성되면 개발 팀에 넘긴다. 사실 많은 공학 프로젝트가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이게 틀린 방식아라고 힐난하려는 글이냐?
아니, 대부분의 경우 위의 방식이 맞다.
공학 프로젝트와 맞지 않는 서부형 인재
그런데, 저 시스템은 개발 기간 X년, 비용 Y원이라고 딱 정해진 프로젝트에만 적합할 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어 올려야 되는 시스템, 회사 발전에 맞춰서 계속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하는 경우에는 최악의 개발 방식이다.
회사가 반 년 사이에 쑥 성장해서 뜯어고쳐야 되는데, 성장을 감안해서 만든 시스템이 아니면 기존에 만든 걸 완전 해체하고 새로 만들어야 되는 경우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계속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미국 서부로 가면 '질문을 안 하는', 좀 더 구체적으로는 회사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 무조건 최신 기술, 사람들이 많이 쓰는 기술만 찾는 인재는 좋은 인재로 평가 받기 어렵다.
이런 시스템에서 원하는 인재는 의뢰인 or 보스의 생각을 읽고, 꾸준히 대화하고,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끊어가면서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분들이다.
즉, '질문을 안 하는' 인재는 최악의 인재, '질문을 (매우 잘) 하는 인재'가 최고의 인재가 된다.
그간 한국에서 인력을 뽑아서 위의 업무 시스템을 요구하면 대부분 나한테 엄청나게 짜증을 냈었다.
내가 언제나 들었던 말은
왜 이렇게 일을 계속 던지냐
왜 이렇게 기획서도 안 주냐
왜 자꾸 날 더러 생각해라고 그러냐
같은 표현들이었다.
난 기획서를 만들어 줄 수 없는 상황인게, 만들다보면 계속 바뀌는게 뻔하고, 회사 진행 상황에 따라 자칫 접거나 아이템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논해서 결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그 미팅에서 우리 팀이 내 의도를 이해하고 가면 좋겠는데, 그들은 내가 생각을 다 해서 기획서를 던져주는 '효율적인' 진행을 원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막힐 때마다 모든 문제를 내가 풀어야 하고, 내가 모든 결정을 다 해야 한다.
쿠팡 김범석 의장 더러 '누구랑 같이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전직 쿠팡 관계자들 몇몇을 아는데, 가끔 가까운 분들이라 진심으로 충고해줘도 되겠다 싶으면
(당신이) 공식형 인재라서 공식을 따르지 않는 사고를 하는 분, 그런데 잠깐 사이에 이미 결론까지 다 뽑아내는 생각의 속도를 내는 분을 못 따라간 것
이라고 솔직히 말해주는 일들이 있다. 지적 듣고 쿠팡 김 의장이랑 날 더러 똑같은 인간이라고 욕 하시던 분들께는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칭찬인거 같아서 ㅎㅎ) 빈 공터에서 100조짜리 기업을 만들어 낸 대표가 한국 토종들처럼 'Rent 사회', '공식형 인재'와 같은 사고 방식을 갖고 있었으면, 거기다 생각의 속도마저 느렸으면, 그 회사는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이걸 미국에서는 '서부형 인재' 혹은 '실리콘밸리형 인재'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하지만, 엄청난 학습 속도로 업계 전문가를 따라잡고, 끊임없이 사고의 틀을 깨는 분들을 지칭한다. 쿠팡 김 의장이 왜 한국 인재들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감히 김범석 의장과 비교할 주제는 아니지만, 나도 저런 짜증들을 듣다가 못 참고 한국 개발 팀을 없애버렸다.
프리랜서 인도 팀을 쓰는게 비용 절감은 둘째 문제고, 대화하는데 속이 뻥~ 뚫린다. 일을 계속 던져주면 엄청 좋아하고, 설명을 하면 무슨 뜻인지 확인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방향 설정을 해 주고, 내 생각이 틀렸으면 고쳐주고... 한국에서도 이런 개발 팀을 뽑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는 인재, 질문하는 인재, 실리콘밸리형 인재
다만, 모든 조직이 실리콘밸리형 인재를 찾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공학 프로젝트는 완성된 설계도, 기획서를 들고 움직이는 것이 맞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시장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현장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세부 조건들을 바꿔야 한다.
보통은 경험치가 아주 많은 인재들에게 그런 PM 자리를 준다. 이미 다 겪어봤으니 어떤 사태가 발생해도 잘 대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물론 그래도 경험 밖의 사건이 터지면 대응을 못하는 PM들이 있고, 그래서 결국 프로젝트가 망가지고 막대한 손해 배상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반대로, 경험치는 부족하지만 순간 대응을 잘 하면서 문제 해결을 빠르게 해 나가는 인재들도 있다.
후자의 인재는 매뉴얼 대로 따라가는 PM들, 동료들의 꽉 짜인 사고 방식이 불편하거나, 아예 자신의 역량을 숨기고 조용히 일만 할 것이다.
그러다 윗 사람의 눈에 띄여 동부형 조직 안에서도 승진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조직에서 성장의 기회를 만나면 지분을 받고 이직하고, 그 조직이 성공하면 함께 이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럼 누가 실리콘밸리형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좀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당신들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서부형 인재', '실리콘밸리형 인재'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리콘밸리형 인재들은 질문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질문을 해야되는 순간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미 N가지 시뮬레이션이 머리 속에서 빠르게 다 돌아갔기 때문에 의뢰인이, 보스가,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신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싶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기서 더 뛰어난실리콘밸리형 인재들은 먼저 몇 가지 해답을 찾아서 질문을 던지고, 미리부터 어떤 대답이 나오건 상관없이 해놔야 되는 일들을 준비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재수 없다, 너만 잘났냐 등등의 온갖 비난을 받는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식의 사고 확장이 안 되는 당신들은 2류 인재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냥 시키는 일만 열심히 잘 하는 일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 공기업, 대기업에 취직해라. 거기 취직 안 되면 배달이나 하던가. 백수로 살던가. (못 돼먹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우리 회사에 짧게 2달 동안 인턴을 하고 갔던 한 수도권 대학 출신 인재가 있었는데, 회사를 떠나면서 내게 했던 표현이
이런 게 실리콘밸리 스타일인 것 같은데, 저는 ....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했는데, 계속 우리 조직에서 성장하고 싶은데, 자기 능력이 부족해서 이걸 못 따라간다는 걸 느껴서 포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글로벌 개발자 양성 과정에서 살아남을 인재들
뭔가 난잡하게 던진 것 같지만, '글로벌 개발자 양성 과정'으로 내가 키우고 싶은 인재, 그래서 글로벌 노마드로 살 수 있는 인재, 자기 실력으로 나이 50, 60까지 밥벌이가 가능한 인재는
'Rent 사회'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난 인재
똑똑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넘겨 짚을 수 있는 감성적인 인재
학습 속도가 굉장히 빠른 인재
들이다.
이미 한국 사회는 적어도 기술 분야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완전히 뒤쳐진 2류 국가가 됐다. 그나마 먹여 살려주던 중국이 더 이상 한국에서 뜯어먹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상황인만큼, 남은 시간이 거의 없고, 그나마 미국이 먹여 살려주는 조선, 방산 같은 산업들은 더 버티겠지만, 나머지 산업들은 미국, 인도 같은 세계의 공장 국가로 떠나 버릴 것이다.
요즘 기술 추격 당하는 걸 보면, 길어봐야 10년, 아마 5년 안에 한국에서 최상위권 인력을 제외한 모든 인력들이 70년대, 80년대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해외에 나가서 돈 벌이를 해야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데 거의 확신을 갖게 됐다.
그 시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독일 광산 깊숙한 곳에 투입되고, 시체 닦는 간호사로 돈 벌이를 했다. 또 한 세대는 중동에서 열사병에 걸려가면서 건설 현장 막노동으로 돈 벌이를 했는데, 그나마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어 생존을 위협받고 고엽제로 남은 평생을 고생한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그러시더라.
근데,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들 시절처럼 추락하는게 얼마 안 남았다. 안 믿기면 1995년, 2005년에 취준을 했던 선배들, 2015년에 취준했던 선배들과 2025년에 취준하고 있는 당신들과의 격차를 가늠해봐라. 그나마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으니 사정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2035년에는 지금보다 더 암울한 취준 시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남유럽 애들이 경제 붕괴되던 2010년에 그걸 겪고 '글로벌 개발자 양성 과정' 같은 쪽으로 발을 돌린지 10년이 됐기도 하다.
한국에서 Rent를 찾아 '꿀 빠는' 인생을 살고 싶은 분들은 어쩔 수 없고,
로스쿨에 이어 의대마저 무너지는 걸 보면서 Rent 시장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분들,
이제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가는 2007년 여름, A모 컨설팅 회사에서 잠깐 인턴을 했었는데, 거기 이사님이 항상 하셨던 말씀 중에,
차 떼고, 포 떼고도 할 수 있어야
라는 표현이 있다. 회사 이름 없이, 자기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으로 일본에서 유명세를 끌었던 기업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서는 '간판을 잃어도 빛나는 인재야 말로 진짜 인재다'는 표현이 있다.
당시 A모 컨설팅 회사가 MBB처럼 글로벌 탑 티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회계법인 컨설팅 조직들보다는 티어가 높으니, 그 브랜드 밸류로 기업들 설득해서 프로젝트 따는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당시 그 회사 분위기였는데, 그 이사님도 삼성 구조본 출신에, 업계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갖춘 컨설턴트였지만, 그 회사가 안 하던 걸 새로 만들어 내려니 혼자 힘으로 팀을 키우는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솔직히 A모 컨설팅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 분이 도전하시는게 내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고, 나도 큰 마음을 먹고 갔다가, 회사 이름 값보다 그 분이 헤메는 걸 보고 있기가 너무 답답해서 결국 2주일 만에 그 팀에서 나왔다. 20년이 다 됐지만, 항상 마음이 무겁고 죄송한 일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사업해보면서, 한국 시장에서 차 떼고, 포 떼고 뭔가 하는 건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왜? 아시아 문화권은 '대기업, 대기업, 대기업'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곳, '대기업'이 아니면 기업이 B2B의 상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곳, 최소한 품질 경쟁력으로 시장 불신을 깨는 건 불가능한 사회·문화권이기 때문이다. 그걸 ①사기 안 치고②혼자 힘으로만 뚫은 분들은 업종마다 사정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엄청나게 존경을 받으셔야 한다. 현실은 일본식으로 이야기하면 '패배조 자회사(負け組 子会社)'에서도 안 하려는 잡일에 만족해야 한다. 아니면 대기업에 기술을 뺏기거나.
아시아와 달리, 내가 본 유럽 시장은 대기업 편향성이 상대적으로 없는 시장이었다. 안 그랬으면 SIAI 설립 조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은 대기업 편향성이 유럽보단 강한 곳이지만, 적어도 한국이나 일본 같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위에 언급한 글로벌 개발자 양성 과정 정도는 미국, 유럽 어디를 가도 대기업을 찾진 않을 것이다. 개인 프리랜서가 해도 되는 사업,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 인력의 에이전시가 하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이미 잘 갖춰져 있을테니까. 한국에서 WordPress를 비롯한 주요 웹사이트 오픈소스들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도 아마 대기업이 뛰어들 만한 시장도 아니고, 실제로 대기업이 뛰어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달간 몇 차례 글로벌 개발자 양성 과정 이야기를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수요가 거의 없어서 이걸 한국에서 운영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사고력 문제, 영어 문제를 한국 교육이 전혀 해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문제는 '대기업, 대기업, 대기업' 노래를 부르는 한국 시장의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SIAI를 처음 만들고 스위스 EduQua에서 학위 과정 승인을 받아오고, (사)데이터사이언스 경영학회를 한국 정부 승인까지 받아 학위 논문 심사하는 구조를 구축했는데, 어느 국내 대학 학생은 SIAI가 모 스위스 대학의 자회사라는 식의 뇌피셜을 여기저기 써 놨다가 우리 SIAI가 그 대학에 고소를 당하게 만들기도 했고, 여전히 국내 커뮤니티들은 SIAI를 한국 강남 일대의 '동네 학원'이라고 무시하거나, 기껏해야 그 뇌피셜 학생처럼 내가 남한테 얹혀가서 돌리는 유학원 정도로 생각한다. 그 고소 건도 입학시험 40점을 두 번 받고 탈락한 학생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는 정보를 주고 합의하지 않았으면 더 괴로운 일이 터졌을 것이다.
아마 그 뇌피셜이 나온 이유는, 자기가 가고 싶은 학교는 '대기업'처럼 매우 유명한 학교, 큰 학교, 잘 나가는 학교여야 된다는 자기 세뇌 탓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인력들이 SIAI 욕하는 내용을 보면 '신생 학교 주제에', '랭킹 높냐?', '유명하지도 않은 주제에', '분명히 저 인간이 혼자서 한 게 아니라, 뒤에 큰 기관이 있을 것이다' 같은 내용 아니면, 이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을 만들어 낸 나에 대한 음해 공작들이다. 자기들이 그렇게 '높은 위치'로 인정하는 스위스의 기관에서 인정 받은 교육 프로그램인데, 정작 그 인증의 핵심이 자기들이 욕하던 나였다는 것을 못 받아들이는, '서구 사대주의'의 틀에서 못 벗어나는 사고의 편협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오해와 왜곡은 정보를 제대로 읽고 소화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SIAI가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허가 받고 설립된 학교 법인이고, 내가 한국인들 상대로 따로 시스템을 추가해서 운영 중이라는 설명을 아무리 읽어봐도 (혹은 긴 글을 읽을 능력이 없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설명', '설득'하려면 글로벌 탑 50위권, 10위권 대학이다, 유명 대기업에서 만든 대학이다는 식의 한 줄 임팩트 홍보 이외에는 먹히질 않을 것이다.
그들은 딱 한 줄 요약 수준의 정보 습득력, 지식 이해도를 갖춘 인간들에 불과하니까. 그들은 '유명하냐?' 한 줄 이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를 묻고 답할 능력이 없으니까. 그러니 어디서 유명하다는 기관이랑 연결되어 있으면 실체는 보지도 않고 달려들고, 그래서 사기 범죄 비율이 중국과 더불어 압도적으로 1등인 나라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SIAI 학생들의 학위 논문도 쌓고, SIAI 모 회사인 GIAI의 Reputation도 이만큼 쌓아올렸는데, 그걸 유럽 팀 애들은 손가락만 놀리는 동안 한국에서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키웠는데, 심지어 글로벌 개발자 양성 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경험치도 쌓였지만, 그래서 퍼즐에 맞춰 들어갈 수 있는 인재만 있으면 충분히 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지만, 아마 저 인력 양성 과정은 한국에서 실패하고 GIAI 본사에서 그간 제휴 맺으려 노력했던 인도의 어느 조직 중 한 곳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몇 년간 거기를 키워서 GIAI India 매출액 정보가 널리 알려지고 나면 그제서야 기업이 커졌다고 '대기업, 대기업, 대기업' 노래 부르는 분들 시야에 들어오니, 날 더러 한국에서 채용 안 하고 인도에서 채용한 악마라고 욕을 할지도 모른다. SIAI의 연구 인력 양성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학원 수준 개발자 교육을 말하는 중인데, 또 구분 못하고 한국 욕하고 인도 갔다는 식으로 묶어서 황당하게 덮어 씌우려나? 워낙 참신하게 황당한 사건들을 많이 겪어서 또 무슨 신선함이 나올지 상상도 못하겠다.
그 때를 대비해 미리 남긴다. SIAI의 고급 AI/Data Science 교육이 아니라, GIAI 본사에서 대학 교육과 별개로 운영하는 WordPress, Drupal, Moodle 같은 오픈소스 개발자들 훈련 프로그램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본사가 인도 대신 한국을 선택하도록 노력해봤다.
전에 어느 Q&A에 쓴대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바라보는 조선 고종의 심정이지만, 어쩌랴. 한국 실력이 그 수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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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달라지는 세상과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습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관성보다는 호기심에 마음을 쏟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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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군대·인프라 등에 공격적 투자 예정
긴축 종료 조짐에 독일 국채수익률 '급상승'
EU, 회원국에 "방위비 지출 확대하자"
엄격한 재정 준칙을 유지하던 독일이 공격적 재정 지출에 나섰다. 차기 총리가 정부의 차입 한도를 정하는 '부채 브레이크(debt brake)'에서 군비를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유럽연합(EU)도 회원국에 국방비 지출 확대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긴축 마무리하는 독일
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차기 독일 총리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연립정부 파트너와 합의해 독일의 군대와 인프라에 수천억 달러의 추가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츠 차기 총리는 이를 위해 다음 주 중 기독교 민주연합(CDU), 바이에른 기독사회연합(CSU), 사회민주당(SPD) 등과 함께 차입 규정 완화 법안을 의회에 공동 제출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은 국방비를 부채 제한 대상에서 면제해 무제한 부채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독일은 2009년 헌법에 부채 브레이크를 제정해 정부 차입을 제한하고, 구조적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0.35% 수준으로 유지해 왔다.
이에 더해 메르츠 차기 총리는 운송, 에너지 그리드, 주택 등 인프라 투자에 활용할 5,000억 유로(약 768조원) 규모 투자 기금을 설립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독일 연방정부 예산이 4,657억 유로(약 725조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규모다.
채권 시장, 즉각적 반응 보여
그간 엄격한 긴축 재정 정책을 유지해 온 독일이 국방 및 인프라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 발행 규모를 늘릴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5일 독일 국채 기준물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0bp 급등한 2.783%를 기록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주요국 국채 10년물 금리도 일제히 10bp 이상 뛰었다. 일반적으로 10년물 국채금리는 시장이 향후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예상할 때 상승한다.
전문가들은 독일 국채 수익률의 추가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 메모에서 "(독일 정부의 추가 차입 및 지출로 인해) 중기적으로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현재 전망치인 2.5% 대비 50~120bp 상승할 것"이라며 "10년물 수익률의 잠재적 거래 범위가 3.0~3.75%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이 될 경우, 독일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게 된다.
EU의 '유럽 재무장 계획'
독일에서 시작된 재정 지출 확대 흐름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다. 4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 재무장 계획’을 공개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가 예산을 활용해 4년간 6,500억 유로(약 1,012조원)를 추가로 국방에 지출할 수 있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활성화할 계획”이라며 “아울러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 1,500억 유로(약 233조6,520억원) 규모의 차관을 연장할 것을 제안한다"고 발언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언급한 메커니즘은 개별 회원국 차원에 EU 재정 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국가별 예외 조항(national escape clause)을 일컫는다. 회원국이 국방비를 GDP의 1.5% 수준까지 확대할 경우, 해당 국가에 재정적자나 부채관리에 대한 예외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EU 회원국들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각각 GDP의 3%, 6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EU 이사회가 예외 조항을 승인한다고 해도 개별 국가들이 추가 예산을 지출하고 적자를 늘리기로 결정할지는 불분명하다는 평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는 "국방비 지출 규모는 나라별 재정 여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려면 의료 서비스, 사회 서비스 등으로 빠져나가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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